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작년 가을, 베를린에서 2주를 보낸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던 날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엄마도 나도 눈물 짜는 상황이 연출될 무렵, “한 번 더 와”라는 내 말에 대한 엄마의 센스 넘치는 대답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러고 싶어도 화장실 때문에 못 올 거 같아.” 덕분에 웃으며 헤어졌지만 돌이켜보니 2주 동안 ‘웃지 못할’ 상황이 참 많았구나, 싶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듯 독일 역시 화장실 이용이 대부분 유료다. 보통 1인당 50센트, 약 750원 이상의 사용료를 내야 하고, 비싸게는 1유로(약 1300원) 이상 받는 곳도 있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유료 화장실은 당연, 무료 화장실은 땡큐’로 받아들이게 된 나이지만,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때가 많았다.
‘시티토일렛’ 같은 곳이야 당연히 그렇다 치고, 내 돈 주고 쇼핑하러 간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도 꼬박꼬박 돈 내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러 들어간 카페나 레스토랑에서조차 돈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니 ‘뭐 이런 고객 서비스가 다 있어’라는 불만이 절로 나올 수밖에.
한 사람당 50센트, 세 가족이면 1유로 50센트, 어쩌다 두 번 간다고 치면 화장실 이용료만 많게는 4000원 가까이 드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이 많지도 않다. 5~6층에 달하는 백화점 건물에 2~3개 있으려나. 층마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한국을 생각하면 불편도 이런 불편이 없다.
주로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 입장에서 이런 상황을 접한 부모님의 ‘화장실 노이로제’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쩌다 온 식구가 하루 종일 밖에서 보내는 날에는 50센트짜리 동전이 숱하게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동전교환기가 있는 화장실 수는 극히 적어서 내 지갑에는 항상 동전이 넉넉하게 준비돼 있어야 했다.
근처에 돈 주고 갈 수 있는 ‘유료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차라리 다행. 어떤 때는 ‘화장실 찾아 삼만리’ 하느라 애초 계획했던 관광 동선이 꼬이기도 했고, 코스마다 화장실을 발견하면 무조건 들르는 상황까지 연출됐다. 베를린 관광인지 화장실 관광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이용료가 비싸다는 생각에 가능한 참을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강박증’이 화장실을 더 자주 들락거리게 하는 심리적 불안요소가 돼버린, 좋지 않은 케이스가 발생한 것이었다.
화장실과의 전쟁을 할 때쯤이면 부모님의 농담 반 진담 반 멘트는 한결같았다. “독일은 화장실 인심이 너무 야박해.” “화장실 때문에라도 다시 오긴 힘들 것 같아.” 나는 말했다. “우리가 내는 이용료가 여기 청소하시는 분들 급여야. 저 분들도 공짜로 일할 순 없잖아.” 반박할 수 없는 얘기에 수긍하다가도 다시 왜 업체 측에서 그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엉뚱한 논쟁이 붙기도 했지만, 초기의 화장실 사태는 다행히 조금씩 나아져갔다.
나는 50센트를 내고 유료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기분 좋은 순간이 많다. 무료 화장실에 비해 무척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이용료’ 차원이 아니라 청결 서비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돈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
초기 베를린에 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날이라 하더라도 화장실 이용료를 지불하는 회수가 확연히 줄었다. 내가 다니는 동선에서 이용 가능한 ‘무료 화장실’ 지도가 어느 정도 머리 속에 있는 데다, 화장실 이용료를 낼 바엔 차라리 무료 화장실 이용이 가능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는 게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
화장실 이용 팁은 이렇다. 베를린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동선에서 최적의 무료 화장실은 박물관이다. 100%는 아니지만, 보통 티켓 확인 전 이용할 수 있는 위치에 화장실이 있어 편리하다. 무료 화장실을 못 찾겠다면, 관광지 근처 대형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비용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작은 규모의 카페 등은 아예 화장실이 없는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물어볼 것.
일부 대형 마트에도 열쇠로 굳게 잠긴 고객용 화장실이 있으니 문의는 가능하다.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라면 주유소에서도 화장실 이용이 가능하다. 주유를 하거나 물건을 사면 보통은 무료로 열쇠를 받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간이 쉼터인 ‘P’ 구역에서 얼마든지 무료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고, 휴게소에서는 무조건 유료다. 얼마 전 일괄적으로 휴게소 화장실 이용료가 50센트에서 70센트로 올랐다. ‘P’ 구역 무료 화장실의 청결도는 짐작할 수 있듯 상당히 좋지 않기 때문에 나는 매번 휴게소를 이용하는 편이다.
유료 화장실이라고 해서 매번 이용료를 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은 하지 마시라. 화장실 청소하시는 분이나 관리자가 앞에서 돈을 받고 있고, 어떤 곳은 기계식으로 돼 있어 동전을 넣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곳도 있다. 심지어 칸마다 자물쇠를 걸어두고 돈을 내면 한 칸의 자물쇠를 풀어주는 곳까지 있으니 은근슬쩍 무료로 사용하려는 생각은 접는 게 좋다.
운 좋으면 관리자가 자리 비운 사이 몰래 들어갈 수도 있겠으나,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그 누구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아, 어린아이들은 무료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무료로 ‘유료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아들아이는 그래서 화장실 관련 정보(?)가 많다. 얼마 전 동네의 한 갤러리에 방문했다가 화장실 이용 중 처음 보는 수도꼭지 모형 사용법을 몰라 그냥 나온 나에게 아들이 사용법을 알려주며 당당하게 말했다. “엄마, 내가 화장실을 많이 경험해봤잖아. 그래서 웬만한 건 다 알아.”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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