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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물질 라니티딘 사태'로 또 불거진 식약처 '뒷북 행정'

미·유럽 조사에 의존하다 뒤늦게 대응…강윤희 식약처 임상심사위원 "안전성 보고 무용지물" 주장

2019.10.01(Tue) 16:29:17

[비즈한국]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식약처가 약 관리에 너무 소홀해서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문제 제기를 했죠. 그러니까 식약처에 있는 한 분이 ‘해외에서 열심히 검토하고 있는데 굳이 중복해서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FDA에서 허가한 약을 우리나라에서도 그대로 허가하지 왜 또 허가 절차를 받느냐’고 맞받아친 적이 있어요.”

 

강윤희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심사위원의 말이다. 그는 국내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주도적으로 관리할 책임이 있는 식약처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제약회사가 자발적으로 제출한 자료 혹은 FDA(미국 식품의약국)와 EMA(유럽의약품청) 등 해외기관의 발표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강 위원은 지난 7월부터 식약처의 부실한 의약품 안전관리 시스템을 고발하며 국회 1인 시위를 벌여왔다. 그러나 식약처는 ​상사 협박 등을 이유로 ​지난 9월 18일부로 강 위원에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식약처의 의약품 안전관리 시스템을 두고 개선이 시급하다는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26일 식약처는 NDMA(​​N-Nitrosodimethylamie​)라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위장약 ‘잔탁’ 등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 269종에 판매 중지 처분을 내렸는데, 이를 두고 ‘또 한발 늦었다’는 지적이 적잖다. 지난해 7월 EMA가 고혈압 치료제의 원료의약품 중 중국산 발사르탄에서 NDM​A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이후 큰 논란이 일었고 다른 의약품에서도 NDM​A가 검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식약처는 별다른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 결국 식약처는 지난 9월 14일 FDA가 라니티닌 성분 의약품에서 미량의 NDM​A가 검출됐다는 발표 이후에야 해당 의약품에 대한 조사에 돌입했다.

 

발암물질이 검출된 위장약 잔탁 등 라니티딘 성분 의약품 관련 대응을 두고 식약처 시스템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지적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작용 건수 많은 약품만 검토, 전문가도 부족

 

잔탁의 사례처럼 이미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 시판되는 의약품도 나중에 치명적인 결점이 발견되거나 부작용이 보고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식약처는 현재 이런 의약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을까.

 

우선 식약처는 2015년 7월부터 제약회사에 6개월마다 PSUR(정기적인 안전성 보고)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이 자료를 받은 의약품안전평가과가 심사부인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보내고, 평가원은 검토 후 보고서를 작성하고 문제가 있다면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강 위원은 제약사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검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성토했다.

 

또 다른 검증 절차도 유명무실하기는 마찬가지다. 제약사 이외에 의사나 환자도 시판된 의약품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식약처의 산하 기관인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에 자발적으로 보고할 수 있다. 문제는 의사와 환자들이 부작용을 이야기하더라도, 부작용이 대량 보고되지 않는 경우 컴퓨터 알고리즘에 따라 아예 논의 대상 의약품에서 제외된다는 것이다.

 

강 위원은 “부작용이 한 건이라도 상당히 유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그 부작용을 분석하고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은 굉장히 중요한 조직이다”며 “하지만 지금은 건수가 많은 의약품에만 검토가 이루어질뿐더러 보고된 부작용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파악할 전문가도 부족하다. FDA는 시그널(부작용)이 보고되면 분석해서 리포트를 내놓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부작용이 보고된다고 하더라도 ‘사용상 주의사항’에 한 문장을 추가할 뿐”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제약회사의 자발적 보고나 해외 기관의 발표 이후에야 식약처가 부랴부랴 대응책을 마련하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식약처 인력이 FDA의 10분의 1에 불과한 데다, 제네릭(복제약)이 난립하는 우리나라 특성상 철저히 조사하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해외기관에서 조사하지 않는 국내 신약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6일 라니티딘 성분 원료의약품 269개 품목의 제조·수입·판매를 중지한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제도보다 식약처의 뒤늦은 대응과 수동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사진=연합뉴스


#의약품 심사 유럽은 30명 이상, 한국은 7명…​식약처 “​인력·장비·​돈​ 한계”​

 

전문가들은 제도보다 식약처의 수동적인 태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팀장은 “FDA처럼 조사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인종적 차이라는 게 분명 존재한다”며 “서양인에게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동양인에게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진한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은 “해외 기관보다 빨리 부작용을 보고받고 또 분석하기가 힘들 수는 있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투자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식약처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동근 팀장은 “지난해 발사르탄 사태 이후 비슷한 약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될 수 있다는 얘기가 많았다. 하지만 식약처는 의미 있는 조사를 벌이지 않았고 결국 이번에도 FDA 발표 이후 뒤늦게 대처했다”며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통해 환자 데이터를 모을 수 있어서 충분히 역학조사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측은 “시사프라이드, 페닐프로판올아민 등 많은 의약품이 해외 국가에서 의약품과 약물이상반응 간 잠재적 인과관계가 인정돼 규제가 이루어진 이후에 식약처에서 판매 금지했다. 왜 우리나라에서 시판된 의약품 안전성 문제를 국내 식약처가 아닌 EMA나 FDA 결과를 통해 뒤늦게 인지해야 하느냐​”고 따졌다.​

 

장기적으로는 제3의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중앙약사심의위원회(약심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약심위는 개발 중이거나 시판 중인 모든 의약품을 검토한다. 강윤희 위원은 “인력을 몇 명 더 채용하기보다 의약품 부작용에 대한 관리와 분석을 전담할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유럽은 하나의 약을 심사할 때 30명 이상이 참여해 결론을 내린다. 반면 우리나라 약심위 위원들은 7명이 모여 하루 만에 자료를 보고 판단한다. 약심위에서 관리를 잘해주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안전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인력·장비·​돈 문제 때문에 FDA나 EMA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쉽지 않다. 특히 이번 NDM​A처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은 미리 파악하기가 어렵다”며 ​“앞으로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있는 물질은 프로파일링을 해 나갈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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