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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독일 살면서 왜 영어 공부만? 외국어 분투기

외국에 산다고 외국어 실력 늘지 않아…'영어만이라도' 친구와 대화하며 공부 방식 찾아

2019.09.04(Wed) 21:45:32

[비즈한국] 다시 언어 공부를 시작했다. 2년 전 독일살이를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1년만 지나면 독일어도 웬만큼, 영어는 훨씬 잘할 수 있겠지!’

 

1년이 지나고 생각했다. ‘지난 1년은 익숙해지는 시간이었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외국어 실력이 빠른 속도로 늘 거야!’

 

이렇다 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막연히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외국어 실력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다니. 어림 반 푼어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국제학교에는 학부모들이 함께하는 행사가 많아 외국인 엄마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에 오기 전, 온라인 강의를 통해 독일어 문법 기초와 기본 회화를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전화영어 프로그램으로 원어민과의 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갈 때까지만 해도, 다 잘해낼 줄 알았다. 한국에 살 때와 달리 직장에 다니지 않으니 시간이 많을 테고, 하루 두세 시간만 투자해도 3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고, 그저 낙관했다.

 

처음엔 계획대로 착착 실행했다.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면 열일 제치고 독일어 공부부터 시작했다. 영어는 익숙한 외국어이고, 실력이 좋진 않아도 일상생활을 할 수는 있었지만, 독일어는 거대한 벽이었다.

 

글로벌 도시인 베를린에선 독일어 1도 쓰지 않고 영어만으로 잘 살 수 있다지만, 처음 살던 동네는 도심이 아닌 터라 마트에서도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정착 관련 서류 등을 처리해야 할 때도 독일어가 난관이었고, 레스토랑을 가도 메뉴판이 ‘온리 독일어’로 돼 있으니 단어 실력이라도 늘려야 했다.

 

베를린 도심에 위치한 대형 서점 듀스만. 영어 책만을 모아 둔 ‘잉글리시 코너’ 규모가 베를린에서 가장 크다. 사진=박진영 제공


그렇게 한 달 이상 지났을 무렵, 회의가 들었다. 머리가 굳은 탓인지 어제 공부한 독어인데도 오늘 생각나지 않고, 그나마 알던 것도 실전에 들어가면 무용지물이었다. 독일어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웠고, 나의 혀 구조로 독일어 발음이 가능하지 않았다. 목구멍을 긁듯이 소리 내야 하는 ‘r’과 목구멍 저 아래서 끌어올려 목과 코로 소리 내야 하는 ‘h’ 발음은 정말이지 멘붕이었다.

 

나는 점점 영어를 ‘사랑하게’ 됐다. 많은 한국인들이 ‘독일어를 공부하다 보면 영어가 좋아진다’던데, 사실이었다. 그러곤 나의 상황을 합리화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이는 국제학교에 다니고, 엄마들과는 영어로 얘기하면 되지 않을까. 한국 돌아가서 내가 독일어를 쓸 일이 있겠어? 아무리 해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안 될 거 같은데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게 낫지 않나?’

 

그 무렵 집을 현재의 거주지로 옮기면서 도심 한가운데 살게 되니 더더욱 영어만 할 줄 알아도 문제될 게 없었다. 해서, 내린 결론은 ‘영어만 열심히 하자’였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게, 대충 하는 영어로도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없으니 나태해졌다. 

 

독일살이가 익숙해지면서 재미있는 것도 많고 가야 할 곳도 많다 보니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 어쩌다 외국인 학부모들이나 아이 선생님을 만나 일상적 얘기 그 이상의 주제로 대화라도 하게 되면 ‘학창 시절 영어 성적은 어디로 갔나’ 회의를 느끼며 하루이틀 바짝 공부를 하다가도, 다시 느슨한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다행인지 학부모로 만나 친구가 된 나의 독일인 친구는 끊임없이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아시아와 한국에 엄청난 관심을 가진 그녀는 수시로 한국의 정치며 문화, 교육 등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깊게 대화하기를 원했다. 그녀의 질문이 아니더라도 만나는 횟수가 잦다 보니 안부나 일상 대화보다는 주제가 넓을 수밖에 없었다.

 

서툴고 버벅이고 때로는 부담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좋았다. 일주일 내내 하루 꼬박 세 시간씩 투자해 영어학원에 다니는 이들도 주변에 있었지만, 친구를 만나 대화하는 나의 방식이야말로 효과적이고 즐겁고 동기부여를 확실하게 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공부 방식을 찾아나갔다. 그 친구와 나누는 대화는 물론이고 심하게는 하루 서너 차례 주고받던 메일과 문자 등을 곱씹으며 영어에 익숙해지고 다양한 표현을 익혀나갔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베를린 박물관섬의 야경. 글로벌 시티인 베를린에서는 웬만하면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 사진=박진영 제공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써보는 것이 효과적이란 생각에 그 친구는 물론이고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자주 문자나 대화 앱, 메일 등으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학교에서 그들을 만나면 서툴더라도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건네기를 주저하지 않으려 했다. 한국인 학부모들이 많아서 한국어만 쓰고도 지낼 수 있지만, 도처에 영어를 쓰는 원어민이 깔린 지금이, 더 없이 좋을 절호의 찬스란 생각이 들었다.

 

궁극적으로 영어로 생각하는 게 ‘영어를 잘하는 길’이라기에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것을 영어로 되뇌어보거나 글자로 써보기도 했다. 잠들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습관을 몇 년째 유지하는 나는 한글책 대신 영어책을 읽었다. 소리 내 읽으며 발음도 체크하고, 가끔은 나보다 영어를 잘하게 된 아이가 발음을 지적하고 교정도 해주었다.

 

물론 여전히 나의 영어는 부족함 투성이다. ‘시험용 영어’가 아닌 탓에 말을 하다 보면 문장이 꼬여서 문법이 엉망진창이 될 때도 많다. 속사포로 쏟아내는 미국인 엄마의 말발 앞에선 정신이 혼미하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외국인 앞에선 주눅도 든다. 그래도 나에게 1년이 남아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공부’하지 않고 ‘경험’하면서 체득하는 영어야말로 ‘살아있는’ 영어일 테니까.

 

나의 계획은 조만간 아이의 학교에서 학부모 대상으로 운영하는, 독일어 클래스에도 나가는 것이다. 물론 1년 안에 독일어를 잘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3년 내내 마트, 카페, 레스토랑에서 필요한 몇 마디 독어만 할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영어로 진행하니 어쩌면 영어와 독어 둘 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최소한 ‘r’로 시작하는 우리 집 주소는 제대로 발음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부끄럽게도 지금은 택시를 탈 때마다 우리 식구 중 유일하게 독일어 ‘r’ 발음이 가능한 아이가 주소지를 ‘발음’해준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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