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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에 숨은 숫자의 함정

연관 불분명한 데다 접종 건수 늘고 노인 접종률 늘어 '자연스러운' 현상…전문가들 "과한 불안감 조성 말아야"

2020.10.23(Fri) 13:42:46

[비즈한국] 독감(인플루엔자)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했다는 보고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2009년 8건, 2014년 5건을 제외하면 해마다 0~3건 정도에 그쳤던 예년과 비교해 올해 유독 독감 백신을 맞은 환자들의 사망 등 이상반응 신고 사례가 급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현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뭘까. ​같은 제조번호의 백신을 접종한 사망 사례도 나왔는데 정말로 안심해도 되는 걸까.

 

독감(인플루엔자)백신을 접종한 후 사망했다고 신고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9월 25일 서울 강서구 한국건강관리협회 건강증진의원 서울지부에서 시민들이 독감 예방접종을 받으려 줄을 선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사망신고 높은데 ‘자연스럽다’?

 

질병관리청과 각 지방자치단체 등 발표에 따르면 23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에서 32명의 독감 백신 접종 뒤 사망신고 사례가 나왔다. 지난 16일 인천에서 10대 남학생이 접종 이틀 후 사망한 사례를 시작으로 19일 1명, 20일 4명, 21일 10명, 22일 13명 등으로 사망신고가 늘고 있다. 사망자 대다수는 60대 이상 고령층이다. 지역별로는 경북이 가장 많고 서울·전북·전남·경남, 인천·대구, 대전·경기·강원·충남·제주 등에서 사망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백신의 부작용에 따른 사망’과 ‘사망 전 백신을 접종한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독감 예방접종 이후 사망한 것은 맞지만 그 원인이 백신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고 그 가능성도 크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사망 사례에 대해서는 현재 보건당국이 역학조사와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진행 중이다. 사망이 백신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지, 백신 외에 다른 사망원인이 분명한지 등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독감 백신 접종 이후 사망 사례가 신고된 건수는 2009년 8건, 2010년과 2011년 1건, 2012년 0건, 2013년 1건, 2014년 5건, 2015년 3건, 2016년 0건, 2017·2018·2019년이 각각 2건이다. 이 가운데 백신과 사망의 연관성이 인정된 사례는 2009년 1건뿐이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우리나라는 연간 30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매일 약 1000명의 사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독감 예방접종률을 약 50%로 가정하고 접종시기를 두 달 정도라 하면, 이 기간에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매일 ​예방접종을 받는 셈이다. 연령과 성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생각해보면 10월의 일일 평균 사망 건수 1000건의 1%에 해당하는 값(10건)만큼이 예방 접종 후 1일 이내 사망자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신의 부작용에 따른 사망’과 ‘사망 전 백신을 접종한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독감 예방접종 주사기. 사진=박정훈 기자


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사인 불명 사망은 약 10%이므로, 매일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는 예방접종 후 사망신고 사례​ 10건 중 10%는 사인이 불명일 거다. 사인이 불명인 경우는 기저질환이 명확하지 않거나 급사에 가까우므로 매일 1건 이상의 사망이 예방접종 후 1일 이내 사망으로 나타나며 원인은 불명에 해당한다. 백신을 맞는 사람의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사망을 포함해 우연의 일치로 불운한 사건이 생길 수 있고, 일시적으로는 백신과 연관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2013년 7월 미국 예방 의학 저널(American Journal of Preventive Medicine)에 실린 '예방 접종 인구의 사망률 및 사망 원인 패턴' 보고서에 따르면, 백신 접종 10만 회 당 평균 6건의 사망 사례가 발생한다.

 

백신의 문제가 아니라면 왜 사망 사례가 급증한 걸까. 독감 예방접종 이상반응(사망 포함) 신고 건수는 2017년 108건, 2018년 132건, 2019년 177건이 보고됐는데, 올해는 지난 20일 기준 431건이다. 이를 두고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21일 브리핑에서 “상온 유통과 백색 입자 발견 등의 백신을 접종하신 분들에 대해 능동적으로 조사를 시행하면서 늘어난 측면이 있고 백신의 안전성 문제 제기에 따라 많은 분이 신고하고 있다”고 했다.

 

국내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 신고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환자 또는 보호자가 보건소나 예방접종도우미사이트를 통해 직접 신고를 하거나, 의료인이 보건소나 질병보건통합관리시스템을 이용해 신고해 각 지방자치단체와 질병관리청이 보고받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만 신고는 강제사항이 아니다. 올해는 백신 조달 계약 업체가 백신 운반 취급과정에서 상온 보관 혹은 냉동 노출된 것이 확인됐고, 그에 따라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48만 도즈(1회 접종분)가 회수된 바 있기에 자진 신고가 늘었다고 보건당국은 설명했다.

 

보건당국은 상온 유통과 백색 입자 발견 등 백신을 접종한 국민에 대해 능동적 조사를 벌이고 있고, 백신 안전성 문제 제기에 따라 접종자들의 신고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보건당국은 또 고위험군인 노인이 예방접종 초기에 몰린 영향도 있을 거라고 본다. 지난 19일부터 만 62세 이상 어르신 무료 독감 백신 예방 접종 사업이 시작됐다. 만 70세 이상이 먼저 접종하고 만 62~69세는 오는 26일부터 순차적으로 접종하는 게 원칙이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브리핑에서 “어르신 예방접종 첫날 183만 명이, 그다음 날은 110만 명 정도가 백신을 맞았다. 3일 동안 거의 300만 명 정도의 어르신들이 접종을 받았다. 초기에 접종이 몰린 영향도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제조번호 같은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사례는?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는 독감 백신을 둘러싼 불안감이 여전하다. 서 아무개 씨는 “할머니가 독감 주사를 매년 맞았다. 그런데 올해는 백신 접종 후 갑자기 알레르기 반응이 와서 다음날 병원에서 알레르기 주사를 맞았다”며 “지금까지 다른 알레르기가 없었기에 의아했다”고 말했다. 일선 의료기관들은 당분간 자체적으로 접종을 중단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국가예방접종사업 지정 의료기관에 오는 29일까지 접종 유보를 요청했다.

 

서울 영등포구 보건소는 22일부터 관내 의료기관에 영등포구 거주 사망자에게 접종한 이력이 있는 백신의 접종 보류를 안내했다. 그러자 일부 국민 사이에서는 수입산 백신을 접종해주는 의료기관을 찾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22일까지 나온 사망신고 사례에서 쓰인 제품이 모두 국내산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유통 중인 독감 백신 제조사 중 외국계 제약사는 사노피와 GSK 두 곳인데, 이들 기업이 완제품 형태로 공급한 백신에서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

 

특히 사망신고 사례 중 11·22번째, 13·15번째 사망자가 같은 제조번호(로트번호)의 백신을 접종받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로트번호는 단일 생산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제조·조립해 동일한 특성을 갖는 제품군에 부여하는 고유번호다. 경북의 73세 여성인 11번 사망자와 거주지를 공개하지 않은 22번 사망자가 맞은 백신은 ‘스카이셀플루4가(로트번호 Q022048, 어르신용)’​였고, 13번 사망자와 경남에 사는 79세 남성인 15번 사망자는 ‘​스카이셀플루4가(Q022049, 어르신용)’​ 백신을 맞았다.

 

사망신고 사례 중 11·22번째, 13·15번째 사망자가 같은 제조번호(로트번호)의 백신을 접종받은 것으로 파악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막연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진=박정훈 기자


다만 이를 두고도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교수는 ‘생일 문제’로 이를 설명했다. 임의로 사람이 모였을 때도 생일이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생일의 가능한 가짓수는 366개인데, 비둘기집 원리(몇 마리의 비둘기가 그보다 작은 개수의 비둘기집에 나눠 들어간다면, 최소한 하나의 비둘기집에는 두 마리 이상의 비둘기가 들어간다는 원리)를 이용해 계산하면 23명만 모여도 생일이 같은 사람이 있을 확률은 50%다.

 

정재훈 교수는 “만약 로트번호를 365개로 가정하면 23건의 백신 접종 후 사망사례만 수집되어도 그중 동일한 로트가 존재할 확률은 50%다. 우리나라에서 로트번호는 총 200개 정도 되는듯하니 그 확률은 80% 정도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다른 의료계 관계자 역시 “로트 번호당 백신 몇 개가 생산됐는지, 그것들이 모두 고령층에게 접종됐는지를 파악해서 통계분석을 해야 한다”며 “(같은 로트번호를 지닌 백신이 15만 개 정도 생산되는데) 이 15만 개를 모두 고령층에게 접종했다면 2명 사망이 자연스러운 숫자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독감 백신 접종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과, 접종을 유보하고 사망 원인 분석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백신을 둘러싸고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한다든지, 보건당국을 과하게 비판할 필요는 없다는 데는 대다수 전문가가 공감한다. 불가피하게 생기는 이상반응으로 인해 독감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돼 예방접종률이 감소하면 계절 독감 발병률이 늘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 데믹’ 현상이 우려되는 만큼 예방접종을 지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편에서는 일차의료체계가 붕괴해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공의료위원장은 “한마디로 ‘미궁’ 상태다. 사망 사고가 보고되지만 백신과 역학적 연관성이 드러나는 의미 있는 데이터는 아직 없다”며 “독감 백신은 오랫동안 쓰인 약이고 철저한 허가 과정을 거치므로 안전하다. 그러나 기저질환이 있는 등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선 민감한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우리나라는 맞춤형 의료보건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접종 대상을 늘리고 의료기관에서도 접종 그 자체에만 열을 쏟는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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