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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사한 주소까지 어떻게 알지" 대한적십자사 헌재 판결 받는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침해" 헌법소원 청구, 적십자사 "법에 의거…취약계층 돕기 위해 필요"

2019.12.17(Tue) 11:14:46

[비즈한국]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며 대한적십자사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심판이 잇달아 청구될 예정이다. 18일 고등학생 두 명을 포함한 국민 세 명이 헌법소원을 청구하는 데 이어 ​시민단체도 ​100여 명의 청구인단을 꾸려 헌법소원을 추진 중이다. 특수법인인 대한적십자사가 회비 모금을 위해 국민의 개인정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 지로통지서를 발송할 수 있도록 한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게 요지다. 매년 연말연시에 논란이 되는 ‘적십자사 꼼수 모금’ 논란은 결국 헌법재판소 심판대까지 오르게 됐다.

 

비즈한국과 인터뷰한 청구인 이미진 씨는 이사를 했는데도 바뀐 주소로 적십자사 지로통지서가 송달돼서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이사한 주소를 적십자사가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십자사에 물어보니 법률에 의해 정당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정보 주체가 자신의 정보가 사용되는 것을 알 권리가 있으므로 이를 고지해달라 요청했으나 이행되지 않았다”며 “국가가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제공하고 그걸 적십자사가 모금을 위해 이용하는 게 올바른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청구인단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수집 명시한 적십자사 조직법, 위헌 가능성 높아

 

매년 12월~1월 집중모금기간이면 대한적십자사는 각 가정에 지로용지를 배포하는 방식으로 적십자 회비를 모금한다. 대한적십자사는 주소가 변경된 국민의 이름과 주소도 쉽게 파악해 지로통지서를 발송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의해서다. 이 조항은 ‘적십자사는 적십자사 회원 모집과 회비모금을 위해 세대주 성명 및 주소, 사업주 상호 및 주소, 법인 및 단체 명칭과 소재지, 회비를 납부한 사람의 주민등록번호 등 자료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국민 100여 명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며 대한적십자사를 상대로 18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청구인단에는 고등학생 두 명도 포함됐다. 사진=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동영상 캡처


대한적십자사의 요청이 있으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개인정보를 제공한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3항에 공공기관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고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된 까닭이다. 청구인들이 낸 헌법소원 초안에 따르면, 청구인 중 한 명이 적십자사에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확인한 결과 최근 10년간 적십자사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자료 제공을 요청해 거부당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문제는 개인정보 주체인 국민이 본인의 개인정보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한적십자사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정보제공과 수집·​​활용에 대한 별도의 동의나 고지가 없기 때문. 헌법 제17조에 따른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를 정보 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헌법재판소는 개인정보를 대상으로 한 조사·​수집·​보관·​처리·​이용 등 모든 행위는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변호사들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름과 주소가 결합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표기된 지로통지서는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동찬 법무법인 오현 변호사는 “헌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법이 개인정보보호법보다 위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신혜 YK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불법행위는 아니지만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을 청구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지로통지서 사라져도 개인정보 활용 가능성 남아

 

대한적십자사 지로통지서를 둘러싼 논란은 해묵은 문제다. 국정감사에서 수차례 지적된 것은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일반 공과금 납부서와 생김새가 비슷하고 세대주·​​사업자·​​법인 이름과 주소는 물론 내야 하는 금액까지 적혀 있어 반드시 내야 한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납부 기간 내에 회비를 내지 않으면 재납부 고지서도 날아온다.

 

전 세계 198개국 적십자사 중 지로통지서를 이용해 모금하는 경우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가령 일본은 적십자사 가입 회원만 회비를 납부하고, 유니세프는 개인이 아닌 법인만을 대상으로 공개된 법인의 상호와 주소를 이용해 지로통지서를 발송한다.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3년 이내에 지로용지를 없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변호사들은 대한적십자사 조직법이 국민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름과 주소가 결합한 개인정보가 그대로 표기된 지로통지서는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2017년 기준 대한적십자사 지로통지서. 사진=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

 

대한적십자사​가 지로통지서 모금 방식을 없애도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제8조에 따라 개인정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아 회비모금에 활용할 소지는 충분하다. 청구인 대리인단은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대한적십자사의 조직 유지와 원활한 사업 수행을 지원하고자 하는 목적은 일용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으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인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적합한 수단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개인정보의 주체·목적·​대상 및 범위 등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천 건강세상네트워크 운영위원은 “적십자사는 개인정보를 처리한 후에도 이를 공지하지 않았고,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에서 정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목적, 개인정보의 항목, 보유 및 이용기간에 대한 고지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이는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적십자사가 공적 지위를 이용해 지로서를 발부함으로써 청구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했다고도 할 수 있다”며 “헌법소원 청구를 시작으로 적십자사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과 감시활동을 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대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사 조직법과 시행령에 의거해 회원 모집과 회비 모금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모금 회비가 인도주의 활동을 하는 가장 중요한 재원이다. 지로 모금을 안 하게 되면 부담이 상당하다. 한 해 지로통지서로 모금되는 액수가 250억 원 정도 되는데 당장 그만두면 취약계층을 도울 수 없다”며 “세대주 대상 지로형태 납부요청서를 폐지하고 다른 모금 방안을 찾는 중이다. 국민들이 막연히 거부감을 느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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