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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엄마는 왜 가슴에 빨간약을 발랐을까 '꽃보다 아름다워'

가족에 헌신하는 우리 시대 엄마의 삶 그려…"엄마, 쫌!"을 외치는 자식들에게 '강추'

2020.05.08(Fri) 16:53:58

[비즈한국] 세상의 사람들이 생김새나 성격이 모두 제각각인 만큼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도 제각각인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말한다. “대체 우리 엄마는 왜 그래?”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 같지 않아?” 혹은 진심 짜증을 담아 함축적으로 내뱉기도 한다. “엄마, 쫌!” 차분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엄마라 부르는 그 여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저 우리 엄마라는 죄밖에. 생각해보면 우리는 엄마에게 무한히 많은 것을 바란다. 적어도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에게 덧씌워진 프레임이 많다. 엄마라면, 엄마니까, 엄마라서. ‘꽃보다 아름다워’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였다.

 

노희경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사람 냄새가 진하다. 작품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엄지를 내밀지만 초기에는 시청률 면에서는 안타까울 때가 많았는데, ‘꽃보다 아름다워’는 시청률도 높게 나오며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다. 사진=KBS 홈페이지

 

‘꽃보다 아름다워’는 흔히 ‘엄마라면 이래야지’ 할 법한 엄마(고두심)가 나온다. 이 엄마, 이영자 씨는 그야말로 희생과 인내의 상징이다. 젊을 적부터 숱하게 바람을 피우던 남편 김두칠(주현)은 젊은 여자와의 사이에서 손녀뻘 아들을 낳으며 살림을 차린 지 오래다. 영자 씨의 장남 재식(강지환)은 수년 전 나이트클럽에서 일어난 폭행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큰딸 미옥(배종옥)은 남편의 바람기와 손찌검으로 3년 별거 끝에 이혼을 한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한 엄마(고두심)와 그런 엄마의 ‘껌딱지’ 같은 막내아들 재수(김흥수). 당시 시트콤과 예능 등으로 가볍고 코믹스러운 이미지였던 김흥수는 이 작품으로 연기력을 높이 평가받았다. 사진=KBS 홈페이지

 

잘나가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인 차녀 미수(한고은)는 집안에 경제적으로 큰 도움을 주지만 독립해 살며 엄마의 간섭을 바라지 않고, 엄마와 가장 친근한 사이인 막내아들 재수(김흥수)는 형 재식의 폭행사고 진범이면서도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형을 살지 않은 진범을 찾으려 대학도 가지 않고 나이트클럽 ‘삐끼(호객꾼)’로 일한다. 자기는 살림까지 차린 주제에 제사 등 각종 집안 대소사로 뻔질나게 집안을 드나들며 온갖 참견을 해대는 아버지 두칠 덕분에 엄마 영자 씨와 자녀들의 사이는 돈독한 편이지만, 남들 눈에는 바람 잘 날 없는 ‘콩가루 가족’처럼 보일 터다. 그래서 엄마는 매일 바쁘다.

 

악인 없는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유일한 악역이었던 남편 두칠(주현). 바람이 나 어린 아들까지 두며 따로 사는 것은 물론 내연녀의 신장 이식수술을 본처에게 부탁하는 등 뻔뻔스럽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무시당하며 속을 앓으면서도 자식을 외면하지 못하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사진=KBS 홈페이지

 

큰딸 미옥이 노총각 시간강사 박영민(박상면)과 연애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의 입방정에 오르내리면 소문의 발화자인 동네 아줌마의 머리채를 휘어잡아야 하고, 직장일에 바쁜 미수의 집에 정기적으로 들러 청소도 하고 반찬도 채워 넣으면서 미수의 속을 썩이는 남자의 정체도 궁금해해야 하고, 남편의 여동생인 고모(박성미)의 치매 앓는 시어머니(김영옥)도 간간이 돌봐야 한다. 자질구레한 집안일이며 미옥의 딸 민이를 돌보는 것도 엄마 몫이며, 아직도 어린애 같은 재수의 어리광도 받아줘야 한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잘나가는 미수(한고은)와 그의 연인 장인철(김명민). 유부남이었다 이혼남이 된 인철과의 만남으로 미수는 엄마와 언니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런데 인철은 재식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인물. ‘꽃보다 아름다워’는 연기 논란이 있던 한고은의 배우 입지를 높여줬다. 파릇파릇하던 김명민의 모습은 보너스. 사진=KBS 홈페이지

 

그런데, 삶은 자꾸 어수룩하고 착한 엄마 영자 씨의 마음을 할퀸다. 총각인 영민과 재혼하려던 미옥은 영민네 식구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상처받고는 “왜 엄마는 날 이렇게밖에 못 키웠어? 엄마는 착한 게 아니라 방관자야!”라며 엄마에게 오열한다. 이혼남과 연애를 하는 미수에게 염려를 표하는 엄마에게 미수는 “내 인생이야”라며 차갑게 선을 긋고, 가끔씩 편지로 왕래하는 고향 오빠 장씨(장용)의 존재가 소소한 즐거움이건만 철없는 아들 재수는 눈에 불을 켜고 그와의 만남을 저지한다. 엄마를 상처 입히는 끝판왕은 단연 남편 두칠이다. 다른 여자와 바람 났어도 영자 씨는 여전히 두칠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는데, 그는 영자 씨의 생일날인지도 모르고 뻔뻔스럽게도 살림을 차린 재건엄마(방은희)가 신장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영자 씨에게 신장 이식을 부탁하려 든다.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던 엄마가 가슴이 아프다며 ‘빨간약’을 바르는 장면. 말이 필요없는 장면으로, 그냥 보면 눈물이 난다. 고두심은 그해 KBS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사진=KBS 홈페이지

 

‘꽃보다 아름다워’의 엄마, 이영자 씨의 삶을 지켜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엄마이지만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가족에게 헌신하는데, 그래도 자식들이 제법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끔찍함에도 돌아가며 결정적인 순간에 엄마를 할퀴니까. ‘우리 자식들은 입으로만 늘 엄마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상처를 주었다. 그녀가 얼마나 지쳐가는 줄 모른 채’라고 읊는 미옥의 내레이션처럼, 자식들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 견주기 어렵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왔으랴. 그러니 오늘도 곳곳에서 자식들의 이런 말들이 터져 나오는 거다.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 또는 “대체 나를 왜 낳았어?” 또는 “엄마니까, 당연한 거 아냐” 하는 말들. 나도 내뱉었고, 당신도 한 번쯤은 했을 그런 말들이 하루하루 엄마를 아프게 한다. 오죽하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영자 씨가 가슴에 ‘빨간약(머큐로크롬)’을 발라댔을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시골로 내려간 엄마는 쓰라린 기억들을 잃고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요양소의 도움을 받는다지만 치매를 앓는 엄마를 책임지게 된 미옥과 미수, 재수는 그런 엄마에게 지치지 않고 잘 살아갔을까. 사진=KBS 홈페이지

 

그야말로 전형적인 엄마, 영자 씨마저 자식들에게 엄마라는 이유로 저런 소리를 듣는데, 세상의 많은 엄마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나와 동생들 또한 엄마한테 조금이라도 서운한 일이 생기면 영자 씨 같은 엄마와 비교하며 우리 엄마는 절절한 모성애가 없다는 둥, 엄마가 교육을 잘못 시켜서 내가 이 모양이라는 둥 수근수근댔으니까. 세상의 자식들이 이런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는 데는 오랜 시간 다져온 모성애 신화와 더불어 ‘꽃보다 아름다워’를 비롯한 여러 미디어를 통해 구축된 전형적인 엄마상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물론 자식들의 철없음은 ‘디폴트’이고). 영자 씨를 연기한 고두심을 포함해 ‘국민엄마 배우’ 삼대장에 속하는 김혜자, 김해숙 배우가 연기한 엄마들의 면면을 보라고. 디테일은 다르지만 그렇게 다들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다. 키워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인데 왜 꼭 그래야 하냐고. 그러니까 우리 자식들이 고마움을 모르지.

 

사람 냄새 나는 사람들, 꽃보다 아름다운 착한 사람들이 많은 ‘꽃보다 아름다워’지만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인물은 두칠의 여동생이자 삼남매의 고모(박성미). 바람난 철면피 오빠를 둔 그녀는 영자 씨와 조카들의 편이지만 그럼에도 핏줄인 오빠를 외면하지 못하고,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오래 모신 보기 드문 며느리지만 순간순간 악다구니도 칠 줄 안다. 사진=KBS 홈페이지

 

드라마의 마지막, 치매를 앓는 엄마 때문에 간간이 엄마를 맡길 수 있는 요양소가 있는 지방으로 내려온 미옥의 집에서 엄마와 자식들은 꽃을 심고, 환하게 웃으며 장난을 친다. 그 장면을 볼 때면 조금 서글퍼진다. 그 숱한 모진 기억들을 잊어야만 엄마가 마음껏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건가 싶어서. 

 

오늘은 5월 8일 어버이날, 평일이기 때문에 미리 부모님을 만났거나 주말에 만나는 자식들이 많을 것이다. ‘가정의 달이라 돈이 많이 나가네’ ‘주말에 쉬지도 못하고 부모님 만나야 하니 피곤하네’ 하는 현실적인 생각들도 많이 하겠지. 어쩔 수 없다. 이건 우리의 현실이니까. 그래도, 가끔은 ‘꽃보다 아름다워’ 같은 드라마를 보며 오늘도 가슴에 ‘빨간약’ 바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봤으면 한다. 영자 씨 같은 엄마가 아니어도 모든 부모들은 제각각 애면글면 자식을 키워왔으니까. 그들의 노고와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걸 기억하라는 의미에서(세상의 모든 아버지들도 잊지 마세요).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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