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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째 수습 근무 중 '스페어 버스기사'를 아시나요

고정 기사 빌 때 '땜빵' 근무시간 들쭉날쭉해 승객 안전 위협…주 52시간제 여파로 더 증가할 듯

2019.07.10(Wed) 16:23:10

[비즈한국] 지난해 버스운수업체에 입사한 A 씨는 얼마 전에서야 ‘고정 기사’가 됐다. 약 1년 만에 ‘스페어(spare·예비용) 기사’ 신분에서 벗어난 것이다. 스페어 기사는 전담 차량 없이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다. 고정 기사가 쉬는 날 스페어 기사가 투입돼 버스를 운행한다.

 

A 씨는 스페어 기사 시절을 회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어제는 오후에 일했다가 오늘은 오전에 일해야 하는 식이다. 피곤한 상태로 일을 하게 되니까 승객들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며 “이렇게 일하는 기사들이 지금도 많고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일과 9일 한 버스 공영차고지 휴게실에서 만난 고정 기사들 역시 스페어 기사의 센 노동 강도에 공감했다. 추돌 사고를 내 고정 기사에서 스페어 기사로 전락한 B 씨는 “오늘은 이 노선을 탔다가 내일은 아예 다른 노선을 타는 경우도 있다”며 “원래 한 달 정도만 스페어 기간을 견디면 됐는데, 요새는 고정 기사가 되려면 6개월에서 1년까지 대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담 차량 없이 차를 운행하는 ‘스페어 버스 기사’들이 고정 기사가 되기 위해 대기하는 기간이 최근 더 길어졌다. 한 버스 내부 모습. 사진=김명선 기자


스페어 기사는 쉽게 말하면 ‘수습 기사’다. 업무 능력을 익히라는 취지로 각 운수업체는 신입 기사를 스페어로 지정한다. 이 기간에는 전담 차량이 없어 근무·휴식 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여러 개의 노선버스를 운행한다. 각 업체는 일정 정도의 벌점을 넘은 기사에게 주는 ‘벌칙’의 하나로 스페어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스페어 기사가 고정 기사로 발령받는 경우는 한 가지다. 고정 기사가 퇴직해 버스에 지정된 기사가 없어졌을 때다. 이 경우 오래 대기한 스페어 기사가 우선순위다. 촉탁 기간(정년퇴직 후 기간연장근로)에 해당하는 기사들은 대기 기간과 관계없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는다.

 

버스 기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스페어 기사들이 고정 기사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보통 3~6개월 정도 대기하면 고정 기사가 됐지만, 최근에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후문. 한 업체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 들어온 두 명만이 최근 고정 기사로 배치됐다. 이 업체에는 전체 기사 600명 중 110명이 스페어 기사들로 대기 중이다. 서울시 버스노동조합에 따르면 스페어 기사들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이다. 그러나 취업규칙 상 스페어 기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스페어 기사들은 승객의 안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스페어 기사들은 근무 시간이 유동적이라 피로가 누적된 상태로 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공영차고지. 사진=김명선 기자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경우 승객의 안전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보통 고정 기사들은 오전 시간대에 5일을 일했다면 그다음에는 오후 시간대를 배정받아 또 5일 정도를 근무한다. 하지만 스페어 기사는 고정 기사가 쉬는 시간대에 맞춰 일한다. 근무 시간이 상당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피로가 누적된 상태로 일을 하게 될 소지가 높다. 현행법을 위반할 가능성도 높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르면 노선버스의 경우 기사는 자정 이후 심야 운행을 한 경우 다음날 출근 시작 시간까지 최소 8시간 이상의 휴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게다가 스페어 기사들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인력 충원이 불가피하지만 그만두는 고정 기사들이 적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주 52시간제 시행을 위한 개선 계획을 제출한 300인 이상 노선버스업 사업장에 오는 9월 말까지 계도 기간을 줬다. 한 운수업체 노조 관계자는 “현재는 1대당 2.3명이 필요하다면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2.5명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년이 연장되면서 다들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신입이 들어왔다고 해서 쫓아낼 수는 없지 않느냐. 스페어 기사들이 많아지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기사에게 전담 차량이 배정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의 기사 A 씨는 “증차를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 지급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위성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부국장은 “현재는 일당제이기 때문에 버스 운행을 많이 하면 수당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스페어 기사들 사이에 ‘돈만 많이 받으면 아무래도 괜찮다’는 인식도 있다. 월급제로 전환하면 이런 경쟁이 조금 사라져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면서 스페어 기사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은 “버스 운수업체가 스페어 기사들의 노동 강도를 줄여주게끔 유도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안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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