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하루는 어떤 할아버지가 주민등록증만 갖고 도서관에 오셨다. 본인 명의 휴대폰이 없어서 회원가입을 할 수 없었다. 컴퓨터로 아이핀 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 명의 휴대폰이 필요했다. 동사무소에 가서 아이핀 발급을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아이핀 가입 과정이 어려울 수 있는 발달장애 성인, 보호자 없는 만 14세 이하의 어린이도 회원증 발급 과정이 쉽지 않다. 도서관학 5법칙 중 하나인 ‘모든 사람에게 누구나의 책’을 위해서 본인명의 휴대폰과 아이핀이 없는 이들도 공공도서관 가입이 가능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에 요구한다.”
지난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공공도서관에서 본인 명의 휴대폰, 아이핀이 없는 이들도 가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을 시작한 당일 900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오후 4시 기준). 글을 쓴 사서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받기 위해 필수로 진행되는 ‘본인인증’이 어려운 사람도 회원가입이 가능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개정된 개인정보 보호법 제24조의2 ‘주민등록번호 처리의 제한’에 따라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발급하기 위해서는 ‘본인인증’이 필수가 됐다. 도서 대출, 전자책 등의 서비스는 대출증이 있는 회원만 이용 가능하다. 본인인증 방법으로는 휴대폰 인증, 민간 아이핀이 있는데, 온라인으로 민간 아이핀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다시 본인 명의 휴대폰이나 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
이 경우 읍·면사무소 또는 주민센터를 방문해 민간 아이핀을 발급받을 수 있지만, 이 또한 절차가 복잡하고 사각지대가 발생한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만 14세 미만 어린이는 법정대리인의 동의 및 신원 확인이 필요하며, 외국인 등록번호나 신원 확인 수단이 없는 외국인은 신원보증인이 필요하다.
도서관법 제43조 ‘도서관의 책무’에 따르면 ‘도서관은 모든 국민이 신체적·지역적·경제적·사회적 여건에 관계없이 공평한 도서관서비스를 제공받는 데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자녀 명의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노인, 부모가 취약계층이거나 본인 확인이 어려운 아동 등 일부 경우에 대출증 발급의 장애물이 높은 실정이다.
일선 사서들은 대체로 시스템 개선 필요성에 공감했다. 공공도서관 1년 차 한 사서는 “IT 기반의 서비스를 도입하며 도서관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데 그 진화가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불편을 겪는 대상이 사회적 약자가 대부분인 만큼 관련 부처가 나서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도서관 3년 차 한 사서도 사각지대가 없도록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사서는 “휴대폰 인증이 불가능한 분들은 주민센터로 가서 민간 아이핀을 발급받도록 안내한다. 주로 어르신들이라 돌려보낼 때 마음이 좋지 않다. 한번은 입양과정이 진행 중이라 보호자가 없는 아동이 대출증을 발급받으러 왔길래 사회복지시설 담당자랑 다시 오도록 안내했다. 보호자가 없는 아동의 경우 전산 담당자와 상의해서 예외적인 경우로 처리해 이곳 도서관만 이용이 가능하도록 한 적도 있다. 사서 개개인의 선의에 기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시스템을 개선하더라도 본인인증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공도서관 1년 차 한 사서는 “큰 틀에서 문제의식은 공감하지만 공공서비스인 만큼 최소한의 본인 증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출·반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이용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영준 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은 “편의성을 높이면 회수율이 떨어지고, 회수율을 높이려면 이용자의 불편을 감당해야 하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시민의 포용성과도 관련이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글을 보고 사각지대 없는 정교한 시스템을 위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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