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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한국과는 극과 극, 머리 아픈 독일의 이사 풍경

'사다리차'가 뭐예요? 포장이사 있지만 개념 달라, 비싼 비용에 대부분 '셀프' 이사

2019.10.31(Thu) 10:44:46

[비즈한국] “이사 잘 했어요?” 며칠 전, 같은 반 한국인 아이 가족이 이사를 했다. 차로 5분 거리 옆 동네로 가는 이사지만 그 과정이 머리 아프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 어쩌다 몇 년째 베를린에 살지만, 애초 잠깐 있을 계획이었던 터라 좋은 물건도 큰 가구도 별로 없어 수월할 것이라 했던 그 학부모의 얼굴이 심각하게 좋지 않아 보였다.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짐정리를 다 못했다는 얘기인 줄 알았다. “정리는 천천히 하면 되죠”라는 내 말에 그이가 말했다. “정리 문제가 아니라, 짐을 아직도 나르고 있어요.” 예정된 이사 날짜로부터 이틀이나 지났는데, 이사가 진행형이라니? 독일에서 이사하는 일이 간단치 않음은 익히 들었고, 가까운 거리라 작은 트럭으로 두세 번 나르는 방식임도 알았지만 아직도 다 못 옮겼다니 어안이 벙벙했다.

 

한국형 포장 이사와 개념이 다른 독일에서는 포장 이사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큰 가구 정도만 배치해주고 나머지 박스는 모두 직접 풀고 정리해야 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사정을 들어보니 이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는 ‘한국식’ 포장이사 개념이 없는 독일에선 스스로 짐을 싸고 풀어야 하니, 비싼 가격 치르고 대형 전문 업체를 쓰는 대신 작은 업체와 계약했다. 이사 전 집을 방문해 견적을 내는 과정도 생략한 채, 사진 몇 장만 보내달라고 한 그 업체는 수월하게 일이 끝날 것으로 자신했다.

 

이사 당일 아침, 몇 명의 인부가 도착했고 짐을 나르기 시작하면서 ‘멘붕’이 왔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전문 인력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그들은 짐을 나르는 데 너무나 서툴렀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이라 좁은 계단을 통해 손수 짐을 옮겨야 하는데, 그들은 작은 가구조차 옮기지 못해 모두 분해한 끝에 옮겨야 했다. 매번 그런 식이라 이틀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었다. 독일살이를 하면서 이사 관련 에피소드를 숱하게 들었지만 지척에 있는 집으로 옮기는 이사를 며칠째 한다는 얘긴 또 처음이었다.

 

너무 번거롭고 불편해서 독일 사람들은 이사를 잘 안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형가구며 가전부터 주방, 각종 철거와 이전 설치까지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착착 일을 진행해 사다리차로 짐을 내리고 올려 오후 서너 시면 짐 정리까지 마치는 한국의 이사는 그야말로 초절정 럭셔리 이사다. 여기도 포장 이사가 있지만 개념이 다르다. 꼼꼼하게 짐을 싸주는 것도 아니고 정리라고 해봐야 큰 가구 위치를 잡아주는 정도. 해당 박스가 어느 공간 물건인지 정도만 체크해 그곳에 놓고 가는 식이다.

 

독일에선 직접 짐을 싸고 친구나 동료들을 동원해 ‘셀프이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 며칠 전 같은 아파트에서 이사를 나간 1층 젊은 커플은 밤새 짐을 직접 나르느라 현관 여기저기 짐을 늘어놓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내 경우만 보더라도, 한국에선 분명 꼼꼼한 포장 서비스를 받았는데, 독일 인력이 배치돼 짐을 날라줄 때는 거실과 안방, 서재 등 박스만 분류해 쌓아두고 가버린 바람에, 며칠 동안 몸살 앓아가며 박스를 풀고 짐정리를 해야 했다. 게다가 사다리차는 언감생심. 피아노와 양문형 냉장고를 아저씨들이 직접 들어서 나를 때는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현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냉장고는 그 먼 길을 오고도 집에 들이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으니 속 타는 과정을 어찌 다 말하랴.

 

이렇다 보니 인건비가 살벌한 독일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싼 전문 업체를 이용하는 대신 직접 큰 승합차나 트럭을 빌리고 친구와 직장 동료들을 동원해 ‘셀프이사’를 하는 편이다. 대형 전문 업체를 쓰는 경우는 우리처럼 해외 이사로 컨테이너가 들어올 때라던가, 유럽 내에서 국경을 넘거나 같은 국가 내에서도 장거리 이동하는 경우 정도만 해당된다.

 

2년 넘게 살면서 많은 이웃들이 이사 가고 이사 오는 풍경을 봐왔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우리가 이사 오던 때와 같은 큰 이사업체 트럭을 본 적이 없다. 심하게는 본인 승용차에 조금씩 물건을 싣고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는 집도 있다. 독일 집에는 대형 가전이나 가구가 거의 없고, 대부분 이케아 가구와 같은 조립형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박스 구입부터 차량 렌트, 각종 이사 관련 물품과 서비스 등 ‘셀프 이사’를 하는 많은 이들이 웹사이트 등을 통해 직접 이사를 준비한다(독일어 원문 번역). ​사진=이베이 화면 캡처


여러 번 오가기 힘든 원거리 이사의 경우 전문 업체를 쓸 수밖에 없지만, 그런 경우엔 또 다른 이유로 이사가 당일에 끝나지 않는다. 노동시간을 철저하게 지키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초과되면 일을 멈추고 다음날 이어서 진행한다. 지난해 베를린에서 스위스로 이사한 지인의 경우 짐을 싸는 데 하루, 스위스까지 가서 짐을 내리는 데 이틀, 총 3일이 걸렸다.

 

짐을 싸다가도 칼같이 휴식시간을 지키고, 고속도로 운전 또한 일정시간 운전 후 반드시 ‘휴식’, 하루 근무시간이 끝나면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휴식과 취침을 한 후 다음 날 다시 운행해야 하는 근로규칙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가족은 이사차량과 함께 출발했지만 자신들만 먼저 9시간을 달려 텅 빈 새집에서 하루를 묵었고, 이사 차량은 고속도로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도착했다.

 

3일치 인건비를 부담해야 하니 이사 비용이 얼마나 비쌀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독일에서는 이사를 안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루가 더 지난 후 같은 반 학부모를 다시 만났다. 이제는 묻기도 민망해하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이제 한 90퍼센트는 끝났어요.”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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