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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간단한 충치 치료 85만 원, 독일 의료시스템 '공포체험'

예약 없이 진료 어렵고 보험료는 너무 비싸…'타국에선 아프지 말자' 한숨

2019.07.25(Thu) 10:01:16

[비즈한국] “엄마 나 어금니가 약간 깨진 거 같아.” 이게 웬 날벼락. 그냥 아픈 수준도 아니고 깨졌다니. 다른 데도 아니고 하필 치과 진료가 필요한 시추에이션에 오만 가지 걱정이 한 번에 밀려왔다. 

 

바깥쪽 어금니가 살짝 깨져 떨어져나간 상태니 아이가 느낄 통증이 우선 걱정이었고, 한국 같으면 당장 병원 달려가면 된다지만 여기는 독일어로 ‘테어민(Termin)’이라 부르는 사전 약속 없이는 의사를 만날 수 없으니 도대체 그 ‘테어민’이 언제 가능할지도 문제였고, 마지막으로는 지난해 단순 충치 치료에 들었던 비용이 떠오르며 도대체 이번엔 얼마나 거금을 내야 할지….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병원들이 대거 들어선 병원 건물이나 큰 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동네마다 아파트나 빌딩 한편에 의사 이름을 걸어놓고 ‘표시’하는 병원이 대다수. 사진=박진영 제공


아이가 등록돼 있는, 한국인 2세인 의사가 운영하는 치과 홈페이지를 접속하니 가장 빨리 잡을 수 있는 예약 날짜가 2주 뒤. 또 다른 한국인 의사가 속해 있다는 한 치과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아플 거면 병원 예약 잡고 아파야 한다고, 예약 날짜 기다리다가 다 낫는다고, 이 나라의 ‘테어민’ 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응급 상황이면 가능한 빨리 해주기도 한다던데, 그나마 신규 환자로 가서 다시 이런저런 절차를 밟느니 등록된 병원이 낫겠지 싶어 전화를 걸었다. 최근엔 일주일에 이틀만 진료를 한다는 담당의사는 급한 상황이면 독일인 의사가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겠다고 했다. “아이가 독일어로 진료받기는 힘들까요?”

 

나는 물론이고 나보다 훨씬 독일어를 잘하는 아이에게도 병원에서 자기 증상과 치료 과정을 독일어로 소통하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대략 말이 통한다 하더라도 아픈 증상 등에 대해서는 어쩐지 정확하게 소통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많은 한국인들이 한인 의사를 선호하는 편이다.

 

독일 사보험 회사 중 하나인 알리안츠의 홈페이지(번역기 사용 후 화면). 보험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독일에는 건강 관련 사보험뿐만 아니라 주택 관련, 법적 분쟁 관련, 심지어 열쇠 분실 관련 보험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이유는 또 있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주치의’ 시스템이 있는데, 일부 독일 병원들의 경우 신규 환자 등록을 아예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 비교적 한국인들에게 우호적인 한인 병원을 ‘주치의’로 정하곤 한다. 그렇다고 주치의 선정이 대단히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내가 그 병원의 환자로 이미 등록돼 있다면 얼마든지 그 의사를 ‘주치의’로 선정할 수 있다. 

 

쉬운 말로 진료 한 번 ‘트면’ 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이유는 가끔 학교나 다른 기관 등에서 주치의를 써 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 한국인 가족은 아이가 아프지 않아 병원 갈 일이 전혀 없었는데도 주치의 선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병원에 한 번 다녀와 ‘등록’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일부 한국인 의사의 경우, 예약 없이 가도 진료를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여기에 우리는 한 가지 더 특수한 상황이 있다. 독일 현지 보험이 아닌 외국 생활 중 병원비 발생이 어느 정도 커버 되는 한국 보험에 가입돼 있는 터라, 비용 정산부터 관련 서류 요청 등 독일인 의사가 낯설어할 수 있는 절차도 포함돼 ‘말이 통하는’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가, 치과의사는 급한 상황을 ‘감안’해 3일 뒤로 예약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한 고비 넘고 나니 작년에 병원비 때문에 마음고생한 일이 떠올랐다. 독일에는 공보험과 사보험, 두 가지 보험체계가 있지만 우리 가족은 그 중 어느 것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크게 보면 여행자보험의 범주지만 그보다는 보장이 잘 되는, 비용도 여행자 보험보다는 훨씬 센 국내 보험사의 ‘주재원 보험’에 가입한 우리는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직접 병원에 돈을 낸 뒤 진료 내역서 등을 첨부해 보험사로부터 진료비를 보상받곤 하는데, 치과 진료의 ‘예외성’이 문제였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아포테케라 불리는 약국에서 처방전에 따라 약을 받는 방식은 우리나라와 같다. 의료가 까다로운 독일에서는 일반적인 약품이라 해도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없는 품목들이 많다. ​사진=박진영 제공


애초 보험 약관에 ‘충치 치료 보장’ ‘레진, 아말감, 크라운 비 보장’ 등 몇 가지 사항이 기재돼 있긴 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니, 결국 충치 치료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보험사에서는 담당 의사에게 전화와 메일 등으로 치료내역을 보다 상세하게 ‘요구’했고, 의사는 나에게 ‘전화 응대 및 추가 메일 발송’에 들어간 시간까지 따져 추가 비용을 청구하는 일까지 생겼지만 결과적으로 병원비를 전혀 돌려받지 못하고 끝이 났다.

 

문제는 신경치료도 없이 간단한 충치 치료에 들어간 돈이 650유로가량, 우리돈 85만 원선이었다는 점이다. 치과 비용 비싸다고 듣긴 했지만 예상을 넘어도 한참 넘어선 금액에 할 말을 잃은 나에게 독일인 친구가 말했다. “공보험을 드는 게 어때? 남편만 들면 세 가족이 다 무료로 치과 진료를 포함해 모든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몰라서 안 한 건 아니었다. 외국인이라 해도 소속이 확실한 경우 공보험에 가입하는 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애초 우리가 공보험 대신 한국 보험에 가입한 이유는 비용의 효율성 때문이었다. 소득에 비례해 납부액이 달라지는 공보험의 특성상, 우리의 경우는 내는 보험료에 비해 그만큼 혜택을 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돈을 많이 낼 바에야, 차라리 사보험을 드는 것도 생각했었다. 아무나 가입할 수 없고, 소득이 일정 수준(2019년 기준 월 5062.50유로) 이상이라야 가입이 가능한 사보험은 짐작대로 공보험보다 훨씬 비싸고 그만큼 보장 내용이나 환자로서 받는 ‘대우’도 다르다. 예를 들면 예약도 덜 번거롭고 대학병원 등에서 진료 받을 때도 과장급이나 원장급에게 진료 받을 가능성이 높다. 

 

치과의 경우 교정비용까지 모두 무료다. 다만 가족이라고 해도 개개인이 가입해야 하니 공보험과 비교하면 납부해야 하는 금액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주변의 한 교포 가족이 4인 기준 월 몇백만 원의 사보험료를 낸다는 말을 듣고 바로 포기했다. 결국 공보험이니 사보험이니 따지던 우리는, 독일에서 병원 찾아다니기가 한국처럼 쉬운 것도 아니고, 차라리 보험료 지불할 돈으로 추가 병원비를 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결론 내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병원비를 내는 순간이 오면,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뭔지. 돈도 돈이지만 타지에선 병원 갈 일 만들지 않는 게 최선. 아프지 말자!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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