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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70~80년대생에겐 영심이, 90년대생에겐 '반올림' 옥림이

고아라, 유아인 발굴한 대표 성장드라마…중학생 주인공 내세워 세대 뛰어넘는 공감대 형성

2020.10.21(Wed) 16:27:55

[비즈한국] 요즘은 대부분 초등학교 4학년 즈음부터 사춘기가 온다지만, 그래도 ‘중2병’으로 표현되는 중학생들의 무서움을 따라잡기는 힘들다. 어린이 티를 벗어나 2차 성징은 왔지만 외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성인에 가까운 고등학생에 비하면 한참 앳되고 불안정한 감정의 시기. 내 안의 흑염룡이 미쳐 날뛰던 시기 말이다. 그 시절 적었던 문장들을 보면 나 역시 강렬한 ‘현타’가 온다. 아니, 나란 녀석은 그때 뭘 먹고 다녔길래 저토록 미친 생각들을 했었지? 지금은 서른한 살이 된, 2004년 당시 중2였던 ‘반올림’의 옥림이 또한 그때를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이옥림(고아라)과 친구들을 필두로, 옥림이의 가족과 이성친구 등 10대에게 가장 소중한 관계들과 그들이 할 법한 고민을 진솔하게 풀어놓은 ‘반올림’. ‘홍자매’ 홍진아, 홍자람 등이 극본을 맡아 섬세하고도 불안정한 여중생의 심리를 잘 묘사했다. 옥림이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추자현의 목소리 연기도 일품. 사진=KBS 홈페이지

 

2003년 말부터 2005년 초까지 방영했던 ‘성장드라마 반올림# 1’(이하 반올림)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여중생을 주인공 삼은 청소년 드라마다. 중학생이 주인공인 청소년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배우 정준이 보통의 중학생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던 ‘사춘기’가 있었다. 대부분 청소년 드라마는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달려라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를 제외하자면 ‘반올림’의 이옥림(고아라)은 정말 보기 드문 여중생 주인공이다. 그러나 하니는 엄마 잃은 슬픔이 너무 큰 악바리라 현실의 중학생과는 거리가 있었고, 영심이는 너무 짧게 우리를 스쳐갔다(TV애니메이션 버전 13화). 그에 비해 ‘반올림’은 시작부터 명쾌하게 중학생 드라마였다. 1회부터 다른 친구들과 달리 아직 생리를 시작하지 않은 것에 조바심을 내는 옥림이의 모습을 클로즈업했으니까.

 

은행원 아버지(강석우)와 전업주부 어머니(이응경), 전교1등을 도맡아 하는 모범생 언니 이예림(오연서)과 철없기 짝이 없는 쌍둥이 남동생 이하림(박훈정)을 가족으로 둔 이옥림은 예쁘장한 얼굴 외에 특이할 게 없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옥림의 고민 역시 평범하다. 남자친구가 도깨비나 구미호도 아니고, 경천동지할 만큼 대단한 출생의 비밀도 없다. 대신 일곱 살부터 단짝친구인 장욱(서현석)을 보면 요즘 들어 왜 마음이 싱숭생숭한지, 갑자기 나타나 대시하는 멋진 고등학생 오빠 유아인(유아인)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은지, 어째서 이놈의 언니와 남동생은 사사건건 내 인생의 걸림돌만 되는 것 같은지, 베프인 이윤정(현정은)과 서정민(이은성)은 어느 날은 내 목숨만큼 소중하다가도 또 어느 날은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지 등이 고민이다. 어른들에게는 사소한 문제 같지만 열다섯 소녀에게는 지구 멸망보다 중요한 문제들이 1년 3개월간 방영됐다.

 

옥림의 부모를 연기한 강석우와 이응경. 친구처럼 자상한 아버지와 잔소리 많은 어머니라는 일견 스테레오 타입의 부모인 듯 하지만 삼남매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도 솔직하게 보여줘 공감을 샀다. 특히 옥림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고민을 일방적으로 해결(훈육)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 함께 풀어간다는 입장을 보여 신선했다. 사진=KBS 홈페이지

 

‘반올림’이 방영되던 때 대학 졸업과 취업 준비 중이던 나는 옥림이를 내 친구라면 상대하기 껄끄럽고 유치한 아이로 여겼다. ‘반올림’을 즐겨 보긴 했지만 ‘쌈닭’이라 불릴 만큼 고집스럽고 목청이 큰, 중학생임에도 ‘UCLA’를 ‘우클라’라고 읽을 만큼 무식한 구석이 있는, 남 얘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제멋대로인 그 아이가 별로였다. 침착하고 어른스럽던 옥림의 친구 서정민이나 차가운 구석이 있는 이순신(김시후), 간간이 유치한 데가 있지만 그래도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아인오빠’ 유아인은 좋았지만 옥림이는 내게 시큰둥한 존재였다.

 

옥림의 ‘베프’ 서정민(이은성)과 이윤정(현정은). 이기적이라 여겨질 만큼 자신의 ‘선’이 확실한 정민과 따스하게 친구를 배려하는 데 능숙한 윤정은 여러모로 질풍노도를 겪던 옥림을 성장시키는 존재들이다. 이때 공부 잘하고 어른스럽던 정민의 인기가 꽤나 높았다. 사진=KBS 홈페이지

 

돌이켜보면 이옥림이 시큰둥하게 여겨졌던 건 기를 쓰고 어른스러워지고 싶었던 내 10대에 대한 반작용이었던 것 같다. 그 아이를 유치하고 무식하다고 여겼지만 어른스러워지고 싶어 현학적인 책을 읽고 자질구레한 일탈을 감행하던 내 10대는 얼마나 위악적이었나. 그래봤자 몇 년 지나면 얼굴이 화끈거릴 수준인데 말이다. 적어도 옥림이는 난장을 피울지라도 사과할 땐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땐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소녀였다. 어릴 적 내가 동경하던 차갑고 어른스러운 면모는 어른이 되면 적어도 그것을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연기’할 줄은 알게 된다. 하지만 열다섯 살에나 가능했던 순수한 솔직과 치기는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 딱 그때만 가능했던 것들을 아쉽게도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 깨달을 때가 많다.

 

‘아인오빠’ 열풍을 일으킨 유아인(유아인)과 옥림. 어릴 적부터 친구이던 장욱(서현석)이 좋아졌지만 장욱이 정민과 사귀는 바람에 옥림은 아인과 사귀게 된다. 오랫동안 피아노를 연주했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며 미대 입시를 준비 중인 아인오빠는 천방지축 옥림을 꽤나 잘 보듬어주었다. 사진=KBS 홈페이지

 

옥림의 평범하고 일견 유치해 보이는 고민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조금씩 변주할 뿐 본질은 그대로 유지된다. 아니, 오히려 증폭되고 악화되기도 한다. 나이 마흔이 되어도 이성 관계(남편이든 애인이든 남사친이든)는 정해진 답이 없고, 평생 갈 것 같은 우정도 사소한 말 한마디로 갈팡질팡 흔들리며, 물보다 진한 핏줄은 상황에 따라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왕래가 끊어지기도 한다. 열다섯 옥림이라면 한바탕 싸운 후 풀어졌을 일들이, 흐린 판단없이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갈 것 같던 어른이 되었는데 도리어 어려워지는 아이러니라니. 그러니 옥림이가 했던 평범한 고민들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될 삶의 중요한 문제들이었던 셈이다.

 

일곱 살부터 이웃친구로 지내며 남매만큼 친한 장욱과 옥림이. 옥림이 먼저 장욱을 좋아하게 됐지만 장욱은 이후에 옥림에 대한 마음이 생겨나며 유아인과 삼각관계가 형성된다. 어린애들 사랑싸움이라 무시하기엔 꽤나 애절한 삼각관계였다. 사진=KBS 홈페이지

 

2004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옥림이는 2005년 ‘성장드라마 반올림# 2’를 통해 고등학생이 되지만 작품 퀄리티로 보나 감성으로 보나 이옥림과 친구들은 중학생일 때가 훨씬 매력적이다. 그때 배우들이 지금 주연으로 왕성히 활동 중인 걸 보면 격세지감도 느껴진다. ‘반올림’에서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어설픈 연기력으로 배우의 꿈을 접은 ‘옥림이’ 고아라는 ‘응답하라 1994’의 ‘개딸’을 거쳐 ‘도도솔솔라라솔’에서 종횡무진 중이고, 남자 주인공 장욱을 능가하는 ‘아인오빠’ 열풍을 일으킨 유아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대세 배우가 되었다. 서태지 음악과 클림트를 좋아하던 서정민 역의 이은성이 지금은 서태지의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짝이 없고. 옥림의 언니를 연기한 오연서나 유아인의 화실 친구로 몇 번 등장한 이민호, 1회 출연한 류덕환 등 지금 보면 놀랄 여러 배우들이 ‘반올림’에 등장하며 배우의 꿈을 다졌다.

 

‘반올림’은 아버지의 승진으로 이사를 가게 된 옥림이 친구들과 헤어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친구들과 멀어질까 두려워하던 옥림이. 2020년에 서른한 살이 된 옥림이는 여전히 정민이, 윤정이와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 분명한 건 어릴 적만큼 순수한 우정은 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 사진=KBS 홈페이지​

 

지금 중학생들이 나 때와는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다. 세상이 각박해졌다지만 그래도 망아지 같은, 때론 폭주기관차 같은 감성은 여전하겠지? 아무려나 좋다. 옥림이, 욱이, 정민이, 윤정이같이 펄펄 날뛰는 중학생들이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맘껏 만끽하며 살면 좋겠다. 아, 물론 50~60대 인생 선배들이 지금의 나를 보며 비슷한 말을 하려나.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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