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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강남 빌딩숲 속 숨은 아름다움, 선정릉

경국대전 만든 성종의 '선릉', 중종반정 중종이 잠든 '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20.02.18(Tue) 15:46:36

[비즈한국] 아이와 함께 처음 가보는 왕릉이라면 선정릉이 딱이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100m만 걸어가면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 왕릉들은 서울 시내지만 지하철역에서 15분 이상 걷거나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만 한다. 빌딩숲 사이에 무슨 볼만한 공간이 있겠냐고? 겉에서 보기엔 작아도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숲길에 놀라게 된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에서 100m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숲과 함께 선릉과 정릉이 자리하고 있다. 선릉 옆으로 도심 풍경이 보인다. 사진=구완회 제공

 

#왕릉 지킴이, 홍살문과 정자각

 

능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내판이 보인다. “조선왕릉(선릉, 정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더구나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라 하니 너무 시끌벅적하지 않게, 고마운 마음으로 즐기면 되겠다. 

 

선릉과 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유네스코 세계유산 석비에서 왼쪽 길로 조금 가면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 선릉의 대문인 홍살문이 나온다. 두 개의 나무기둥을 올리고 그 사이에 살을 박아 넣은 후 붉게 칠한 홍살문은 여기서부터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돌길을 ‘참도’라 하는데, 약간 더 높은 왼쪽 길은 신령이 다니는 ‘신도’, 오른쪽 길은 왕이 다니는 ‘어도’다. 아무래도 신도는 살짝 피해주는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리는 정자각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지은 정자’가 아니다. 모양이 정(丁) 자처럼 생겼다 해서 정자각이다. 정자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오른쪽에 둘, 왼쪽에 하나가 있다. 오른쪽 계단 중 멋지게 장식된 것은 신령이 오는 계단이고, 그 옆에 밋밋한 계단은 왕이나 제관이 오르는 계단이다. 그럼 왼쪽은 왜 계단이 하나뿐일까? 정자각에서 제물을 흠향한 신령은 왼쪽 계단이 아니라 정자각 뒤편을 통해 언덕 위 왕릉으로 올라가기 때문이란다. 그러니 정자각 왼쪽으로는 사람이 내려올 작은 계단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선릉의 정자각. 음식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 모양이 정(丁) 자처럼 생겼다 해서 정자각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세종 버금가는 성종의 선릉

 

정자각 뒤의 선릉은 조선 제9대 왕인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의 능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는 태조 이성계지만, 나라의 기틀을 다진 이는 태종이고, 조선이라는 나라의 꼴을 제대로 갖춘 것은 세종과 성종이라고 한다. 

 

세종‘대왕’이야 훈민정음에서 측우기까지 우리가 아는 업적만 해도 여럿이지만, 이름을 많이 들어본 성종 임금의 업적은 딱히 생각하는 것이 없기 쉽다. 그럴 때 꼭 기억해두자.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 조선이 하나에서 열까지 이에 따라 운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바로 경국대전이고, 그 경국대전을 완성한 이가 바로 성종이다. 몇 해 전에는 헌법재판소 또한 그 옛날 경국대전을 근거로 삼아 행정수도 이전을 위헌이라 판결했으니, 경국대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긴 담벼락이 둘러진 선릉은 돌호랑이와 돌양, 문인석과 무인석이 지키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선릉은 봉분과 석물을 둘러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봉분 바로 옆까지 갈 수 있다. 긴 담벼락(이를 ‘곡장’이라 부른다)으로 둘러싸인 봉분은 돌호랑이와 돌양,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모두가 성군을 지킨다는 늠름한 모습이다. 석물들 아래로는 시원하게 펼쳐진 강남의 빌딩숲이 한눈에 보인다. 논밭이었던 강남이 빌딩숲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무덤 속의 성종 임금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중종이 정릉에 홀로 묻힌 까닭은?

 

선릉 옆 정릉은 중종의 능이다. 왕비와 함께 묻힌 성종과 달리 중종은 혼자다. 조선의 다른 왕들처럼 중종에게는 왕비가 여럿이었다. 반정으로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의 첫 왕비는 왕이 되기 전 혼례를 올린 단경왕후 신씨. 하지만 신씨는 자신의 남편이 왕이 되는 행운을 누린 지 불과 일주일 만에 폐위되어 쫓겨난다. 단경왕후의 아버지인 신수근이 연산군 축출에 반대했고, 결국 중종반정 과정에서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중종은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준 ‘훈구대신’들의 눈치를 보다가, 조광조라는 인물을 등용해 대대적 정계개편을 시도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과정에서 각종 ‘사화’와 ‘옥사’가 빈발했으며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비명횡사했다. 내정이 혼란하니 왜구와 여진족까지 빈번히 침투해 안팎으로 평온한 날이 없었다. 왕위에 오른 후 장장 38년 2개월을 바람 잘 날 없이 보내다 죽어서야 둘째 부인 옆에서 편안히 잠드나 싶었는데, 그도 오래가지 않았다. ​

 

정릉의 홍살문.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표시다. 사진=구완회 제공

 

가까이서 본 정릉과 그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빌딩숲. 사진=문화재청


중종의 세 번째 부인이자 새로 대비에 올라 왕실의 어른이 된 문정왕후가 중종과 함께 묻히고 싶은 욕심에 멀쩡히 잘 쉬고(?) 있던 중종의 묘를 지금의 자리로 이장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 대사의 강력한 추천으로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여름이면 한강 물이 차올라 오는 흉지였다. 결국 문정황후는 사후에 중종과 함께 묻히지 못했고, 이렇게 중종은 죽어서도 외로이 혼자 지내게 되었다. 더구나 임진왜란 때는 왜구에 의해 능이 파헤쳐지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니, 살아서도 죽어서도 중종은 새로 받은 자리가 영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행메모>


선정릉

△위치: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문의: 02-568-1291

△관람시간: 2월 06:00~18:00, 3~10월 06:00~21:00, 11~1월 06:30~17:30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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