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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아, 옛날이여' 그 많던 노량진 공시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동영상 SNS 붐 타고 1타 강사도 인강으로 돌아서…수험생들 "노량진 갈 필요 못 느껴"

2019.06.13(Thu) 16:53:12

[비즈한국] 근 5년 사이 노량진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2015년 10월, 35년 동안 세상과 노량진을 이어주던 육교가 사라졌다. 같은 달, 역 앞 인도를 메웠던 컵밥거리도 사육신공원 쪽으로 이전했다. 2018년 5월, 8년 동안 수많은 고시생의 식사를 책임졌던 고시 식당 ‘고구려’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대형 피시방이 들어왔다. ‘고구려’는 이별의 변에 “수험생이 급격한 감소 등의 이유로 장사를 접게 됐다”고 밝혔다.

 

한때 노량진을 빽빽이 메웠던 수험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터넷 강의가 있으니까 굳이 올 필요가 없잖아. 노량진까지 오는 학생들이 확 줄었지.” 30년째 노량진에서 컵밥 집을 운영 중인 A 씨는 노량진에 찾아오는 학생들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를 인터넷 강의로 꼽았다. “큰 공무원 학원들은 타지에 분점을 내니 학생들이 분산되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 노량진 상징 ‘컵밥거리’ 28곳 중 25곳 문 안 열어

 

6월 12일 오전 10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178번지, 사육신 공원 건너편 컵밥거리. 1번부터 28번까지 노점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문을 연 가게는 3곳. ‘컵밥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문을 열어놓은 노점을 찾기 어려웠다. 점심시간인 12시 30분에 다시 가보니 한 곳이 더 열었다. 그마저도 1시가 되니 다시 3곳으로 줄었다.

 

‘컵밥거리’ 28곳의 가게 중 문을 연 곳은 3곳에 불과했다. 사진=박광주 인턴기자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는 말에 A 씨는 “주중에는 손님도 없고 하니 안 여는 집이 많다”며 “우린 그나마 찾아오는 단골들하고 주말 외국인 손님이 있어 장사한다”고 했다.

 

IMF 구제금융 시기 전부터 노량진에서 주먹밥 노상부터 시작해 자리 잡았다는 터줏대감 B 씨는 위치 변경도 매출하락 요인으로 꼽았다. “노량진 역 바로 앞에서 여기로 옮기고 나서 마을버스 갈아타는 사람이나 수산시장 가는 사람들이 오기에 너무 멀어졌다. 안 그래도 학생 수는 줄었는데 학생 이외에 손님 유치는 더 어려워졌다. 컵밥거리 후반부에 위치한 우리 매대까지는 단골이 오기에도 버겁다”고 말했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으로 확인해보니, 노량진역 1번 출구에서 컵밥거리까지 거리는 초입부 275m부터 멀게는 430m에 달했다.

 

B 씨는 “매출이 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부부 둘이서 새벽 5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운영하는데 한 명 일당 나올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며 “구에서는 신규 사업자를 받지 않는다. 손님이 없어 수익이 안 나는데 한 명씩 장사를 접다 보면 거리가 다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B 씨의 점포 옆에는 벤치 2개가 놓여 있었다. B 씨는 점포 하나가 나간 자리라고 말했다.

 

컵밥 가게가 있던 자리에 벤치가 놓인 모습. 장사를 접은 가게가 많지만 동작구는 신규 사업자를 받지 않는다. 사진=박광주 인턴기자


노량진에서 30년 동안 하숙을 놓았다는 80대 C 씨는 “작년과 재작년은 꽉 찼는데, 올해는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했다. “10개 방 중 3개만 겨우 채웠다”는 것이다. 7년째 노량진에서 마트를 운영 중인 D 씨는 “K 학원이 인터넷 강의를 전격적으로 밀고, 신림동에 분원을 내서 사람들이 많이 빠진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박리다매를 원칙으로 장사하던 D 씨는 “매출에 꽤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약국을 10년째 운영 중인 E 씨는 “시험이 자주 있어서 사람이 더 없는 것 같기도 하다”며 “유동 인구는 확실히 줄었다. 예전만큼 시끌시끌하지 않다”고 거리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공무원 입시학원 바로 근처에서 3년째 복사집을 하고 있는 F 씨는 원래 대학교 근처에서 ‘출력소’를 운영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 사람 머리가 까만 강물처럼 길을 메웠다”고 회상했다. “2017년 10월까지는 사람이 꽤 있었다. 2018년 1월부터 인강(인터넷강의)으로 학생들이 안 오기 시작하더니 매출이 달마다 10%씩 감소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초기 매출에서 80%는 빠졌다”고 보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년 2월 한 학원에 7명이 결핵에 걸려서 그 뒤로 학원에 오는 사람이 더 줄었다고 한다. 노량진을 떠날 생각은 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2017년 11월부터 (가게를) 내놓았는데 아직도 안 나간다”며 “언제든 떠날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미용실을 운영한 지 3년 차인 G 씨는 “작년과 올해 노량진 경기가 확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G​ 씨의 미용실 커트 현금가는 7000원. 서울 시내 미용실 커트 가격이 1만 원선에서 시작하는 걸 고려하면 싼 편이다. 그는 “밥값, 커피값, 커트값 등 물가는 여기가 싸다. 그러나 집값이 부담되다 보니 학생들이 신림동 등지로 나가는 것 같다. 이 앞에 가게도 두 집 나갔다”고 했다. G​ 씨의 가게 건너편엔 ‘임대문의’라고 적힌 A4용지만 문 앞에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8년 동안 수많은 고시생의 식사를 책임졌던 고시 식당 ‘고구려’가 사라진 자리에는 대형 피시방이 들어왔다. 사진=박광주 인턴기자


# 공시생들 “굳이 노량진 올 필요 못 느껴”

 

보건 중등교사 임용을 준비하는 김 아무개 씨는 전북에서 상경했다. 원래 공무원이 꿈은 아니었지만, 간호사보다  안정적이고 규칙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 진로를 바꿨다. 김 씨는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라 노량진에 왔다. 인터넷 강의가 잘돼 있고 가격도 싸기 때문에 다들 잘 오지 않는 것 같다”며 인터넷 강의를 듣는 공시생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에 와 있는 김 씨는 혹독한 서울 집값에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부모님이 한 번에 붙는다고 하면 (경제적인 부분을) 이해해준다고 하셨다. 지방보다 월세가 10만 원은 비싸다”고 말했다.

 

경기도 출신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수학교사가 되고 싶어 노량진에 온 공시생 3년 차 최 아무개는 2년 전까지 일산에서 통학했다. “왔다갔다 3시간이었다. 경의중앙선 탔다가 1호선 탔다가. 수험생활에 너무 무리인 것 같아서 노량진에 방을 구했다”고 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인 아주 작은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수요는 줄지만 임대료는 그대로여서 장사를 접는 가게가 늘고 있다. 사진=박광주 인턴기자


강원도 평창에서 올라온 경찰 공시생 유 아무개 씨는 “노량진 3년 차인데 사람은 좀 줄어든 것 같다. 강의는 인터넷 강의로 보는데 체력시험 준비 때문에 노량진 헬스장에 온다”며 “경찰 공무원 준비생들은 헬스장 때문에 노량진에 오는 경우가 꽤 많을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줄어도 주변에 월세나 보증금이 내려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 간혹 공실이 되면 겨우겨우 가격을 낮추는 경우가 가끔 있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은평구에 사는 경찰 공시생 박 아무개 씨도 노량진을 오가는 3년 중 첫 1년만 현장 강의를 들었다. 그는 “현장에서 들을 때는 좋은 자리 가려면 미리 자리를 맡아야 했다. 시간 쓰고 또 일찍 일어나야 하고 새벽같이 와야 하니까 부담스러워서 인터넷 강의로 갈아탔다”고 말했다.

 

대전에서 올라온 국어 교사 지망생 송 아무개 씨는 “1타 강사가 직강만을 고집하다 최근 인터넷 강의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 강의에 오는 인원이 꽤 줄었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 들어 공무원을 많이 뽑는 추세이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특수, 보건 등 비교과 인원이 늘어났을 뿐 주요 과목 교육은 파이가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무원 수가 늘어도 임용 준비생이 많은 주요 교과 임용은 여전히 경쟁이 치열하고 자리는 없다는 것이다.

 

최 아무개 씨는 1년째 노량진에서 경찰시험을 공부하는 대전 토박이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45만 원인 원룸에 산다. 방은 좁은 편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직접 밥을 해먹은 적이 없다. “누가 주변에서 밥을 해먹었다는 얘기도 들은 적 없다. 대부분 식권을 대량구매 하는 것 같다”며 노량진에서 식습관도 꽤나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며 “합격해서 대전에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노량진의 스터디카페에서 인강을 시청하는 수험생들. 사진=박광주 인턴기자


노량진에 굳이 갈 필요를 못 느꼈다는 공무원 시험 합격자들도 많았다. 장효은 주무관(가명​·​25)​은 1년 전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노량진에 보내주신다고 했다. 하지만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인강’이 있어 굳이 노량진에 갈 필요를 못 느꼈다는 것. “인터넷 강의는 여러 번 들을 수 있고 아무 데서나 들을 수도 있다. 배속(1.25~2배 속도로 재생)이 되니까 시간도 절약됐다”며 “인강이 없었으면 몰라도 굳이 지방에서 노량진까지 현장 강의를 들으러 갈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2년 전, 7급 지방직 시험에 합격한 조기환 주사보(가명·​28)​도 노량진에 간 적이 없다. 그는 “치열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아서 지방에서 인강만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 강의는 좋은 자리를 위해 일찍 학원에 가고 치열하게 하는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런 분위기에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며 노량진 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광진구에 사는 박진영 씨(가명​·​23)​는 서울시 공무원 7급, 9급을 동시에 준비 중이다.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노량진을 가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공부 환경을 꼽았다. “공부 환경 때문에 가는 건데 나는 집이나 도서관 다니는 게 더 낫다”며 “인강에서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소위 1타 강사를 들을 수 있는데 굳이 생활패턴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했다.​ 

박광주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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