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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확진자 적은 독일에서 사재기 나선 '남다른' 이유

‘격리되면 아예 집 밖에 나오지 않겠다’는 이타적 공동체 의식 엿보여

2020.03.06(Fri) 15:34:09

[비즈한국] “온 동네 약국을 다 돌았는데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네요. 온라인 숍에서도 완전 품절이에요.” 

“손 소독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핸드 워시와 비누도 다 팔렸더라고요.”

“휴지도 없어요. 아침에 마트 세 군데 돌아서 겨우 구했어요.” 

“쌀도 거의 없던데요. 스파게티 면이나 소스 칸도 텅텅 비었어요.” 

 

세정 용품은 물론, 세제, 휴지, 멸균우유 등 비축 가능한 물품 진열대가 비어있는 마트와 드러그스토어 풍경. 사진=박진영 제공


한국이냐고? 천만에. 며칠 사이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 단톡방이나 커뮤니티 등에는 ​​본인의 경험담과 함께 놀라운 인증샷들이 연일 ​올라왔다. 생필품을 판매하는 마트에 쌀, 스파게티 면, 각종 통조림, 세정제, 비누 등을 진열해놓은 칸들이 텅텅 비어 있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휴지와 종이 키친 타월, 세탁세제를 포함한 각종 세제, 라텍스 장갑, 비타민 같은 품목들도 다 팔렸거나 빠르게 소진되는 상황이다. 짐작하겠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비축용’ 사재기가 벌어지는 것이다. 며칠 겪은 일들을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전해주면 다들 반응이 같았다. 한국보다 독일이 더하다는 것. 

 

독일에서 확진자가 나온 지는 좀 됐지만, 최근까지만 해도 거의 확산이 진행되지 않았던 터라 이런 상황을 상상하지 못했다. 설령 확산된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사재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확산세가 독일보다 훨씬 중한 한국만 해도 마트에 물건들이 부족함 없이 진열돼 있는데 독일에서 비누나 휴지 등을 구하지 못해 걱정하는 사례들을 접하게 될 줄이야.

 

확진자가 많지 않은 베를린에서도 일부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재기가 시작됐다. 사진은 한 대형 마트의 계산대. 사진=박진영 제공


지난 토요일, 손세정제를 구할 수 있을까 싶어 몇 군데 드러그스토어와 마트 등을 들른 나는 세정제를 구하기는커녕 예상치 못한 풍경을 보았다. 하루이틀 전부터 페이스북 등에 ‘독일 상황’ 어쩌고 하면서 마트 사재기 관련 사진이 돌아다니고, 심지어 비누도 없어 당황스러웠다는 경험들을 일부 지인들이 얘기했지만, 특수한 경우라고 치부하던 상황이었다.

 

한데 내 눈으로 직접 수많은 물품들이 사라진 광경을 목격하니 놀라움과 함께 마음이 급해졌다. 예상 가능한 품목들 외에 세탁세제나 휴지 등을 진열해놓은 칸이 빈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베를린에서 한 명의 확진자도 나오지 않은 시점이었다. 불안해진 마음에 등 떠밀리듯 예상에 없던 비누와 휴지, 세제 등을 사오면서 궁금했다. 바이러스 확산세가 현재보다 가속되더라도 이런 물품의 공급이 부족할 것 같진 않은데 왜들 그렇게 사가는 걸까, 내가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나.

 

다음날인 일요일 밤, 베를린에서도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월요일 아침,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일부러 동네 드러그스토어에 가봤더니 온 직원이 총동원돼 주말 사이 텅텅 빈 진열장을 다시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통로에는 물품이 담긴 박스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비누, 세제, 휴지, 라텍스 장갑, 장기보관 가능한 멸균우유 매대에도 제품이 충분해 보였다. 인근 마트도 비슷했다. 더 이상 물건을 채울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스파게티 면이며 소스류, 휴지 등을 잔뜩 쌓아둔 모습이었다. 수요가 더 늘 것으로 예측하는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한 드러그스토어 직원들이 진열대마다 물건을 쌓고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같은 곳들을 ​오후에 ​다시 방문했다. 아침부터 카트 가득 물건을 사는 사람들을 적잖이 본 터라 아침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예상했다. 역시나 물품들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아침에 쌓여 있던 세정용 티슈는 자취를 감추었다. 이후 며칠 동안 나는 매일 ‘확인차’ 마트와 드러그스토어에 들렀다.

 

그 사이 베를린 내 확진자도 늘어 3월 5일 오전 9명이 됐고, 몇 학교는 확진자 발생 및 의심 정황으로 폐쇄되기까지 했다. 독일 내 확진자는 350명선에 이르렀다. 짐작하겠지만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물건을 사재기했고, 현지 언론에서 관련 뉴스들이 보도됐다. 독일의 한 공공기관에서 수년 전 평상시 긴급 상황을 대비해 열흘치의 비상식량과 물품 등을 비축해야 한다고 발표했던 내용이 다시 언급되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 긴급상황은 아니니 사재기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정부 입장도 나왔다. 

 

한국보다 더 심하다고 할 정도로 사재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 몇몇 독일인들에게 물었다. 일부는 과잉이라며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대답은 ‘자신이 격리될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심지어 휴지와 세탁세제까지 사재기를 하는 이유가. 

 

베를린의 한 대형 마트 풍경. 늘어난 수요 탓에 여기저기 스파게티 면을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은 한국처럼 온라인 배송이 일상화되어 있지 않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숍이나 일부 마트가 배송서비스를 하지만 충분치 않다. 사람들의 인식도 식료품 및 필수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배송 받는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만일 내가 집에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 기간 동안 전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소비할 충분한 물품들이 집 안에 비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런 인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독일 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 급격히 진행되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몸이 아프면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으로 인해 혹시 남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며, 여럿이 모여 떠들썩하게 즐기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독일인들의 성향이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란 얘기다.

 

마스크가 품절인데도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볼 수 없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곳에선 마스크는 예방용이 아닌 환자가 쓰는 것이란 인식이 강한데, 마스크를 착용할 정도로 증상이 있거나 아픈 경우라면 집 밖으로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한국 뉴스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일상이 정지된 듯한 한국의 상황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활기찬 일상을 빨리 회복하게 되기를.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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