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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 안 된 건강 서적이 베스트셀러" 관리·감독 못하는 이유

잘못된 정보와 극단적 식이요법 주장해도 '제재' 못해…"전문가 집단이 나서야"

2019.12.20(Fri) 18:18:08

[비즈한국] 2019년 의료계 핵심 화두 중 하나는 ‘쇼닥터’다. 지난 3월 한 한의사는 방송에서 ‘물파스로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7월 다른 한의사가 유튜브를 통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예능인을 하라”고 지적하며 쇼닥터 논란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쇼닥터는 방송에 출연해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추천하는 의사를 지칭하는데 최근 유튜브까지 세력을 확장했다. 극단적 육아법으로 뭇매를 맞은 ‘안아키 한의사’는 10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렇듯 검증되지 않은 건강 및 의학 정보가 각종 플랫폼을 타고 무분별하게 전파되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각종 유사의학 정보 서적도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최근에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건강 정보 서적 두 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두 책이 상반된 식단을 추천하고 있어 논란이 된다. 또 일부 의료 관계자의 주장을 사실인양 짜집기해서 의학계 최신 정보로 둔갑시켰다는 지적이다. 이를 그대로 따라한다면 건강에 오히려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하지만 현행법 체계에서는 책에 잘못된 의학 정보가 담겨 있다 해도 이렇다 할 제재 방법이 없다. ​책이나 논문은 약이나 의료기기와 달리 언론·출판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얼마 전 이러한 서적을 의협에서 자율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구연산은 먹지 말고, 과일은 먹어라?

 

불량 의학 정보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건강 정보를 다룬 서적도 주의 대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같은 출판사 출신 의학 서적 두 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두 책이 상반된 식단을 추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임준선 기자

 

“건강 서적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어서 살펴보게 됐어요. 그런데 뇌세포가 계속 생성된다는 말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죠. 우유와 버터 오일은 먹으면 안 되지만 버터는 먹어도 된다는 주장도 이해되지 않았어요. 음식이나 약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이런 책을 보면 맹신하기 쉽잖아요. 하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이런 책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은 많아지죠. 결국 ‘새로운 거짓말’이 계속해서 탄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식품공학자 최낙언 씨는 과거에 제과 회사에서 아이스크림 개발을 했다. 그러다 몇 년 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곧바로 죽을 것처럼 이야기하는 방송을 본 후 잘못된 지식을 사실인 양 보도하는 행태에 충격을 받아 회사를 나왔다. 현재 그는 식품과 관련한 잘못된 지식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몇 년째 건강·의학 서적을 자진해 분석하고 있다. 최근 그가 들여다본 책은 톰 오브라이언 박사의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이다.

 

최 씨는 책 내용 중 ‘뇌에는 1000억 개의 개별 뉴런이 있는데 새로운 뉴런이 계속 생성돼 뇌를 고칠 수 있다’는 부분을 가장 문제 삼았다. 그는 “치매처럼 뇌에 문제가 있는 환자나 보호자가 보면 혹할 수 있는데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 신경세포는 한 번 망가지면 끝이다”라고 강조했다. 최 씨는 “구연산은 먹지 말라면서 구연산이 기본적으로 들어 있는 과일은 먹어도 된다고 한다. 또 글루텐을 ‘악’으로 치부하는데, 글루텐이 아예 없는 식품에는 다른 영양소가 빠져 당뇨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많은 건강 서적에서 어떤 영양소는 피하고 어떤 영양소는 섭취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무작정 책에 나온 식단을 따르기보다 본인의 건강 상태에 맞게 섭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료계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온다. 설대우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뇌세포와 같은 신경세포는 태어난 뒤에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다. 최근에 뇌세포도 피부처럼 새로 생긴다는 연구가 있긴 하지만 무시해도 될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우리 몸의 세포 중 제일 활발하지 않은 것이 뇌세포다​”라고 설명했다. 정형준 원진녹색병원 재활의학과 의사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뇌 신경이 망가지면 재생이 안 된다”라고 밝혔다.

 

책에서 제시한 식단에 대해 신경옥 삼육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유를 훌륭한 칼슘의 공급원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유당불내증을 일으켜 좋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며 “무작정 책에 나온 식단을 따르기보다 본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그것에 맞게 복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잘못된 정보 담아도 출판의 자유…관리 감독 불가능


검증되지 않은 건강·의학 서적에서 주장하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톰 오브라이언이 쓴 ‘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는 모든 품종의 콩은 좋은 채소라는 주장을 펼치지만, 스티븐 건드리가 쓴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죽는 법’은 콩과 식물을 멀리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책은 같은 출판사를 통해 국내 출간됐다. 일각에서는 저자에게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가령 톰 오브라이언은 정식 의사가 아닌 척추지압사다. 스티븐 건드리는 현미와 채소에 독소인 렉틴이 들어 있으니 먹지 말라고 주장한 저서 ‘플랜트 패러독스’로 미국에서 이미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검증되지 않은 건강 서적에서 주장하는 바는 천차만별이다. 일각에서는 저자에게 의구심을 표하기도 한다. 사진=김명선 기자


그러나 이러한 책이 출간돼도 제재할 방법은 딱히 없다. 책은 언론·출판의 자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의료법상 제재할 근거도 없고 개인이 이름을 걸고 출판한 서적을 국가가 금지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의협 관계자도 “내부에서 감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회원이 이러한 책을 저술했을 경우 징계를 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는 있겠지만, 외국인의 경우 어렵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하지만 일반인이 책 내용을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책이 출간된 후 ​전문가 집단이 자율적으로 분석해 의견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낙언 식품공학자는 “책이 나오기 전에 식품 관련 협회 등에서 의견을 내놓는 게 가장 도움이 될 듯하다”고 밝혔다. 정형준 의사는 “제약업계나 의료계 전문가들이 지침을 만들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자율적으로 꾸리기보다 복지부나 식약처에서 제도적으로 구성해준다면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표했다.

 

이와 관련해 ‘유튜브 셀러’를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튜브 셀러는 유튜버가 책을 소개한 뒤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최근에는 소형 출판사가 SNS 홍보 에이전시에 맡겨 유튜브 채널을 통해 책을 홍보하는 경우가 많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유튜브에서 책 구절을 인용해 ‘아이가 심하게 아프지 않을 때는 항생제를 처방받지 말고 기다려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영상을 보며 책을 구매하거나 공부하는 경우가 많아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검증되지 않은 건강·의학 서적이 우리나라에서 잘 소비되는 것은 1차 의료 시스템이 붕괴됐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형준 의사는 “1차 의료 체계를 잘 갖춰놓으면 언제든 국민이 의사와 책에 대해 소통할 수 있다. 유럽에서 유사 의학 서적이 잘 유통되지 않는 이유도 그래서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동네 의원에서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1차 의료 개념으로 진료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유사 의학에 현혹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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