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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이보다 더 짠할 수 없는 '네 멋대로 해라'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가슴을 짜르르하게 만드는 그들

2019.06.14(Fri) 15:51:17

[비즈한국] ‘네 멋대로 해라’라는 제목을 들으면 사람마다 떠오르는 게 다를 것이다. 장년층은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가 생각날 테고, 순정만화 팬이라면 나예리 작가의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며 설렜던 시간이 기억날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양동근, 이나영 주연의 ‘네 멋대로 해라’를 생각하며 가슴이 짜르르해질 거다.

 

2002년 여름은 뜨거웠다. 거리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4강 신화를 쓴 한일 월드컵의 열기를 온몸으로 즐겼다. 그 열기가 강하게 남아 있던 7월, ‘네 멋대로 해라’가 시작됐다. 사실 시작은 애매했다.

 

애초 고복수와 전경 역에는 차태현, 송혜교가 유력했으나 스케줄 시기가 맞지 않았다. 아역부터 차근차근 배우 이력을 쌓고 ‘뉴 논스톱’의 ‘구리구리 양동근’으로 이름을 알린 양동근이 고복수 역에 낙점되었지만, 빈말로라도 잘생겼다고 말하기 어려운 양동근이 멜로물에 어울릴까 의구심이 들었다(물론 양동근의 매력은 차고 넘치지만).

 

외모나 직업 등 눈에 보이는 조건이 아닌 오로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서로 사랑하게 된 고복수와 전경. 특히 양동근과 이나영은  팬들에게 존재 자체가 고복수요, 전경으로 통한다. 사진=MBC 홈페이지

 

독특한 미모를 자랑하는 이나영 역시 담배와 팩소주를 즐기는 밴드 키보디스트 전경 역에 어울리나 싶었다. 게다가 전과 2범 소매치기의 불치병이라는 짠내 나지만 올드한 소재도 2002년의 미니시리즈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모든 의구심을 날려버린 건 심장을 쿵쿵 쳐대는 인정옥 작가의 필력과 볼 때마다 숨을 후후 내쉬며 보아야 하는 배우들의 본능적인 연기였다. 

 

‘네 멋대로 해라’는 이성(理性)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드라마다. 전과 2범의 소매치기 고복수가 전경의 돈을 훔친다. 그 돈은 전경이 속한 밴드 보컬의 수술비로 쓰일 돈이다.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한 보컬은 끝내 숨을 거둔다. 전경에게 고복수는 철천지원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에 빠진다. 슬픔에 잠겨 눈물 흘리며 병원으로 향하던 전경을 위해 복수는 몸을 내던져 택시를 잡아주고, 슬그머니 손수건을 준다. 복수가 자신의 돈을 훔친 소매치기이기 알기 전에 전경은 복수의 따스한 마음부터 알아버렸다.

 

삼각관계를 보여주지만 선역과 악역이 구분되거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범죄 수준의 악행이 일어나거나 치고 박고 싸우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전경과 송미래는 모두 고복수를 좋아하지만, 미래는 전경마저 반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고, 복수 또한 미래를 좋아하지만 전경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모두 가슴이 뛰는 그대로 솔직하게 행동한다. 사진=MBC 홈페이지

 

돈에 얽힌 친구의 죽음이라는 전사가 없더라도 고복수와 전경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다. 고등학교 중퇴의 전과 2범 소매치기와 졸부이지만 호텔 사장의 딸. 게다가 복수에겐 조강지처처럼 챙겨주는 여자친구 송미래(공효진)가 있고, 전경에겐 전경의 매력에 흠뻑 빠진 잘생기고 부자인 한동진 기자(이동건)가 대시 중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복수는 드라마 초반부터 자신이 뇌종양으로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도무지 이성적이지 않은 이들의 사랑. 복수를 사랑하게 된 전경의 심정은 전경과 한 기자의 대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나도 한 기자님한테 그런 걸 봤어요. 한 기자님 성격, 얼굴, 직업…. 그런데 그 사람한테선 마음을 봤어요. 성격 좋은 사람은 많이 봤지만 그게 마음은 아닌 거 같아요. 그 사람의 마음은 나를 울려요. 1분 1초도 안 쉬고 내 마음을 울려요. 그 사람은 나한테만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처음 봤어요. 난 최고의 사람을 만나고 있는 거예요.”

 

어릴 적 보육원에 복수를 맡긴 일 때문에 복수가 소매치기가 되었다고 생각해 마음이 아픈 아버지 중섭, 중섭의 주사와 폭력을 견디지 못해 복수를 버리고 도망갔으나 성인이 된 복수가 가져다주는 돈은 마다하지 않는 유순, 복수 때문에 사고로 ​손가락을 ​잃어 이를 아득바득 갈며 복수를 쫓는 박정달 형사. 하나하나 짠하고 사연이 있다. 사진=MBC 홈페이지

 

그 당시엔 전경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복수는 전경이 좋아하는 음악을 좋아해주고, 담배를 피우는 전경을 위해 담배를 대체할 상아 파이프를 선물해 주지만 스트레스 받을 만큼 참지는 말라고 말해주는 남자다.

 

반면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인기가 있는 위치인 한 기자는 음악 담당인 자신의 직업 룰에 어긋날 수 있다는 이유로 음악 관계자에게 전경을 그냥 애인이라고 소개하고, 전경의 음악을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담배를 무는 전경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남자와 자 본 적 있다는 전경을 비난하기도 한다.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남자와 자신의 마음이 더 소중한 남자 중 누구에게 끌릴지는 자명하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보면 가장 상식적이고 사회적인 인물인 한 기자가 드라마에선 가장 매력이 없는 인물일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병이 밝혀지고 난 뒤 전경과 미래의 반응은 둘의 성격만큼이나 사뭇 다르다. 미래는 엄마처럼, 간호사처럼 복수를 대하지만, 전경은 그런 미래에게 “나는 계속 복수 씨에게 애인이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다르디 다른 두 사람의 사랑법을 지켜보는 것도 이 드라마의 묘미다. 사진=드라마 캡처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마음이 매력적인 복수를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그 마음을, 양동근이란 배우는 조용하고 묵직하게 표현해낸다. 양동근이 무심한 듯 툭툭, 쉽게 연기를 잘하는 건 알았지만 ‘네 멋대로 해라’처럼 ‘포텐’이 터진 작품은 드물다. 특히 아버지 중섭(신구)이 복수의 병을 알고 자살했을 때 울부짖던 장면은 나 또한 숨을 후후 몰아쉬며 봐야 할 만큼 눈물겨웠다. 

 

‘네 멋대로 해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짠하다. 연적 관계인 전경마저 반하게 만드는 미래는 시원시원 멋졌고, 밥 먹는 아들 복수 앞에서 클라리넷을 부는 아버지 중섭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고복수와 전경이 따스한 사람들인 만큼 주변 사람들도 따스하다. 소매치기를 그만두고 스턴트맨에 뛰어드는 복수를 돕는 액션스쿨 식구들은 병을 앓는 복수가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전직 레지던트이자 스턴트맨 찬석, 복수와 함께 소매치기를 하던 꼬붕이, 그리고 무술감독 양찬석. 전경이 키보드를 맡는 ‘미완성밴드’​의 보컬 별리, 베이스 기홍, 드러머 정국도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 속 미완성밴드의 음악은 실존 인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을 사용한 것이다. 사진=드라마 캡처

 

복수가 소매치기로 훔친 돈을 받으면서도 무슨 돈인지 묻지 않는 어머니 유순(윤여정),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에게 가슴이 아프면서도 놓지 못하는 전경의 아버지 낙관(조경환), 첫사랑을 잊지 못하며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는 전경의 어머니 인옥(이혜숙), 출생의 비밀을 지닌 채 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전경의 오빠 전강(이세창), 복수와 얽힌 사고로 손가락을 잃고 복수를 쫓아다니는 박정달 형사(김명국) 등 누구 하나 짠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 되면 ‘네멋폐인’들은 무심코 허공에 물어보는 거다. 잘 지내니, 복수야? 경이는 아직도 음악을 하고 있을까? 미래는 고참 간호사가 되어 있겠지? 하고. 부디 그들이 여전히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 정수진은? 

영화와 여행이 좋아 ‘무비위크’ ‘KTX매거진’ 등을 거쳤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유튜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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