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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러간 '인공유방 사태' 1년, 소송도 배상도 지원도 '감감'

엘러간 측, 소송 지연에 식약처 대응에도 피해자들 가슴앓이…결국 본사 상대 직접 소송이 답?

2020.10.29(Thu) 18:11:23

[비즈한국] ‘엘러간 사태’가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된 지 1년이 흘렀지만 손해배상 소송이 지연되는 등 피해자들의 고충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확진환자 사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엘러간의 후속 대처가 미흡하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세 건의 희귀암 발병 사례가 보고됐는데, ​세 환자 모두 엘러간으로부터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엘러간 사태는 아일랜드 기업 엘러간이 생산한 거친 표면 인공유방 보형물의 희귀암 유발 가능성이 제기되며 각국에서 회수 조치에 들어간 사건이다. 2011년부터 인공유방 보형물과 ‘유방 보형물 관련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BIA-ALCL)’의 연관성을 지적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19년 7월 24일 FDA에서 엘러간의 텍스처드(거친 표면) 인공유방이 다른 제조사 제품보다 림프종을 유발할 가능성이 약 6배 높다며 리콜 조치했다. 같은해 9월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소송이 잇따랐다.

 

‘엘러간 사태’가 전 세계에서 이슈가 된 지도 1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고충은 여전하다. 사진은 엘러간사의 매끄러운 표면(스무스 타입) 유방 보형물. 사진=엘러간 홈페이지 캡처

 

#엘러간 ‘면책 동의서’로 피해자들 동의 구하기도

 

소송이 제기된 지 1년, 그러나 진행은 매우 더딘 상황이다. 국내에서 엘러간 인공유방 시술을 받은 피해자 1153명은 ​2019년 9월 23일 ​제조사인 한국엘러간과 아일랜드에 있는 엘러간 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국내에서 엘러간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 가운데 최대 규모다.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513억 원으로 1인당 5000만 원 정도. 배상청구항목은 △인공유방 보형물 삽입시술비 △복원시술비 △위자료 등이다.​​

 

그러나 한국엘러간이 본사에 대한 소장 송달을 거부해 재판이 지연된 탓에 지난 14일에서야 1차 변론기일이 열렸다. 1년 만에 열린 변론기일에서 한국엘러간은 피해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으므로 엘러간에 책임이 없다는 요지의 답변서를 내놨다. 한국 소송이 지연되자 희귀암이 발병한 피해자 세 명과 일반 피해자 약 2000명이 미국에서 엘러간 본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위해 모였다. (엘러간은 지난 5월 미국 제약사 애브비에 인수됐다.)​

 

이들을 대리하는 이승준 법무법인 태일 변호사에 따르면 현재는 소송 전 단계로 엘러간 본사를 대리하는 로펌과 배상금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소송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계적인 소송이라, 미국에서 진행되는 소송 결과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다만 미국에서는 소송을 당한 다국적제약사가 갑자기 합의금을 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흔해서 머지않아 합의가 이뤄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엘러간의 사후 대응도 환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엘러간이 피해자들로부터 받아달라며 의료기관에 보낸 ‘면책 동의서’ 때문이다. 2019년 11월 엘러간은 거친 보형물이 파열돼 자사의 매끄러운 표면(스무스 타입) 보형물로 교체할 경우 환자에게 300만~400만 원 상당의 수술비를 지급하는 대신 엘러간 및 관계 기관 면책에 영구적으로 동의한다는 내용의 보상 정책을 만들었고, 일부 의료기관은 이 내용에 대해 환자들에게 동의를 구한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동의서를 작성하고 수술비를 받을지, 아니면 소송을 진행할지를 두고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엘러간이 피해자들로부터 받아달라며 의료기관에 보낸 ‘면책 동의서’(사진) 때문에 피해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사진=법무법인 태일 제공


이를 두고 한 국내 제약기업 관계자는 “​제약사에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는 않으므로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법이 미비해서 제약사 입장에서 그 틈새를 노리는 걸 수도 있을 듯하다”​며 “​개인적으로 환자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동의서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보형물을 제거할 병원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피해자들의 고충을 더한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피막(피부와 점막)을 100% 제거할 수 있다는 부산의 한 병원이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 이 병원은 예약이 내년까지 꽉 찬 상황이다. 가슴 보형물 제거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의 한 외과의원 원장은 “정상적인 피막은 굉장히 얇아서 100% 제거하기도 힘들고, 굳이 완벽히 떼어낼 필요는 없다. 피해자들 사이에 피막에 대한 공포 분위기가 조성돼 일부 병원에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림프종 확진환자 “식약처 무관심에 속상, 엘러간에서도 지원 없어”

 

이런 가운데 식약처의 후속 대처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확진환자 사이에서는 식약처의 보상대책이 무용지물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019년 9월 식약처는 엘러간과의 협의를 통해 거친 표면 유방 보형물 이식환자에 대한 보상대책을 마련했다고 발표하며 “BIA-ALCL 확진환자에 대해 우선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며, 이식환자 본인 부담금 부분에 대해서는 엘러간이 의료비용을 전액 보상하고 평생 무상 교체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피해자들에게 경제적 지원이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비즈한국과 인터뷰한 확진환자 A 씨는 “지금까지 2000만 원가량 병원비를 냈다. 추가적인 급여 혜택이 돌아온다고 생각했었는데, 보상을 전혀 못 받았다. 림프종도 암이라 국가암검진으로 암 진단을 받은 데 대해서만 의료비를 지원받았다”며 ​​“​미용 목적이라 보고 국가에서도 지원을 안 해주는 건데 식약처의 무관심에 사실 속상하다. 식약처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제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엘러간에서도 의료비 지원이 없었다”​고 밝혔다. 엘러간 관련 국내 희귀암 확진환자 세 명을 모두 대리하는 이승준 변호사에 따르면 세 환자 모두 아직 보상을 받지 못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기존의 건강보험 체계에서 일반적인 암으로 포함되는 것이지 (확진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마련하려는 계획은 아니었다. 엘러간에서 마련한 보상 프로그램으로 보상을 받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식약처가 발표한 보상대책에 따르면 희귀암 확진환자가 아니더라도 희귀암으로 의심되면 관련 검사 비용에 대해 회당 약 120만 원(1000달러) 내에서 엘러간이 의료비를 실비 지원한다. 예방 차원으로 보형물을 교체하는 경우에도 엘러간의 매끄러운 표면 유방 보형물로 2021년 7월 25일까지 무상으로 교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식약처의 후속 대처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충북 오송에 위치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진=연합뉴스


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엘러간의 회수 대상 인공유방 보형물은 1242개 의료기관에 약 13만 개가 판매돼 환자 약 6만~7만 명에 이식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지난 9월 말까지 파악된 환자는 1023개 의료기관의 4만 6691명이다. 최소 1만 3000명의 정보가 아직 파악되지 않은 셈이다. 병원이 이전한 경우라면 그나마 낫다. 아예 폐업한 경우는 환자의 수술기록과 상담일지를 확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다국적제약사 제품에 문제가 생겨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본사와의 직접 소송만이 유일한 대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승준 변호사는 “대표적으로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관련 소송을 보면 미국에선 3년 전에 피해자들과 합의가 끝난 반면, 한국인 피해자들은 긴 시간 싸웠지만 배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다국적기업은 수년간 의도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킨다든지 하는 태도를 종종 보인다. 엘러간 사태도 미국 소송 결과에 따라 미국에서 집단소송을 제기한 한국인 피해자들도 함께 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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