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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하늘 위 은하수에도 '교통 체증'이 있다

별과 가스구름이 정체 구간에 밀집해 '나선팔' 형성…다른 은하 '끼어들기' 흔적

2020.01.13(Mon) 12:37:06

[비즈한국] 남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는 서울의 밤은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사무실의 불빛,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자동차들의 미등으로 알록달록하게 빛난다. 매일 저녁 해가 저문 뒤 나타나는 서울의 야경은 밤하늘에 길게 흘러가는 은하수와 경쟁을 하듯 아름다운 빛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그걸 보노라면, 실은 저 불빛 하나하나가 도로에서 느리게 굴러가고 있는 자동차의 미등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1610년 갈릴레오가 처음 망원경을 통해 은하수를 바라보기 전까지는 은하수가 사실은 수많은 작은 별의 행렬임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처럼. 

 

가끔 도로에서 우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교통 체증 구간을 만난다. 신기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길이 뻥 뚫리곤 한다. 이렇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교통 체증을 유령 교통 체증(Phantom traffic jam)이라고 부른다.

 

#은하수는 사실 별들의 흐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는 최초로 자기가 만든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눈으로 목격한 놀라운 이야기들을 책 한 권에 담아냈다.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 목성 주변을 맴도는 또 다른 작은 천체들. 그저 눈으로 밤하늘을 봤던 이전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아니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밤하늘의 새로운 모습이 망원경의 작은 렌즈를 통해 들어왔다. 특히 그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은하수는 큰 충격을 안겼다. 그는 1610년 출간한 ‘별 세계의 소식(Siderius Nuncius)’에 흥분과 황홀감이 섞인 목격담을 상세히 기록했다. 

 

“은하수는 그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모여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망원경으로 어떤 방향을 바라보더라도… 그저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이 보일 뿐이다(For the Milky Way is nothing else than a congeries of innumerable stars distributed in clusters. To whatever region of it you direct your spyglass… the multitude of small stars is truly unfathomable). 

 

옛날 사람들은 밤하늘에 길게 그려진 은하수가 대기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진=Wikimedia/Steve Juvetson

 

갈릴레오의 고백이 있기 전까지 인류에게 은하수는 그저 밤하늘에 그려진 거대한 무늬에 불과했다. 여신이 우유를 흘리고 지나간 자리 같다고 해서 ‘우윳길(Milky Way)’이라고 불렸던 은하수는 실은 작게 빛나는 별들이 이어져 만들어낸 황홀한 야경이었다. 우주는 여러 천체들이 새겨져 있는 거대한 돔이 더 이상 아니었다. 갈릴레오의 발견을 통해, 인류는 이 우주가 제각기 다른 거리에 놓인 별들로 가득한 무한의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은하수의 실체를 알게 된 천문학자들은 더 정확한 우주의 지도, 우리 은하계의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은하계는 어떤 모습일지, 태양은 은하계에서 어디쯤에 위치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은하계의 지도를 그리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듯, 우리 은하계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곳에 올라 은하계를 조망하면 된다. 하지만 은하계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은하계를 벗어나 한눈에 바라볼 만큼 먼 거리까지 탐사선을 보내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멀리 떠 있는 달의 표면은 한눈에 보이지만, 정작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은하라는 거대한 숲에 갇힌 우리는 그 시야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로 이어진 ‘은하수(樹)’의 행렬만 볼 수 있을 뿐, 이 거대한 숲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숲의 지도를 간접적으로 그릴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지구 주변에서 빛나는 별들 하나하나까지의 거리를 측정해 입체적으로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별 세기(Star Counting)’이라고 불리는 이 노동력 많이 들어가는 작업은 실제로 18세기 말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별일수록 원래 밝기보다 더 어둡게 보일 것이다.

 

1785년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은 우리 주변 모든 별의 실제 밝기가 같다는 큰 가정하에 관측되는 별들의 겉보기 밝기들을 비교해 최초로 우리 은하계 지도책 ‘천상 세계의 설계도(On the Construction of the Heaven)’를 발표했다. 이 책에서 그동안 관습적으로 사용하던 ‘은하(Galaxy)’라는 단어에 대해 최초로 천문학적이고 관측적인 정의가 등장했다. 

 

“아주 길게 늘어지고, 이어진 수백만 개의 별들의 집합(a very extensive, branching, compound congeries of many millions of stars).”

 

허셜이 완성한 우리 은하수의 모습. 허셜은 지구 주변 별들의 분포 지도를 입체적으로 완성해 은하수가 실은 얇은 판 모양의 은하를 안에서 관측하기 때문에 보이는 얇은 판의 단면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진=The Royal Society(2018)

 

#우리 은하는 소용돌이 치고 있다

 

이후 천문학자들은 단순히 별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별이 현재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운동 상태에 대한 연구를 추가로 진행했다. 우리 태양을 비롯한 은하계의 모든 별은 자기 자리에 가만히 떠 있는 것이 아니다. 은하계 가운데 거대한 질량 중심을 기준으로 마치 강강술래를 하듯 함께 둥글게 맴돈다. 우리 태양을 기준으로 은하계 중심에 더 가깝고 먼 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상대적인 움직임을 계산하면, 태양 주변의 별들이 은하계를 중심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은하계 중심의 질량이 더 무거울수록, 그 주변을 맴도는 별들의 운동 속도도 빨라진다. 따라서 은하계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별들이 어떤 속도로 운동하는지를 파악하면, 은하계 중심에서 외곽까지 숲길을 따라 나무들이 어떤 밀도로 분포하고 있는지 그 질량 분포를 정밀하게 구할 수 있다. 

 

1927년 천문학자 린드블라드(Bertil Lindblad)와 오르트(Jan Oort)는 각각 은하계를 맴도는 태양 주변 별들의 운동을 분석해 은하계 숲의 중심이 궁수자리 방향으로 약 1만 2000광년 떨어져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비록 이 값은 나중에 확인된 우리 은하 중심의 실제 크기보다는 작은 값이었지만, 우리 태양이 주변의 다른 별들과 함께 은하계 외곽에서 초속 200km의 빠른 속도로 맴돌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은하계 숲의 규모를 재고 숲의 지도를 그리는 첫 단추가 된 중요한 연구였다. 

 

1930년대 들어서는 전파 관측을 통해 오래된 붉은 별들뿐 아니라 갓 태어난 푸른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수소 가스 구름의 분포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수소 원소는 하나의 원자핵과 하나의 전자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하게 생긴 원소이다. 원자핵을 맴도는 한 개의 전자는 미세하게 진동하면서 고유의 에너지를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다. 아주 작은 전자의 떨림은 파장이 21cm나 되는 아주 길고 낮은 에너지로 방출된다. 보통 빛의 파장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짧은 마이크로, 나노 미터 수준의 파장으로 진동하는 데 비해 이 수소 원소가 내보내는 파장은 센티미터 단위로 아주 긴 파장을 갖고 있다. 

 

이렇게 파장이 길기 때문에, 주변의 별빛을 가로막는 성간 소광 가스 구름의 방해를 요리조리 피할 수 있고, 은하 끝자락에 위치한 가스 구름의 전파 신호까지 포착할 수 있다. 특히나 우주에 가장 흔한 성분인 수소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면, 단순히 눈에 보이는 별로만 그려놓았던 엉성한 은하 숲 지도의 빈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다. 

 

1949년 네덜란드의 천문학자 헨드릭 헐스트(Hendrick C. van de Hulst)가 처음 제안한 이 21cm 파장 관측 방법은 이후 전 세계 전파 망원경 접시를 통해 실제로 진행되었고, 1958년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계에 분포하는 가스 구름의 위치를 그리며 은하계 숲 지도의 빈 칸을 채워갔다. 그동안 눈앞에 보이는 나무 몇 그루만 가지고 숲의 지도를 그렸다면, 이제 숲 속에서 새어나오는 새들의 울음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까지 엿듣고 눈으로 볼 수 없었던 숲의 끝자락까지 거대한 은하계 지도를 완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태양 주변에서 HI 수소 가스 구름의 속도와 위치를 관측해서 추정한 우리 은하 전역에 분포하는 가스 구름의 지도. 이미지=Oort, J. H., Kerr, F. J., &Westerhout, G., Monthly Notices of the Royal Astronomical Society, "The galactic system as a spiral nebula", 1958.

 

수소 원소의 분포를 완성한 천문학자들은 은하계 숲 지도에서 독특한 구조를 확인하게 된다. 수소 가스 구름들은 은하계 숲에 무작위로 분포하고 있지 않았다. 중심에서 뻗어나오는 몇 가닥의 기다란 패턴을 그리며 나선팔 모양으로 둥글게 휘감겨 있었다. 1976년 천문학자 험프리스(Roberta Humphreys)는 처음으로 은하 중심을 향하는 궁수자리 방향에서 이어지는 첫 번째 나선팔, 궁수-용골자리 나선팔(Sagittarius-Carina Arm)을 확인했고, 이후 1976년 우리 은하계 숲에 휘감겨 있는 거대하고 뚜렷한 네 가닥의 나선팔 지도가 완성되었다. 

 

놀랍게도 나선팔은 가스 구름이 뭉친 덩어리일 뿐 아니라, 그 주변에서 별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현장이었다. 나선팔의 곡선을 따라 새롭게 태어난 푸르고 뜨거운 별들이 목걸이의 보석처럼 쭉 이어져 있었다. 이어서 우리 은하계 주변의 다른 숲, 다른 은하계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나선팔 구조들이 흔하게 발견되었고, 그들 역시 나선팔을 따라 새로운 아기 별들이 태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천문학자들은 이 아름다운 은하계의 패턴이 왜 생기는지 정확한 원인을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우리 은하는 아주 거대하고 뚜렷한 아름다운 나선팔을 그리고 있다. 우리 태양계는 그 중 한 가닥의 나선팔에 해당하는 오리온자리 나선팔 상에 놓여 있다. 그림은 다양한 밝기의 별과 HI 중성 수소 가스 분포를 통해 새롭게 재확인한 우리 은하 나선팔의 구조를 보여준다. 사진=Urquhart JS et al./Robert Hurt, the Spitzer Science Center/Robert Benjamin

 

#별들의 교통 체증이 완성한 거대한 나선 팔의 패턴 

 

꽉 막힌 정체 구간을 탈출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뻥 뚫린 구간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방금 전까지 왜 길이 막혔는지 알 수 없기에 이를 ‘유령 정체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통사고가 났던 여파일 수도 있고, 느리게 가는 초보 운전자 때문일 수도 있다. 정체 구간을 벗어나면 속은 후련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유령의 장난에 마음 한편이 찜찜하다. 은하계를 맴도는 별들의 패턴을 연구하는 천문학자들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유령의 장난 때문에 찜찜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은하계를 맴도는 별들이 그려내는 나선팔의 형태는 그 경향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 은하나 안드로메다은하처럼 분명하게 나선팔 두세 개를 갖고 있는 ‘뚜렷한 나선팔(Grand-design spirals)’과, 얽혀 있는 카펫 표면처럼 ‘엉클어진 나선팔(Flocculent spirals)’이다. 천문학자들은 나선팔의 종류에 따라 생성 원리를 다르게 설명한다. 

 

뚜렷한 나선팔을 그리는 은하 M51(왼쪽)과 엉클어진 나선팔을 그리는 은하 NGC 7793(오른쪽). 사진=NASA/ESA


두세 개의 휘감긴 나선팔이 확연하게 보이는 ‘뚜렷한 나선팔’은 실제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다. 단순히 지금 별들이 많이 모여 있는 부분이 나선팔처럼 보일 뿐이다. 도로의 정체 구간은 그저 차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어떤 지역일 뿐, 정체 구간 그 자체가 실제로 도로 위에 존재하는 별개의 자동차는 아닌 것처럼. ‘뚜렷한 나선팔’을 가진 원반 은하들의 나선팔도 실제로 별들이 그 자리에 박힌 채 맴도는 구조가 아니다. 별들은 나선팔과 별개로 각자 고유의 궤도를 따라 맴돌면서 나선팔이라는 정체 구간에 진입했다가 벗어난다. 나선팔은 그저 별들이 잠깐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정체 구간이다.[1]

 

이처럼 실제 별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별들이 모여 있는 밀도가 높은 지역이 흘러간다는 의미에서 이를 ‘밀도파(Density Wave)’라고 부른다. 도로 위 자동차가 하나의 별이라면, 자동차들이 잠깐 겪게 되는 밀도가 높은 정체 구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밀도파’가 되는 셈이다. 정체 구간 자체도 아주 느리지만 움직이기는 한다. 예를 들어 아주 느리게 서행하는 트럭이 다리 한가운데 정체 구간을 만들었다면, 그 트럭 주변에 형성되는 정체 구간도 트럭이 다리에 진입해서 다리를 벗어날 때까지 서서히 움직일 것이다. 반면 그 트럭을 피해 벗어나는 개개의 자동차들은 트럭이 형성한 정체 구간과는 별개로 더 빠른 속도로 다리 위를 달리게 된다. 

 

이처럼 별들이 만들어낸 정체 구간과 각 별의 궤도 운동은 다른 속도로 진행된다. 은하 주변을 맴도는 별과 가스 구름들은 별들이 모인 채로 느리게 흘러가는 밀도파의 중심, ‘나선팔 정체 구간‘을 향해 빠르게 접근하고, 다시 빠른 속도로 ’나선팔 정체 구간‘을 벗어난다.[2] 

 

총 1억 개의 입자로 구현한 거대한 은하의 나선팔이 형성되는 과정의 시뮬레이션 영상.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중심에서 외곽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나선팔의 밀도파 형태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상=Thiago ize/Scientific Computing and Imaging(SCI) Institute/University of Utah

 

정체 구간에 다다르면서 차가 서서히 느려지고 핸들을 잡고 있는 운전자의 스트레스가 커지는 것처럼, 은하를 맴도는 별과 가스 구름도 정체 구간에 진입하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밀도가 높은 구간에 진입한 가스 구름은 강한 압력으로 압축되면서 반죽되고, 새로운 별을 만들어낸다. 정체 구간의 중심을 지나는 동안 가스 구름이 반죽되어 새롭게 태어난 푸르고 뜨거운 아기 별들은 다시 정체 구간을 벗어나는 가스 구름과 함께 나선팔을 앞질러 나선팔 사이사이에 흩뿌려진다. 

 

나선팔을 기준으로 분포를 보면, 별들이 태어나지 않은 먼지 구름들이 나선팔의 뒤를 이어 들어오고, 갓 태어난 별들을 품고 있는 뜨거운 가스 구름들이 나선팔을 앞질러 그 앞에 쭉 이어진다. 그런데 푸르고 무거운 별일수록 수명이 짧기 때문에, 푸른 별은 나선팔 정체 구간을 벗어나 오랫동안 살아남지 못하고 폭발해버린다. 반면 상대적으로 질량이 작고 온도가 낮은 붉은 별들은 나선팔 정체 구간을 벗어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미지근한 빛을 내며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푸르고 밝은 별들은 나선팔에 가까운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반면, 온도가 낮은 붉은 별들은 나선팔 구간에서 멀리 벗어난 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이 관측 결과는 단순히 나선팔 주변에서 확인되는 가스 구름과 별들의 분포 경향을 설명할 뿐, 왜 이런 나선팔을 갖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정체 구간을 따라 운전자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다가 떨어진다는 것을 설명할 뿐, 그래서 왜 이런 정체 구간이 형성되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은하에 이런 뚜렷한 정체 구간이 형성되는 것일까? 

 

밀도파에 의해 형성되는 나선팔의 구조를 그린 그림. 녹색 점선은 밀도파의 이동 속도와 별과 가스의 회전 속도가 일치하는 경계를 의미한다. 그 안쪽에서는 별과 가스가 밀도파보다 더 빠르게 회전하며, 바깥에서는 별과 가스가 더 느리게 회전한다. 밀도파가 지나가면서 가스 나선팔(검은 선)을 압축하면, 그 너머로 새로운 별이 형성되며(푸른 선), 밀도파를 지나가면서 형성된 별의 나이가 더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밀도파에서 더 멀리 벗어나면 조금 더 나이가 많은 별들의 분포(빨간 선)이 그려진다. 이미지=Hamed Pour-Imani et al./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827:L2, 2016 August 10.

 

갑자기 일부 구간에서 차 한 대 느리게 움직이면, 그 뒤로 형성된 교통 체증 구간이 계속 조금씩 뒤로 밀리면서 이동한다. 도로 위 실제 차들이 달리는 속도와 이 교통 체증 구간이 이동하는 속도는 다르다. 이 영상에서 보이는 교통 체증 구간이 퍼져나가는 것을 밀도파라고 한다. 영상=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MIT)

 

#은하수 도로 위 끼어들기 흔적을 찾아서 

 

운전을 하다 보면, 조금 더 빨리 가겠다고 옆 차선에 끼어드는 얌체 자동차 한 대로 인해 그 뒤에 정체 구간 밀도파가 형성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끼어들기의 여파는 단순히 바로 뒤 차 한 대뿐 아니라 뒤이은 다른 자동차들에게도 영향을 줘, 한 무리의 자동차들이 서행하는 구간이 생긴다. 그리고 한 대가 끼어들면 그새를 놓칠세라 재빠르게 뒤이어 끼어드는 또 다른 자동차들의 꼬리 물기가 길게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카오스가 시작된다. 

 

흥미롭게도 천문학자들은 오래전 우리 은하 가장자리에 끼어들기를 시도한 다른 작은 은하가 남긴 꼬리 물기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 은하 주변을 맴도는 작은 왜소은하 중 하나인 ‘궁수자리 왜소은하(Sagittarius dwarf)’는 움직이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수많은 별과 가스 입자들이 꼬리처럼 길게 이어진다. 이걸 ‘궁수자리 흐름(Sagittarius stream)’이라고 부르는데, 궁수자리 왜소은하가 우리 은하계 바깥에서 날아와 오래전 끼어들기를 시도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26억 년 전 우리 은하에 궁수자리 왜소은하가 유입되면서, 그 영향으로 우리 은하에 거대한 나선팔 구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영상. 영상=Erik Tollerud

 

이런 거대한 끼어들기의 흔적을 재현하려는 여러 시뮬레이션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2011년 크리스 퍼셀(Chris W. Purcell) 연구팀은 ‘네이처(Nautre)’에 발표한 시뮬레이션 연구에서 현재 궁수자리 왜소은하를 이루는 질량과 그 뒤에 길게 이어진 꼬리 질량을 모두 합한 만큼의 작은 은하가 오래전 우리 은하계 곁을 스쳐 지나가도록 하는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지금 관측되는 궁수자리 왜소은하와 그 꼬리의 분포와 비슷한 모습을 재현했다. 더불어 이런 끼어들기는 단순히 그 주변을 에워싸는 거대한 고리 형태의 꼬리뿐 아니라, 우리 은하 자체에도 영향을 주면서, 별들의 흐름에 작은 정체 구간이 형성되고 지금과 같은 거대한 나선팔이 그려지는 것도 재현했다. 

 

그들의 계산에 따르면 우리 은하 전체 질량의 100분의 1 정도 되는 작은 은하가 약 17억 5000만 년 전 우리 은하계 가장자리를 처음 스치고 지나갔고, 그때의 충격으로 작은 은하는 산산이 부서져 안에 있던 별과 가스 물질들을 길게 흩뿌리게 되었다. 특히 이 시뮬레이션 결과는 우리 태양보다 바깥에 위치한 짧은 ‘외뿔소자리 방향 나선팔(Monoceros Ring)’의 형태를 잘 재현해냈다. 이를 통해 우리 은하를 비롯해 ‘뚜렷한 나선팔’ 정체 구간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나선 은하들은 수억 년 전 곁을 스치고 간 작은 은하들의 끼어들기를 겪었고, 아직까지 그 여파가 남아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갑자기 발생한 우주 접촉 사고의 여파 

 

하지만 앞서 설명했던 나선팔의 형태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엉클어진 나선팔’의 종류는 이런 왜소은하의 끼어들기 시나리오로 충분히 재현할 수 없다. 만약 도로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차 한 대가 터지거나 예상치 못한 접촉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고 현장 앞뒤로 아주 혼잡한 정체 구간을 형성할 수 있다. 이처럼 은하에서도 일부 작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혼란이 정체 구간을 형성해 아주 복잡하게 엉클어진 나선팔을 만들 수 있다.[3]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은하 NGC 4302(왼쪽)와 NGC 4298(오른쪽)을 다양한 각도에서 본 모습. NGC 4302는 상대적으로 뚜렷한 나선팔을 그리는 반면, NGC 4298는 좀 더 엉클어진 나선팔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영상=NASA, ESA, F. Summers, J. DePasquale, Z. Levay, and G. Bacon(STScI)

 

은하를 둥글게 내달리는 별들의 세계에서 접촉 사고에 버금가는 혼란을 야기할 만한 사건으로 초신성 폭발을 예로 들 수 있다. 무거운 별이 마지막 진화 과정에서 큰 폭발과 함께 사라지면 그 일대의 가스들은 양 방향으로 불려나가며 압축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렇게 한번 형성된 혼돈의 구간은 연이어 그 다음 앞뒤의 가스들을 압축해 새로운 별이 형성되고, 또 그 별들이 다시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초신성으로 폭발하는 연쇄 과정을 야기한다. 실제로 이런 국지적인 작은 혼란을 재현한 시뮬레이션 연구들을 보면, 짧게는 2억 년에서 길게는 3억 년 안에 실제로 관측되는 것과 비슷한 규모의 혼잡한 ‘엉클어진 나선팔’의 형태를 잘 재현한다. 

 

엉클어진 나선팔을 가진 은하 IC 342를 적외선으로 관측한 모습. 은하에 분포하는 먼지 구름의 분포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은하는 곳곳에서 폭발한 초신성 때문에 구멍이 뚫린 듯 복잡하게 엉킨 나선팔을 갖고 있다고 추측한다. 이미지=NASA/WISE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종합해보면 우주에는 크게 두 종류의 교통 체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은하계 곁에 서서히 눈치를 보다가 끼어들기를 한 작은 왜소은하의 흐름으로 인해 뚜렷한 나선팔을 그리는 경우, 그리고 그냥 별들이 잘 맴돌다가 어느 순간 말 그대로 별 한 대가 터지면서 일어난 국지적인 혼란으로 인해 뒤죽박죽 엉클어진 나선팔을 그리는 경우. 정체 구간에 갇혀 있는 별에게는 속이 타고 답답하겠지만, 애석하게도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천문학자에게는 아름다운 패턴으로 보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산하기 전에 한 번 더 이 도시의 야경을 돌아본다. 야근을 하며 사무실 불을 밝힌 회사원들, 꽉 막힌 도로에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자동차들의 미등. 산에서 바라본 도시의 야경은 울긋불긋 갖가지 조명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패턴의 연속일 뿐, 미안하게도 그 답답한 속사정은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텅 빈 사무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대, 몇십 분째 제자리에서 서행하고 있는 그대, 그리고 저 밤하늘의 아름다운 나선 은하의 한 무리에 끼어 있는 별들, 모두가 이 우주를 더 아름답게 장식하는 밀도파의 일원은 아닐까.

 

[1]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b0d26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05/827/1/L2

[3]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781/1/11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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