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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그들은 왜 우정총국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을까

근대 우편제도 받아들여 만들어진 우정총국…삼일천하 후 개화파와 운명 함께해

2019.11.19(Tue) 17:59:56

[비즈한국] 서울 종로 안국동 사거리에서 종각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면 ‘우정총국’이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우정총국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괄호 안에 ‘체신기념관’이라 쓰여 있고 그 아래 영어로 ‘Post Office’라 한 것을 보면 우체국은 우체국인 모양이다. 힐끗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기와지붕의 옛 건물 앞에 붉은 우체통이 눈에 띈다. 

 

우정총국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우체국이자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병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사진=구완회 제공

 

이곳이 바로 135년 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우체국이자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 우정총국이다. 곱게 단청을 한 천장 아래로 갓을 쓰고 곰방대를 물고 있는 100여 년 전 우편배달부의 모습도 보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5종 세트에, 초대 우정총판이었던 홍영식의 흉상도 보인다. 

 

#135년 전 ‘그날’의 기록

 

당시 갓 서른 살이었던 홍영식은 ‘보빙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에 가서 뉴욕 우체국 등을 둘러보고, 고종에게 근대 우편제도의 필요성을 진언하여 우정총국을 만들고 초대 우정총판에 올랐다. 동시에 그는 김옥균이 이끄는 급진 개화파의 일원으로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국가 수립을 위해서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민씨 일가를 몰아내고 적극적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갑신년 음력 10월 17일(1884년 12월 4일), 우정총국 건물의 낙성식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을 일으킨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 나름대로 철저한 계획을 세웠다. 우정 이정표에 쓰여 있는 것처럼 이곳에선 총국 축하연에 당시 권력 실세였던 민씨 일가를 부르고, 궁 현재 우편 업무를 보고 있다. 하지만 궐에서 불이 솟는 것을 신호로 이들을 처단할 예정이었다. 건물 안 대부분은 우편 전시관의 역할 그리고 바로 고종과 명성왕후의 신변을 확보하고 새로운 개화 정부를 출범하면 상황 끝. 최대 걸림돌은 민씨 정권을 후원하고 있는 청나라 세력이었지만, 이들보다 더욱 근대화된 군사력을 갖추고 있던 일본 영사관에서 정변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우정총국 내부 전시물. 갑신정변 이후 폐쇄되었던 이 건물은 학교로 쓰이다가 1972년 ‘우정총국체신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이후 2012년 8월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문을 열었다. 사진=구완회 제공

 

드디어 디데이. 하지만 상황은 처음부터 조금씩 어그러졌다. 기다리던 궁궐의 불길이 끝내 솟아오르지 않았다. 준비한 화약이 불발된 것이었다. 부랴부랴 다른 곳에 불을 놓아 쿠데타를 시작했지만, 제거 대상 1호였던 민영익이 중상을 입고도 기어코 목숨을 건져 도망쳤다. 그래도 고종 내외의 신변을 확보한 것은 큰 성과였다. 이들을 창덕궁 옆 경우궁으로 옮기고 한양 곳곳에 방을 붙여 정변이 성공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성공에 불과했다. 민씨 정부의 구조 요청을 받은 청나라에서 군대를 파견했고, 일본 측은 청과의 충돌이 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 한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다. 

 

#우정총국에서 체신기념관으로

 

다음 날, 분위기를 간파한 고종 내외는 좁은 경우궁이 불편하다며 창덕궁으로 옮기기를 원했다. 넓은 창덕궁은 병력에서 열세인 쿠데타군에게 불리한 곳이었다. 당연히 정변 세력의 반대가 있었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고종은 창덕궁으로 향했다. 드디어 사흘째, 청군과의 일전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애써 준비한 최신식 미국 총에 탄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닌가. 몇 개월 전에 미리 들여온 총을 창고에 처박아둔 탓에 총구에 녹이 슬어버린 것이었다. 총구에 낀 녹을 미처 닦아내기도 전에 청군이 들이닥쳤고, 쿠데타군은 기왓장을 던지며 맞서야 했다. 믿었던 일본군이 제시한 것은 겨우 쿠데타 주도 세력의 일본 망명뿐이었다. 결국 김옥균, 서재필 등은 나무 궤짝에 숨어 일본 망명에 성공했으나, 우정총판 홍영식은 청군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옛 우체부 모형. 사진=구완회 제공


근대 우표 5종 세트. 사진=구완회 제공

 

어찌 보면 정변의 실패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다. 일본을 너무 믿었고, 총에 녹이 슨 것도 모를 정도로 준비가 허술했다. 하지만 당시 부정부패에 찌들어 있던 민씨 정권을 몰아내고 개화를 통해 자주독립을 추진하겠다는 명분만은 확실했다. 이들은 젊었고, 나라와 백성을 위한다는 일념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명분만으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다.

 

갑신정변이 삼일천하로 막을 내린 후 우정총국 또한 폐쇄되었다. 그 뒤로 이 건물은 학교로 쓰이다가 1972년부 체신부에서 인수해 ‘우정총국체신기념관’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2012년 8월 새 단장을 마치고 다시 업무를 시작했다. 시내를 지나는 길에 잠시 짬을 내 우정총국에 들러 아이와 함께 옛날 우체국 유물들을 보며 100여 년 전 젊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어떨까.

 

<여행정보>


우정총국

△위치: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9

△문의: 02-734-8369

△관람 시간: 9시~18시, 1월1일·설·추석 당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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