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 10월 11일 영국 BBC와 덴마크 등 여러 곳에서 방송된 한 다큐멘터리는 북한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대단한 충격을 줄 만한 놀라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방송 즉시 북한은 모든 내용을 즉각 부인하고 제작자를 격렬히 비난했으며, 스웨덴과 덴마크 외무부는 북한의 위법행위를 유엔과 유럽연합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체 어떤 내용이 이 다큐멘터리에 있었던 걸까.
다큐멘타리 ‘잠복(The Mole)’을 만든 감독 매즈 브뤼거는 말 그대로 첩보작전을 스스로 실행하고 그것을 옮겨서 정보를 빼온다. 그는 실직한 덴마크 요리사 울리히 라센, 전직 프랑스 군인 짐 라뜨라셰 포트러프 등을 고용해서, 그 요리사를 가짜 사업가로 행세하며 유럽의 스페인 친북단체에 침투시키는데 성공한다.
유럽의 친북인사들과 북한 외교관들은 요리사가 연기에 완벽하게 속아, 그의 말을 전부 다 믿게 되었고, 이를 알아챈 감독은 전직 군인 라뜨라셰를 전설적인 무기상인 ‘미스터 제임스’라는 인물로 위장시켜 외교관들에게 소개한다. 북한 당국과 북한 외교관들은 이들의 연기에 완벽히 속아 극진히 대접을 해 주는 것은 물론, 평양으로 초청하여 융숭한 대접과 함께 나래무역이라는 회사와 무기 거래 계약을 성사시킨다.
무기 계약 과정에서 그들은 북한의 내부 정보와 능력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얻게 된다. 그들은 북한이 우간다 내에 평범한 리조트로 위장한 지하 무기 공장을 건설하는 계획과 함께 수많은 북한의 무기 목록이 빼곡히 들어찬 무기 카탈로그 리스트를 입수하는데 성공, 북한이 UN 제재 와중에도 불법 무기 수출에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 이 다큐의 주된 내용이다.
그야말로 영화감독이 10년에 걸쳐, 스스로 첩보 작전을 벌인 과정을 고스란히 필름에 담아서 전 세계에 공개한 셈이다. 국가 정보기관도 아닌 일개 영화감독이 벌인 작전답게, 작전은 과정에서 실수도 많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여러 실수를 하지만, 놀랍게도 북한 당국과 외교관들은 이들보다 훨씬 허술했다. 무기 거래 계약을 진행하는데 회사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실소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여러 외신들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여 이 모든 과정이 진짜이며 북한은 정말로 속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영화 감독과 그 동료들이 계약한 회사인 나래무역은 실제로 활동해서 UN의 재재 블랙리스트에 이미 올라와 있는 회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된 정보들은 어떤 내용들일까. 영화감독 메즈 브뤼거는 모든 자료를 UN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지만, 다큐멘터리 속에서는 그들이 입수한 자료의 아주 작은 부분들만이 공개되어 있어 그 전모를 다 알기는 어렵다. 다만 다큐멘터리 속에서 아주 잠깐씩 공개된 서류 뭉치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많은 군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을 하나 하나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로 알아볼 수 있는 건 북한의 지하시설 건설 노하우이다. 북한은 이 영화에서 동아프리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의 한 섬을 매입해서, 겉으로는 리조트지만 지하에는 거대한 무기 및 마약 생산 공장을 건설하려고 시도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지하시설의 설계 철학이다. 입구는 두 개, 출구는 한 개로 되어 있으나 출구 하나는 가까운 비행장으로 직통하는 직선으로 굴착하고, 입구는 위성의 파악을 방해하기 위해 지붕이 있는 건물 안에 2개를 설치하되 크기를 달리하여 인원 전용 통로와 물자 전용 통로를 다르게 설치한다. 또한 시설의 몇 가지 중요 장비를 보관하는 곳은 주 건물과 분리한 다음, ㄱ자 통로 혹은 ㄹ자 통로를 설치해서 주 시설을 보호한다. 이는 지하관통 폭탄(벙커 버스터)등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북한의 노하우와 설계 철학을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보인다.
두 번째로 발견한 점은 북한의 개인용 화기 및 장비 정보이다. 북한이 많은 수의 개인용 소총이나 기관총 등 개인화기를 개발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 다큐에서는 북한이 ‘전자 전사(Electro-Worrier)’라는 이름의 병사용 개인 전자장비 체계도 수출하려고 시도 중이라는 언급이 나왔다. 전자 전사의 자세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지만, 지난 10월 10일 퍼레이드에서 여군 부대가 개인용 C4I(지휘통신)단말기와 무전기를 장착한 모습을 볼 때, 이미 북한이 개인용 전자장비 기술에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새로운 개인화기는 놀랍게도 드론격추용 전자총이었다. 마치 AK-47 자동소총에 긴 막대 두개와 탄창을 붙인 것 같은 이 무기는, 내부에 전원과 지향성 전자기 펄스 생성기가 장착된 일종의 고에너지(HPM) 무기로, 전자기 펄스로 드론을 마비시킬 수 있는 기술을 북한이 이미 갖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전차 미사일 정보 역시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지만 흥미롭다. 북한은 일명 ‘불새-3’라는 신형 대전차 미사일을 2016년 2월26일에 공개한 적이 있는데, 구 소련의 AT-4 대전차 미사일을 레이저 유도 방식으로 독자적으로 개량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된 것은 이보다 발전된 ‘불새-4M’으로, 북한의 서류에 따르면 사거리는 4000m에 미사일 가격은 1발에 4만 2000달러 임을 알 수 있었다. AT-4의 사거리가 2000m에 불과했으니 북한은 불새 미사일의 성능을 거의 두 배 가까이 늘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에 더해서, 북한이 불새-4M보다 더욱 크고 발전된 ‘북한판 코넷’ 대전차 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번에 새로 밝혀졌다. 9k135 코넷 미사일은 불새보다 더욱 큰 러시아제 미사일로, 탄두 위력이 강해 우리 군의 주력전차에게도 큰 위협이 될 수 있고, 사거리도 5000m로 꽤 길어 대응이 어렵다. 북한이 코넷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는 추측은 많았는데, 이번에 그것이 실제로 증명된 셈이다.
북한의 대함미사일과 발사차량에 대한 추가 정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2015년 2월 금성-3 이라 불리는 신형 대함미사일을 공개한 적이 있었는데, 수출 카탈로그에는 ‘SS-N5’라고 표시되며 VTT-323 ‘신흥’ 장갑차에 탑재된 지상발사 버전을 처음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은 금성-3형 미사일의 발사차량을 이미 2종 공개했는데, 퍼레이드에서 공개되지 않은 버전까지 모두 세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북한의 공대공 미사일 정보는 기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내용이 있었다. 바로 R-60MK 미사일이 그것이다. R-60 미사일은 공중전에서 쓰이는 단거리 적외선 유도 미사일인데, 북한이 미그-23 및 미그-29에 R-60미사일을 장착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으나, R-60미사일을 자체 생산할 수 있으며, 정확한 버전이 R-60MK라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공개된 정보다. R-60 기본형은 사거리가 4km 정도에 불과하지만, R-60MK는 사거리가 12km에 달하고, 적외선 탐색기가 개량되어 모든 방향에서 적기를 조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R-60MK 미사일은 미그-29에 탑재된 헬멧 장착 조준시스템(HMS)와 연동되어, 조종사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미사일을 쏠 수 있어 근접전에서 강력한 능력을 갖출 것으로 크게 우려된다.
또한 북한의 대형 방사포와 탄도미사일에 대한 매우 의미 있는 정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1호’로 잘 알려진 북한의 화성-7 탄도미사일의 정확한 사거리와 가격이 리스트에 있었는데, 정확한 사거리는 1350km이며 1발당 가격이 494만 달러에서 551만 달러 사이이고 탄두에는 고폭탄두, 열압력 탄두, 클러스터 탄두가 장착될 수 있는 것이 확인됐다. 화성-7호 미사일의 수출 가격은 원가와 차이가 있을 것이지만, 우리 군의 차세대 단거리 미사일 KTSSM 미사일이 한화 약 8억 원, 현무-2 탄도미사일이 20억 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대단히 비싼 가격인 셈이다.
즉, 인건비 개념이 거의 없는 북한의 방위산업 특성을 고려해도 북한이 자랑하는 미사일의 가격은 매우 비싸고, 대량 보유와 생산이 어려울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북한이 카탈로그에 보여준 화성-7호 미사일 발사 차량은 그 동안 한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독특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제 만(Man)트럭과 러시아제 스커드 발사대가 혼합된 형태다. 이로 미루어 보아, 북한은 미사일 발사대를 다품종 소량생산을 함으로서 다양한 차량 디자인을 가진 것으로 짐작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북한의 신형 122mm 유도 방사포이다. 122mm 방사포는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할 때 사용된 주 무기로, 초 대형 방사포보다 사거리는 짧지만 가격이 저렴하여 북한군의 주력 방사포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은 무 유도로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 로켓에 네 개의 유도날개와 위성항법 장비가 탑재된 신관을 로켓 끝에 장착해서 무 유도 로켓을 정밀유도무기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퍼레이드에서 주목받거나 발사시험을 하는 초 대형 방사포가 그 크기와 가격 때문에 주력 무기로 사용하기 어렵고 생산량도 작은 반면, 122mm 방사포는 로켓과 발사차량이 이미 대량 생산되어 북한의 핵심 군단포병 능력이 우리 예상보다 훨씬 정확하게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북한은 형편없는 정확도로 망신을 당했지만, 제 2의 연평도 도발에서는 이제 그런 운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명백해졌다. 따라서 반드시 이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덴마크의 한 감독이 장난처럼 시작한 첩보작전은 이렇듯 예전에는 알기 어려웠던 북한의 방위사업과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귀중한 정보를 가져다 주었다. 북한이 진정으로 남한 동포들과 어울려 한반도 평화를 만들 생각이 있다면, 영화 ‘잠입’에서 공개된 그들의 실상에 대해 부인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해명과 개선조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능력에 대해서 새롭게 평가하고 대응책을 찾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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