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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임대계약서 조항에 '층간소음', 과연 어떻길래?

악기 연주·레슨 '소음금지' 시간대 피해서 해야…경찰이 출동하기도 해

2019.10.03(Thu) 18:18:24

[비즈한국] 오호, 쾌재라! 옆집 마녀가 이사 갔다. 서재, 안방의 벽을 맞댄 옆집에는 우리 부부보다 어려 보이는 부부와 어린 아이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살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그 집 안주인을 마녀라 불렀다.

 

같은 층, 벽을 맞대고 있지만 출입구가 달라 그 집 사람들을 볼 일이 없었다. 독일 사람은 모르는 사이라도 같은 건물에서 만나면 ‘할로(hallo)’라고 인사하기 때문에, 몇 번 인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같은 라인도 아닌데 어느 층 어느 집에 사는지 알 까닭이 있나.

 

독일에서도 층간소음은 예민한 사안이다. 집 계약서에는 소음을 내면 안 되는 시간이 명시돼 있다. 사진은 1950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베를린의 집합주택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악연은 지난해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12월 초 어느 날, 우리 집에선 귀국을 앞둔 한 한국인 가족의 환송회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 가족 포함 세 가족, 어른 6명과 아이 4명이었다. 어른들이 앉은 식탁은 맞은 편 집에서 가장 먼 위치였고, 아이들이 노는 아들 방은 서재방과 거실 사이였다. 우리 집에 아이 친구들이 종종 놀러 왔지만 문을 닫으면 소리가 거의 차단될 정도로 방음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녁 9시가 되기 직전, 집 앞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보니 옆집 남자였다. 그로부터 몇 개월 전, 다른 한국인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아차’ 싶었다. 그때도 비슷한 시각이었는데, 당시 옆집 남자는 미안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어디를 가야 하는데, 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잠을 못 자고 있으니 좀 조용히 해줄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부탁했었다. 그땐 아이들 세 명이 서재에 들어가 놀고 있던 상황이었다. 우리는 사과를 하고 서둘러 아이들이 서재를 나오게 했다.

 

이번에도 옆집 남자는 정중하게 부탁했다. 아이가 한 명 늘긴 했어도, 아들 방에서 놀고 있던 터라 의아했지만, 방과 연결된 서재 문이 열려 있어 소리가 새나갔나 싶었다. 같은 일을 두 번째 당하니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들을 거실로 나오게 한 후, 아이 방문과 서재 문까지, 옆집으로 이어진 문을 모두 닫고 놀게 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이번엔 1층 현관 벨이 울렸다. 인터폰으로 보니 처음 보는 여자였다. 옆집 여자임을 직감한 남편이 서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손님들은 이제 그만 가는 게 좋겠다며 급히 자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호스트 입장에서 참으로 미안하고 난감한 순간이었다. 옆집 남자가 왔다간 후 아이들은 별로 큰 소리 내지 않고, 옆집과 마주한 공간도 아닌 곳에서 놀고 있던 터였다.

 

한참이 지나도 남편이 올라오지 않자 상황 파악을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남편의 사과와 설명에도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평소 우리 집에서 나는 소음 때문에 힘들었다느니, 자기네 피해가 크니 집 관리인에게 항의해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는 식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소음으로 인한 피해라면, 우리야말로 할 말이 많았다.

 

옆집 남자가 처음 우리 집에 ‘항의성 방문’을 하기 전부터 우리 가족은 옆집 사람들을 궁금해했다. 툭하면 부부싸움 소리가 들렸는데, 주로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물건이 날아가 부딪치거나 깨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밤낮을 가리지도 않았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도 안방 벽을 통해 옆집 여자가 질러대는 소리를 듣곤 했다. 아이는 그 소리에 무서워했고, 그런 이유로 옆집 여자를 ‘마녀’라 불렀던 것이다. 나는 경찰에게든 관리인에게든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집에 아이도 있는 것 같던데 저러다 진짜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옆집 마녀가 남편에게 하는 말들을 듣자니 참았던 일들이 생각나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마녀에게 말했다. “오늘 일은 미안하지만, 우리도 그 동안 많이 참았거든요. 자주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들리던데 저희 아이가 놀랄 정도로 큰 소리였어요. 몇 번이나 가서 얘기할까 했지만 이웃이라 참았는데, 그쪽은 좀 너무하네요.” 순간 당황하는 듯했던 마녀는 이내 발뺌을 했다. “싸우는 소리라니 무슨 얘기에요? 아마 텔레비전에서 나는 소리였겠죠!”

 

이후 우리 집에서는 몇 번 더 다른 가족들과의 모임이 있었지만, 한 번도 옆집 남자나 마녀가 찾아온 일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생각했다. 우리가 부부싸움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그런데 딱히 그렇지만은 않은 듯도 하다. 이사를 가기 직전까지도 부부 싸움 소리는 일정한 텀을 두고 지속적으로 들려왔고, 심지어 얼마 전부턴 남편도 같이 소리를 지르는 ‘쌍방전’ 형태로 변했으니까.

 

베를린의 한 신규 주택단지. 벽과 층을 맞댄 한국형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나 타운하우스 단지라 해도 소음 관련해 동네마다 ‘규정’이 존재한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에서 ‘소음’ 문제는 굉장히 예민한 사안이다. 수십 장에 달하는 집 임대 계약서에도 관련 사안이 언급돼 있다. 동네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피아노 등 악기 연주 가능한 시간대가 따로 정해져 있어 레슨도 그 시간에만 받아야 한다. 주중은 물론 주말에도 ‘소음 금지’ 시간이 정해져 있다. 이 시간에는 악기뿐 아니라 어떤 소음도 조심해야 한다. 

 

전에 임시로 살던 동네는 노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저녁 8시만 돼도 모든 집의 불이 다 꺼지는 그야말로 조용한 곳이라 집주인이 특별히 ‘소음’을 주의해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처음 한 두 번은 집 문 앞에 ‘경고’ 메시지를 써 붙여놓는 것으로 끝나지만, 같은 일이 계속되면 경찰이 출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예의를 지키며 사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가끔 현관에 ‘오늘 밤 집에서 ○○시에서 ○○시까지 홈 파티를 엽니다. 사랑하는 이웃들의 양해를 구합니다’라는 쪽지가 붙은 걸 보거나, 옆집 커플이 찾아와 “오늘 친구들이 놀러 오기로 했어요.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을 거예요. 죄송해요”라며 손수 만든 쿠키를 내밀 때는 별 것 아니지만 이런 말 한마디와 이웃을 배려하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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