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내 제약사들이 인도네시아 시장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있다. 지난 19일 대웅제약이 인도네시아에서 보톡스 제품 ‘나보타’ 품목허가를 획득했다고 밝힌 가운데, 종근당과 CJ헬스케어, 녹십자MS, 동아ST 등이 이미 인도네시아에 진출했다. 인도네시아는 ‘할랄 인증’이라는 장벽으로 진입이 까다롭지만, 그로 인해 경쟁자가 많이 없는 블루오션으로 기대받는다.
지난 10월부터 인도네시아에서는 ‘할랄제품인증법’이 시행됐다. 2014년 인도네시아 의회를 통과해 공포된 이 법은 할랄 인증 대상 품목을 기존 축산물에서 식료품과 화장품, 의약품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포 5년 후 시행돼, 다시 5년간 유예 기간을 거쳐 2024년부터는 전면 의무화된다. 여기에 할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은 별도로 표기해야 한다는 규칙까지 새로 생기면서 시장 진입이 더욱 까다로워졌다. 실제로 이러한 할랄 규제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기업도 생겨났다. 지난 10월 펩시는 엄격한 할랄 인증으로 사업 유지가 힘들다며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철수했다.
할랄 인증은 이슬람 율법을 지켜 생산되는 음식이나 제품에 부여된다. 대표적으로 돼지고기나 알코올 성분이 없어야 한다. 의약품도 마찬가지. 보통 약 캡슐에 쓰이는 젤라틴은 동물의 가죽·힘줄·연골에서 추출한 성분이고, 원료의약품을 녹이는 과정에서 알코올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의약품은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전체 인구 2억 7000만 명 중 이슬람 인구가 87%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할랄 인증이 필수적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제약사가 할랄 인증 제품을 가진 외국 제약사와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다. 하지만 인증을 받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기간도 최소 6개월에서 1년 정도 소요된다. 국내 제약사 관계자는 “인증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다. 주로 캡슐에 인증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보다 관문을 하나 더 넘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약사들의 진출 의지는 뚜렷하다. 국내 제약사들은 주로 현지에 공장을 설립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현지화 전략’을 취하며 적극적으로 공세를 퍼붓고 있다. 대웅제약의 경우 2014년 대웅인피온을 설립했고, 동아에스티는 인도네시아 현지 바이오의약품 생산공장인 ‘PT 컴비파 동아 인도네시아’를 세웠다. 현지에 공장을 세울 여력이 안 되는 중소 제약사는 국내에서 인도네시아의 온도·습도 등을 재현해 임상실험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 같은 국내 제약사들의 노력은 인도네시아 시장이 가진 잠재력 때문이다. 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제약시장 규모는 2021년께 100억 달러(약 11조 6300억 원)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 정책을 추진하면서 의약품 시장이 더욱 활발해진 점도 국내 제약사에게는 확실한 기회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인 동시에 아세안 및 다른 무슬림 지역에 진출하기 용이한 거점 국가로도 꼽힌다.
인도네시아가 유독 우리나라 제약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국내 약학대학 교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의약품은 유독 선진국에서 수입하려는 경향이 있다. 미국 등 선진국 약은 비싸서 수입하기 꺼려지니, 자기네 국가보다 조금 더 잘 살지만 약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를 찾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역시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으니 이해가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국가 내의 인종이 비슷해 임상시험을 진행하기에도 편리하다고 한다.
전 세계 제약시장에서 2024년 항암제, 당뇨 치료제, 류마티즘 치료제가 유망 의약품 1, 2, 3위로 꼽혀 경쟁이 치열한 것과 달리, 국내 몇몇 제약사가 빈혈 치료제로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틈새’를 노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동아ST는 만성 신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빈혈 치료제를 2021년부터 판매할 예정이고, 한국코러스제약 역시 빈혈 치료제를 개발했다. 이에 대해 한국코러스제약 관계자는 “의료보험 체계가 있는 나라에서는 의약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간이나 신장에 독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투석 센터가 많이 운영되는데 이 환자들이 빈혈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 빈혈 치료제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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