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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안 보면 손해, 독일 뮤지엄 어디까지 봤니

피카소·마네·모네·르느와르 질리도록 보는 호사, '로또' 맞은 기분

2019.12.12(Thu) 16:57:54

[비즈한국] 오후 3시 40분이 지나면 어둑해지기 시작해 4시가 넘으면 깜깜해지는 겨울을 다시 맞았다. 베를린에서 세 번째 맞는 겨울은 여느 해와는 다른 느낌으로 시작했다. 내년 여름 귀국을 앞둔 터라, 긴긴 겨울밤을 잘 보내야 할 의무감이 든다고나 할까. 겨울이 끝나는 4월이 되면 이곳 생활을 정리하느라 계절 만끽을 못하게 될 터이니, 어찌 보면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계절이기도 한 셈이다.

 

해서 이 계절이 시작될 때는 ‘한번 친하게 잘 지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매일 같이 비가 내려도, 햇빛 쨍한 날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어도 잿빛 가득한 하루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으리. 막상 해가 뜬 시간이 8시간이 안 되고, 해 구경은 언감생심인 날들이 이어지다 보니 외출 자체가 즐겁지 않고 자꾸만 발길은 집으로 향했다.

 

베를린 박물관 섬 내 위치한 구 국립미술관 전경. 인근에 페르가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박물관, 보데박물관 등이 있으며 최근 다섯 박물관의 메인 인포메이션 센터 역할을 하는 제임스시몬갤러리가 완공돼 박물관 섬이 완성됐다. 사진=박진영 제공


집 안에서 가는 날짜를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는 일. 내가 찾은 답은 박물관(미술관 포함)이었다. 지난 봄, 두 번째로 끊은 연간회원권이 있으니 20여 개에 달하는 베를린 주립 박물관은 어디든 언제든 무료로 갈 수 있다.

 

한국에도 비슷한 연간회원권 제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베를린의 박물관 연간 회원권 제도를 보고 로또 맞은 기분이 들었다. 연간 100유로면 특별전까지 모두 무료, 50유로면 상설 전시 무료, 심지어 관람객이 많지 않은 오전이나 오후 등 특정 시간에만 관람할 수 있는 베이직 회원권의 경우에는 25유로밖에 하지 않으니 ‘안 사면 손해’인 셈. 관광객 대상의 주립 박물관 외 몇 군데를 추가한 3일짜리 패스의 경우도 29유로이니, 연간회원권은 거저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여름 ‘카유보트 특별전’ 당시의 구 국립미술관 내부. 관광객이 몰리는 성수기가 아니면, 주중 낮 시간에는 한산한 분위기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첫해에 연간회원권을 끊었을 때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비용이었다. 여러 옵션 중 내가 선택한 클래식 티켓은 50유로에 동반한 아이 두 명까지 무료 티켓을 받을 수 있으니 서너 번만으로 들인 돈을 뽑기에 충분했다. 그해 이미 페르가몬 박물관이며 구 박물관, 신 박물관, 보데박물관, 구 국립미술관까지 박물관 섬 내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베를린을 관통하는 슈프레강 북쪽에 위치한, 5개의 보물 같은 박물관이 밀집한 박물관 섬은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다. 나는 이곳을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첫해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방문했지만, 여전히 볼 것이 차고 넘친다. 박물관 규모도 규모지만 한글 지원이 안 되는 상태에서 몇 시간씩 작품을 보면 머리에 남는 게 몇 개 없었다. 그러니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보고 계속 볼 수밖에.

 

베를린과 함부르크를 오가던 기차역을 개조한 함부르거 반 호프 뮤지엄 전경. 베를린을 대표하는 국립 현대미술관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그중 ‘최애’ 박물관은 구 국립미술관이다. 유물이나 조각보다 회화를 사랑하는 나에게 최적의 뮤지엄이다. 마네, 모네, 르느와르, 고흐 등 국내에서 어쩌다 특별전 한번 열려야 볼까 말까 한 작품들을 매일, 그것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데다 이전에 잘 몰랐던 독일 표현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새로운 작품을 매일 발굴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 때마다 한두 개의 방만 집중적으로 둘러보고 다음번엔 다른 층, 다른 방을 목표로 가는 방식을 택하니 사람에 등 떠밀려 몇 초 쓱 보고 지나가던 ‘특별전’ 감상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피카소 작품이 대거 전시된 뮤지엄 베르그루엔(Berggruen)은 또 어떤가. 몇 번을 가도, 자꾸 봐도 감동인데 얼마나 더 와야 충분하다 느낄는지.

 

예술작품이란 게 본디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있겠지만, 어마어마한 작품들을 언제 다시 이렇게 가까이에서 실컷 감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급해진다. 가보지 않은 곳은 안 가봤단 이유로, 좋아하는 곳은 좋아한단 이유로 한 번 더 봐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든다.

 

베를린 구 뮤지엄 잔디광장에는 볕 좋은 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사진=박진영 제공​


요즘 들어 ‘의무감’은 정점에 달했다. 11월 말과 12월 초, 독일의 드레스덴과 베를린에서 연달아 발생한 두 건의 박물관 도난 사건을 지켜보면서 ‘내일 보면 되지’ 하고 미뤘다가는 평생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든 탓이다.

 

드레스덴을 네 번이나 갔다 왔으면서도, 츠빙거 궁전에 매번 방문했으면서도 박물관 관람을 늘 ‘다음’으로 미룬 탓에 어쩌면 영원히 몇 점의 18세기 보석을 실물로 볼 기회를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작센왕국의 선제후 아우구스트1세(폴란드 왕명 아우구스트2세)가 구입했다는, 무려 141억 원에 달하는 49캐럿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도난당한 1조 3000억 원 상당의 보물들을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 다음 번 드레스덴 방문 때는 나머지 보물이라도 꼭 보고 오겠다는 뒤늦은 다짐을 하는 중이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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