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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짜파게티 먹으며 '짝'을 챙겨보던 90년대 일요일 감성

'한지붕세가족' 이어 3년간 방영…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건강한 웃음 선사

2020.05.01(Fri) 12:18:31

[비즈한국] 30대 중반 이상이라면 일요일 아침의 일상이 나와 비슷했을 수도 있겠다. 달콤한 일요일 아침의 늦잠을 겨우 떨치고 눈 비비며 ‘디즈니 만화동산’이나 ‘만화잔치’를 시청한 뒤 그 다음 이어지는 일요 아침 드라마를 보는 패턴 말이다. 국민학생일 때는 ‘한지붕 세가족’을, 중학생부터는 ‘짝’이 일요 아침 드라마를 책임졌는데, 거기에 일요일에 꼭 먹어줘야 할 것 같은 ‘짜파게티’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나름 오랜 시간 일요일의 경건한(?) 패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짝’은 8년간 방영한 ‘한지붕 세가족’의 후속작으로, 1994년 11월부터 1998년 1월 초까지 3년 넘게 방영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 보내고 웨딩숍을 운영하는 어머니 박월례 여사(손숙)와 교통사고로 한날 한시에 남편을 잃은 큰딸 차갑순(윤미라)와 둘째딸 차필순(임예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리라 선언하는 항공사 승무원인 막내딸 차해순(김혜수)을 필두로 갑순의 아들 오민수(안재욱), 필순의 딸 김수정(채림)이 한 집에서 복작거리며 산다.

 

해순네 집 또는 직장의 모습을 비중있게 다룬 ‘짝’. 해순과 건우 등이 근무하던 항공사의 모델은 아시아나로, 계절과 시간에 따라 바뀌는 이들의 유니폼 복장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편 방영 기간이 길었던 만큼 연출 또한 정세호, 안판석, 김윤철 등 여러 PD들이 거쳐갔다. 사진=MBC 홈페이지

 

여기에 바람기 다분해 한 번 이혼했다 겨우 재결합한 박월례 여사의 아들 차지풍(길용우)와 그의 아내이자 필순의 친구인 강소영(오미희)네 집, 필순과 소영의 친구이자 박월례 여사의 웨딩숍 실장인 김용미(권은아)네 집, 해순의 남자친구가 되는 항공사 승무원 정건우(이종원) 등 항공사 사람들이 가세하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낸다.

 

‘짝’은 3대가 한 집에서 사는 모습을 그린 홈드라마이자 주인공 격인 해순과 건우의 직장 드라마이자 청춘물, 여기에 소소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하는 시트콤의 역할까지 감당했다. 일요일 아침에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보기에 무리가 없어야 하는 만큼 자극적인 내용은 빼고 건강한 웃음을 주려고 애썼달까. 특히 이 드라마를 통해 스튜어디스, 스튜어드를 꿈꾸게 된 청소년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승무원 복장을 하고 환하게 웃던 김혜수와 이종원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긴 했거든.

 

밝은 미소가 일품이었던 차해순 역의 김혜수.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김혜수는 ‘한지붕 세가족’에 미시족으로 출연한 것에 이어 후속작인 ‘짝’에도 출연하며 ‘건강미인’ ‘글래머스타’의 이미지를 맘껏 뽐냈다. 재미난 건 이 시절부터 김혜수의 ‘사이즈’에 대한 유머(?)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아니, 김혜수만큼 몸매 좋기가 얼마나 힘든데!). 사진=MBC 홈페이지

 

생각해보면 ‘짝’은 다분히 90년대스러운 드라마였다. 김혜수가 맡은 차해순은 후배로 입사한 정건우가 등장하기까지 결혼은 절대 안 한다며 비혼을 선언하며, 가족 간에도 돈 거래는 거절하는 소위 ‘쿨’한 인물이었다. 연애 문제에 있어서도 정건우가 마음에 들자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스킨십이 스스럼없는, 당시 빈번하던 ‘신세대’ ‘X세대’의 표상이었다고 할까.

 

해순과 건우를 필두로 민수, 수정, 그리고 이후 민수의 여자친구가 되는 해순의 후배인 송현주(이민영) 등이 당시 청춘들을 대변했다면, 툭하면 “여자가 말이야” “남자라면”이라는 말을 들먹이는 차지풍과 차갑순, 차필순 등은 변종처럼 불거져 나온 신세대, X세대와 충돌을 겪는 기성세대로 표현되었다. ‘요즘 애들은’이란 말은 대대로, 전 세계적으로 쓰여온 말이긴 하지만 기성세대가 뜨악할 정도로 놀라기 시작한 건 90년대였다고 본다. ‘짝’은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충돌을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다. 하긴, 일요일 아침에 부모와 자식이 격렬한 충돌을 빚는 드라마였다면 자녀들의 드라마 시청권은 박탈되었을 테니.

 

해순의 항공사 후배이자 연인인 정건우(이종원) 또한 건실하면서도 당시 신세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해순의 오빠 지풍(길용우)네 집에서 살던 건우는 술을 싫어하고 요리나 청소에 적극적인 모습으로 기성세대인 지풍 등에게 특이한 남자 취급을 받는다. 사진=MBC 홈페이지

 

놀라운 건 ‘짝’이 강요된 웃음, 그림 같은 가정을 그려내는 전형적인 시트콤, 전형적인 홈드라마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다. ‘홈드라마가 아닙니다’라고 선언하며 출발했던 ‘짝’은 일찍 남편을 잃은 어머니와 딸들이 사는, 남자가 부재한(갑순의 아들 민수가 있지만 다소 ‘마마보이’처럼 그려진다) 가족을 전면에 내세운다며 ‘결손가정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비판한 신문 기사도 있었을 정도로 당시로는 나름 파격적인 설정이 돋보였다. 또한 그 결손가정의 어려움-혼자가 된 외로움, 아버지가 없는 것에 대한 편견 등-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내 안의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기도 했다.

 

김혜수와 실제로 한 살 차이였던 안재욱이 해순의 조카 민수로 출연했다. 극중에서도 몇 살 차이나지 않는 설정이긴 했지만 이들의 이모-조카 ‘케미’도 건우-해순 커플 못지않은 재미가 있었다. 안재욱은 ‘짝’에 출연하다 ‘별은 내 가슴에’로 일약 스타가 된다. 사진=MBC 홈페이지

 

독보적인 ‘건강미인’이었던 김혜수와 ‘불륜 전문 캐릭터’로 굳어지기 전의 싱그러웠던 이종원, 아직 뽀송뽀송하던 안재욱과 채림 등 젊은 연기자들의 모습에 눈길이 많이 가긴 했지만 ‘짝’에서 단 한 명의 멋진 캐릭터를 고르라면 나의 선택은 손숙이 연기한 박월례 여사다. 여성이 20대 후반만 되어도 노처녀로 놀리던 90년대 중반에 막내딸 해순의 비혼 선언에도 윽박지르지 않고 혼자 잘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말해주고, 자식은 물론 어린 손자손녀까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주던 어머니가 어디 흔하던가. 자식들인 갑순, 지풍, 필순이 도리어 어머니보다 더 ‘꼰대’ 같았을 정도다.

 

‘짝’에서 보수적인 남자 역할이었던 지풍과 지풍의 후배 지명근(윤철형). 지풍은 소소한 바람기로 아내와 이혼했다 겨우 재결합했지만 “여자가 말이야” 등의 말을 곧잘 입에 올리는 보수적인 남자. 명근 또한 비슷하지만 홍도희(홍진희)와 이어지면서 의외의 모습들을 자주 보였다. 사진=MBC 홈페이지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없이도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만드는 품격과 연륜을 갖춘 대화 방식, 자신이 잘못 판단한 일에는 어른임을 내세우지 않고 곧바로 사과하는 소탈함, 거기에 60이 넘은 나이에도 웨딩숍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전문직 여성. 지금 봐도 닮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 박월례 여사였다고.

 

오랜 시간 방영한 만큼 ‘짝’에서 기억나는 인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푼수 캐릭터로 웃음을 담당했던 해순과 건우의 직장 선배였던 객실장 홍도희(홍진희), 해순을 좋아했다가 도희와 이어지는 사진작가 지명근(윤철형) 외에도 특별 출연 및 단역으로 스쳐 지나가는 인물들이 부지기수. 매의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면 풋풋한 얼굴의 김상중, 정보석, 윤다훈, 송혜교, 강성연 등을 발견할 수 있다.

 

‘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캐릭터이자 닮고 싶은 어른인 박월례 여사(손숙). 연극배우인 손숙이 연기한 이 역할은 지금 시대에도 전혀 ‘꼰대’스럽지 않은, 깨어 있는 인물이다. 사진=MBC 홈페이지

 

어느 회차에서는 비행기 승객으로 앉아 있는 단역의 박용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유튜브 ‘옛드: 옛날 드라마’에 현재 50회까지 업로드되어 있고 ‘MBC ON’에서도 재방영 중이니, 이번주 일요일에는 그 옛날 일요일의 감성을 떠올리며 ‘짝’을 보는 것은 어떨지. 기왕이면 ‘짜파게티’도 곁들어서.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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