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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시티홀', 우리가 꿈꾸는 정치인은 드라마에만 있을까

로맨스에 방점 찍은 판타지 정치 드라마…허무맹랑하면서도 묘한 설득력

2020.04.14(Tue) 11:00:53

[비즈한국] 사전투표를 했다. 이전에도 사전투표를 두어 번 했지만 이번만큼 줄을 서며 투표를 했던 건 처음이다. 전국 사전투표율이 26.7퍼센트란다. 이건 코로나19 때문에 덜 복잡한 시기에 투표하려는 사람들의 분산 작전이 실패한 걸까, 코로나19 때문에 현실에서 정치가 이토록 중요하단 걸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SNS에 떠도는 농담처럼 코로나19 때문에 집에만 갇혀 있던 사람들이 이 핑계로 콧바람이라도 쐬러 나왔기 때문일까? 어쨌든 이번 21대 국회의원선거는 누가 이기고 지든 코로나19의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만은 자명하다.

 

‘시티홀’은 ‘파리의 연인’ ‘프라하의 연인’ ‘온에어’에 이어 신우철 PD와 김은숙 작가가 다시 한 번 손을 잡은 작품. 이후 함께한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을 포함해 이들 콤비의 작품 중 ‘시티홀’은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작가의 애정은 물론 시청자들도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반응이 컸다. 사진=SBS 홈페이지

 

아무려나 사전투표는 끝났고, 이 글을 쓰는 이틀 뒤면 선거일(4월 15일)이니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 테다. 나름의 소신으로 투표는 했지만 사실 그 후보와 그 정당에 열정적으로 애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최악을 피하고자 차악을 선택한다는 마음? 그래서 문득 드라마 ‘시티홀’이 떠올랐다. 11년 전인 2009년 방영했던 ‘시티홀’은 냉정히 말해 정치보다 로맨스에 좀 더 방점이 찍힌 일종의 판타지물이었지만, 그럼에도 정치가 현실과 괴리된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던 작품이다. 

 

‘시티홀’은 인구수 13만 명에 불과한 인주시를 배경으로 한다. 관성적으로 여당에 표를 던지며 혈연・지연・학연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정치적으로 낙후된 가상의 소도시다. 가상이지만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도시의 시청에 말단 공무원 신미래(김선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시장 비서실에서 ‘커피나 타주는 노처녀’로 보지만, 각종 동호회 회장 직함만 20개가 넘을 만큼 친구와 의리와 정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동네 사람들의 각종 민원을 어떻게든 들어주고자 하는 정 많은 인물이지만 자신과 정치는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런 그녀가 카드빚 2000만 원을 갚고자 시에서 추진하는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에 출전하다 정치판에 휘말리게 된다.

 

10급 공무원인 신미래(김선아)는 마을 이장선거에서도 소심하게 기권표를 던지는 정치 무관심자였다. 밴댕이 아가씨 선발대회를 계기로 자신이 그간 해온 행동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하는 행동들이 모두 정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좌충우돌 시장에서 시민을 생각하는 사려 깊은 시장으로 거듭난다. 사진=SBS 홈페이지


 서른여섯 먹은 여자가 지방 소도시라지만 미녀 선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것부터가 몇몇 정치인들의 이권에 의한 것이었다. 2000만 원 상금 대신 미래가 받은 건 고작 100만 원과 함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라는 말뿐이었으니까. 자금 횡령을 위해 10급 공무원인 미래를 우승자로 내세우고 상금은 물론 대회 관련한 여러 예산을 횡령한 것인데, 신미래라는 사람의 변화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적당히 눙치고 갈 수 없었던 그녀의 항변은 부당한 해고로 이어지고, 그에 굴할 수 없던 미래의 1인 시위 등이 이어지며 결국 인주시장의 횡령이 드러나며 시장 자리가 공석이 되기 때문. 그러다 시장 보궐선거에 나가게 된 신미래가 덜컥 시장에 당선되면서 미래와 인주시는 새로운 세계를 맞는다. 물론 여기에 이르기까지는 나름의 야심과 모종의 계획 때문에 인주시까지 오게 된 조국(차승원)이라는 인물의 도움이 컸다.

 

미래의 동창이자 인주시를 먹여 살리는 회사의 고명딸인 민주화(추상미)는 전형적인 패거리 정치를 선보이는 구 정치인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부잣집에서 나고 자랐지만 표심을 위해 때마다 재래시장을 돌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많이 봐온 모습이다. 사진=SBS 홈페이지

 

신미래가 정치의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애초 인주시에 부시장으로 내려온 조국은 원래 구 정치의 생리를 착실히 따르는 인물이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정치계의 막후 인물이라 일명 ‘BB’라 불리는 최동규(최일화)의 숨겨진 혼외자인 조국은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동시에 합격하며 ‘천재 관료’로 불리며 언젠가 청와대에 입성할 것을 꿈꾸는 야심가다. 청와대 입성을 도와줄 재벌 대한그룹의 고명딸 고고해(윤세아)라는 약혼녀도 있다.

 

‘정치를 마음으로 하는 인간’을 가장 경멸했던 그가, 최동규의 지시로 ‘허수아비 시장’으로 신미래를 지원했던 그가, 어느 순간 신미래의 진심과 열정에 빠져든다. 대개 사람은 바뀌지 않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가끔 속수무책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조국은, 미래와 함께 기존에 꿈꿨던 권모술수의 정치가 아닌 새로운 정치를 꿈꾸게 된다.

 

숨겨진 혼외자가 있다는 약점을 쥐었던 대한그룹 회장에 의해 막후 세력으로 물러났던 ‘BB’ 최동규(최일화)는 혼외자 조국(차승원)과 대한그룹 회장 딸 고고해(윤세아)를 약혼시키며 차기 대권주자로 나선다. 재벌과 정치세력의 끈끈한 관계 역시 많이 봐온 모습 중 하나다. 사진=SBS 홈페이지

 

‘시티홀’에서 그리는 인주시의 정치 세계는 드라마답게 꽤나 극적이고 때로는 유치하며 한편으로는 어이없다. ‘무스펙’ 서른여섯 살 여자가 미인대회를 거쳐 시장이 되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설정일 수 있다. 온갖 권모술수와 당리당략으로 시시때때로 좌절하지만 끝내 진심은 통한다는 아름다운 결말도 드라마니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티홀’에서 신미래와 조국이 겪는 권무술수와 당리당략은 대체로 현실 정치의 면면을 따온 축소판이기도 하다. 거물 정치인 최동규와 재벌 대한그룹의 정경유착, 인주시 시의원인 민주화(추상미)가 진두지휘하는 패거리 정치 등은 우리가 흔히 봐온 모습들이다. 시장 선거에 나서기 전 미래가 말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란 ‘정당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 떨리는 것, 정기적으로 치사한 짓 하는 것’일 수 있다.

 

친부 최동규와 결별한 조국은 인주시에서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신미래와 함께하기로 나선 후에는 기존 정당들과 결별하고 무소속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소속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란 무척 요원한 일이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언젠가는 무소속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사진=SBS 홈페이지

 

‘시티홀’은 그렇게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치를 도외시했던 사람들에게 정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지, 그리고 드라마니까 가능하다고 여기는 판타지스러운 정치가 왜 꼭 판타지로만 여겨야 하는지 일깨운다.

 

‘현실감 쩌는’ 정치 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미드 ‘웨스트윙’이나 ‘하우스 오브 카드’도 있고, 작년 방영했던 ‘보좌관’이나 ‘60일, 지정생존자’(원작은 미드 ‘지정생존자’)를 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시티홀’은 로맨스에 방점이 찍힌 판타지물이니까. 하지만 내가 뽑은 후보자가, 48.1센티미터에 달하는 비례대표 투표용지에 속한 정당의 정치인들이, 정말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드라마로나마 보고 싶다면 ‘시티홀’도 괜찮은 선택이다. 꿈꾸는 건 자유고, 더디지만 가끔은 그 꿈들이 현실이 되기도 하니까.

 

보궐선거로 2년짜리 시장이 된 미래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무소속 국회의원인 조국이 자신의 바람처럼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로맨스라는 거.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하며 해피엔딩을 맞는다.  사진=SBS 홈페이지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의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로,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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