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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작거나 혹은 아주 크거나, 우주는 '극단적'이야

외계행성·블랙홀 모두 중간은 없어…최근 중간 질량 블랙홀 흔적 발견

2019.06.12(Wed) 13:29:03

[비즈한국] 식당이나 카페에서 난감할 때가 있다. 1인분이나 스몰(Small) 사이즈를 시키자니 양이 부족할 것 같고, 2인분이나 라지(Large) 사이즈를 시키면 음식이 많이 남을 것 같다. 딱 그 중간 정도 메뉴가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 우주 역시 중간이 없이 극단적이다.

 

우리는 항상 자연은 연속적이라고 생각한다. 1이 있고 100이 있다면 1과 100 사이의 다양한 경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자연은 연속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1과 100이 있지만 그 사이 10이나 50이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

 

우주는 너무 무겁거나 가볍거나 극단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중간 적당하고 애매한 경우가 흔치 않다.

 

케플러 우주 망원경(Kepler Space Telescope)은 2009년부터 우주에 올라 태양계 바깥 다른 별 주변을 맴도는 외계행성의 존재를 찾아 나섰다. 별에 비해 훨씬 사이즈가 작은 외계행성이 우연히 별 앞을 지나면서 별을 아주 조금 가리면 별의 밝기가 아주 미세하게 어두워지는 현상을 목격한다. 행성은 일정한 주기로 별 곁을 맴돌기 때문에 이러한 미세한 밝기 변화가 주기적으로 벌어진다면 그 곁에 행성이 돌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행성의 크기에 따라서 별을 가리는 정도가 달라진다. 목성처럼 거대한 대두 행성은 조금 더 많이 별을 가리고 밝기 변화 폭이 더 커진다. 반면 수성처럼 크기가 작은 소두 행성은 별을 아주 조금만 가리기 때문에 밝기 변화 폭이 아주 작다. 이 차이를 활용해 천문학자들은 태양계 바깥 다른 별 주변에 행성이 존재하는지뿐 아니라 그 행성의 크기까지 꽤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다. 

 

아쉽게도 케플러 우주 망원경은 기기의 잦은 고장과 연료 고갈로 인해 2018년 11월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10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케플러는 손바닥만 한 작은 하늘에서 거의 4000개 가까운 외계행성과 그 후보 천체들을 발견했다. 현재는 그 바통을 이어받은 케플러의 여동생 탐사선 테스(TESS: Transiting Exoplanet Survey Satellite)가 2018년 4월부터 우주에 올라 케플러와 동일한 방법으로 더 가까운 우주에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외계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들을 비교하면서 천문학자들이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흥미롭게도 외계행성들은 크기가 연속적이지 않다. 지구보다 살짝 작거나 지구 정도 크기를 갖고 있는 작은 행성들과 지구보다 네 배 이상 훨씬 큰 아주 거대한 행성들은 많이 발견된다. 하지만 그 사이 지구의 1.5배에서 2배 정도에 해당하는, 너무 작지도 않고 너무 크지도 않은 중간 크기의 행성들은 발견되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은 이 간극을 ‘풀톤 간극(Fulton Gap)’이라고 한다.[1]

 

탐사를 통해 확인된 외계행성들 100개의 크기를 비교한 그래프. 가로축은 지구 지름에 대한 외계행성의 반지름을 의미하며 세로축은 발견된 개수 비율을 나타낸다. 지구 지름의 1.5배에서 2배 사이에서 발견된 외계행성의 수가 확연히 적다.

 

최근 천문학자들은 데이터를 보내오기 시작한 테스의 관측 결과를 분석해 약 53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별 HD 21749 주변에서 지구 지름의 2.6배 크기의 외계행성을 새로 발견했다. 완벽하게 풀톤 간극을 메워줄 미디엄 사이즈의 행성은 아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디엄 사이즈 범위의 경계에 있는 ‘미니-해왕성(Mini-Neptune)’급 행성으로 볼 수 있다.[2] 

 

테스가 지금까지 관측해서 발견한 280개의 외계행성 후보 가운데 최종 검증된 세 개의 행성. 가운데 아래에 있는 파란 행성이 미니 해왕성급 사이즈에 해당하는 HD 21749 b 행성이다. 사진=NASA/MIT/TESS

 

대체 왜 외계행성의 메뉴판에는 중간이 없을까? 아마도 우주 어딘가 다른 외계행성에 살아가고 있을 외계 생명체들 역시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처럼 지구와 크기가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간 더 큰 암석 행성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별 주변에 행성이 만들어질 때 그 행성의 크기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별 주변에서 행성이 빚어지는 환경을 구현하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너무 극단적인 외계행성들의 비밀을 해결하려는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1.5배에서 2배 정도인 애매한 크기의 행성들은 별 곁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빚어진다고 추측한다. 별에 가까울수록 강한 별빛에 노출되면서 행성의 온도가 뜨거워진다. 온도가 올라가면 그 행성을 감싸고 있는 대기권 속 기체 분자들의 움직임도 빨라진다. 아주 크지 않은 이런 애매한 크기의 행성들은 중력이 그리 강하지 않기에 빠르게 싸돌아다니는 기체 분자를 자신의 중력으로 오래 가둬둘 수 없다. 그 결과 크기가 애매한 외계행성들은 빠르게 대기권을 잃어버리면서 ‘연마’되어 크기가 더 작은 행성으로 강제 다이어트를 하게 될 수 있다. 

 

별에서 멀리 떨어진 경우에도 이런 애매한 크기의 행성들은 빠르게 다이어트를 하면서 크기가 줄어들 수도 있다. 행성 자체가 바깥 우주 공간으로 자신의 열을 방출하면서 효율적으로 빠르게 식어간다. 이 경우 행성의 외곽 대기도 함께 우주 공간으로 새어나가면서 행성은 빠르게 더 작은 크기의 행성으로 ‘연마’되어 간다. 이러한 과정을 ‘핵에 의한 질량 손실(core-powered mass-loss)’이라고 한다.[3] 

 

중심 별에 너무 가까이 붙어서 도는 바람에 빠른 속도로 질량을 잃어가는 외계행성 HD 209458b의 상상도. 이 행성은 원래 질량이 지구의 200배에 달하는 덩치 큰 행성이지만 현재 뜨거운 별빛을 받아 빠르게 외곽 물질을 잃고 있다. 그림=NASA/European Space Agency/Alfred Vidal-Madjar(Institut d'Astrophysique de Paris, CNRS)


만약 우주 어딘가 이런 애매한 크기의 외계행성들이 존재한다면 과연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최근까지 이 중간 크기 행성들은 아마 주로 두꺼운 대기로 뒤덮인 암석 행성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미니-해왕성’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아주 작게 압축된 차가운 가스와 얼음이 뭉쳐 있는 행성일 것이라는 새로운 추측이 제기되었다. 

 

별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항성계 외곽에서 행성이 태어난다면 많은 양의 물과 얼음이 함께 모여 행성을 이루게 된다. 30년 전 물리학자들은 행성이 빚어질 때 그 아기 행성의 중심부처럼 아주 강한 압력과 높은 밀도가 주어지면 굉장히 극단적이고 독특한 성질의 얼음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 물리학자들은 직접 실험을 통해 ‘초이온 물 얼음(Superionic water ice)’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얼음은 마치 지구 땅 속 깊은 곳에 있는 맨틀처럼 아주 높은 온도와 아주 단단한 성질을 갖고 있는 규산염 광물과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전설로만 전해지던 중간 크기 행성을 구성할 것으로 추정되는 신비한 물질의 존재가 증명된 것이다.[4][5]

 

거대한 엑스선 레이저 실험 장비를 통해 물을 아주 강한 압력으로 압축하면서 고온 고압의 초이온 물 얼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실험 장비 모습. 사진=Millot, Coppari (LLNL) - Picture by E Kowaluk


이 초이온 물 얼음은 전기가 흐를 수 있기 때문에 행성을 만들 때 그 행성의 자기장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기 행성의 씨앗이 주변 물질을 끌어 모으며 안정적으로 크기를 불려 나가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장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실제로 해왕성이나 천왕성과 같은 거대한 가스 행성의 경우 표면 아래 약 8000km 깊이로 들어가면 본격적으로 초이온 물 얼음층이 시작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중간 크기 행성들이 존재한다면 주로 이 이상한 물질로 뭉쳐 있는 거대 가스 행성의 초기 단계에 해당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과연 중간 크기 행성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애초에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미디엄 사이즈로 살아가는 기간이 너무 짧아서 쉽게 발견되지 못하는 것일까? 

 

중간이 없는 것은 외계행성뿐 아니라 블랙홀도 마찬가지다. 블랙홀은 외계행성보다도 훨씬 더 극단적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은 대부분 태양의 수십 배 정도에 해당하는 (천문학적으로) 아담한 크기의 항성 블랙홀(Stellar Blackhole)과 태양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하게 우량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SMBH: Super Massive Blackhole)뿐이다. 

 

항성 블랙홀은 주로 무거운 별이 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남기는 별의 주검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별의 중심에 딱딱하게 농축된 무거운 핵융합의 결과물이다. 가끔 우리 은하 안에서 홀로 떠돌아다니는 모습으로 발견되는 항성 블랙홀은 보통 과거 다른 별과 함께 짝을 이루고 쌍성으로 살아가다가 근처를 지나가는 다른 별의 중력에 의해 짝과 헤어지고 우주 공간으로 쫓겨난 것으로 추측된다. 최근에는 라이고(LIGO) 검출기를 통해 태양 질량의 약 10배에서 30배에 해당하는 항성 블랙홀들의 충돌 현장도 많이 발견된다. 

 

반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괴물이다. 최근 천문학자들이 지구 전역의 전파 망원경을 모두 동원해 관측에 성공한 블랙홀도 처녀자리 은하단의 M87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었다.[6] 

 

초거대 질량 블랙홀과 이들이 살고 있는 은하 사이에는 아주 놀라운 관계가 있다. 보통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자신이 살고 있는 은하의 전체 질량에 비해 약 1000배 가볍다. 그런데 둘은 거의 완벽하게 비례 관계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질량을 비롯한 은하의 다양한 성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빅뱅 직후 만들어진 초거대 질량 블랙홀들이 초기 우주에서 은하들이 태어나는 씨앗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7]

 

그런데 흥미롭게도 항성 블랙홀과 초거대 질량 블랙홀 사이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IMBH: Intermediate Mass Blackhole)은 잘 발견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발견된 블랙홀들의 질량은 너무 극단적이다. 태양의 20~30배 정도 무겁거나 혹은 태양의 수백만 배 이상 무거운 경우밖에 없다. 그 사이에 해당하는 태양 질량의 천 배, 만 배 정도 질량을 가진 블랙홀은 찾기 어렵다. 

 

외계행성의 경우가 마치 숏 사이즈와 벤티 사이즈만 파는 스타벅스라면, 블랙홀의 경우는 커피를 소주잔 아니면 유조선 탱크에만 담아서 파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항성 블랙홀과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면 그 중간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만약 작은 블랙홀들이 모여 거대한 블랙홀로 성장하는 것이 맞다면 분명 중간 과정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이 있어야 할 것이다. 중간 질량 블랙홀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천문학자들은 육중한 은하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는 것처럼 그보다 좀 더 규모가 작은 왜소은하나 구상 성단 중심에 중간 질량 블랙홀이 숨어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중심에 중간 질량 블랙홀이 있다면 그 곁을 맴도는 성단이나 왜소은하 속 별들의 움직임에 영향을 준다. 중심 근처 별들이 얼마나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는지를 측정하면 그 중심에 별들의 운동을 관장하는 ‘괴물’이 발휘하는 중력의 세기를 추측할 수 있다. 또는 중간 질량 블랙홀이 방출하는 강한 엑스선 신호의 흔적을 추적해 블랙홀의 존재를 추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실제로 최근 몇몇 왜소은하와 구상 성단 중심에서 중간 질량 블랙홀 후보들이 발견되고 있다. 

 

2017년 전파 망원경 관측을 통해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에서 약 200 광년 떨어진 지점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가스 구름 덩어리 CO–0.40–0.22 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천문학자들은 확연하게 빠른 가스 구름의 움직임을 통해 이곳에 태양 질량의 약 10만 배에 달하는 또 다른 중간 질량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Tomoharu Oka (Keio University)


2004년 천문학자들은 처음으로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Sagittarius A*) 초거대 질량 블랙홀 곁을 맴도는 것으로 추정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의 후보 천체 GCIRS 13E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천문학자들은 궤도와 속도를 분석해 이 천체가 중심에 태양 질량의 1300배 정도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작은 성단 조각이라고 추측했다.[8]

 

이후 우리 은하 중심부 근처뿐 아니라 바깥의 다른 외부 은하들에서도 중간 질량 블랙홀로 의심되는 천체들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큰곰자리 방향으로 약 12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거대 은하 M82에서 발견된 흥미로운 엑스선 방출원 M82 X-1과 지구에서 약 3억 광년 거리에 떨어진 은하 ESO 243-39에서 발견된 엑스선 방출원 HLX-1은 각각 태양 질량의 1000배, 그리고 2만 배 정도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의 양상으로 추정된다.[9][10]

 

천문학자들은 NASA의 로시 엑스선 타이밍 탐사선 (RXTE, Rossi X-ray Timing Explorer)를 통해 M82 X-1 블랙홀 주변에서 빠르게 돌면서 움직이고 있는 물질의 시그널을 관측했다. 이 움직임을 통해 그 중심에 있는 블랙홀의 질량이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냥개자리 방향으로 약 1400만 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왜소은하 NGC 4395의 모습. 천문학자들은 이 안에 숨어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을 발견했다. 사진=Mount Lemmon Observatory


바로 어제 11일,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붙잡혀 그 주변을 맴도는 가스 구름을 이용해 아주 작은 왜소은하 NGC 4395의 중심부에서 태양 질량의 약 1만 배로 추정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11]

 

블랙홀은 강한 중력으로 그 곁에 빠른 속도로 맴도는 물질들의 원반을 형성한다. 이를 강착 원반(Accretion Disk)이라고 한다. 이 강착 원반은 아주 높은 온도로 달궈져 있다. 이 뜨거운 강착 원반에서 방출되는 뜨거운 열은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강착 원반보다 바깥에 퍼져 떠돌고 있는 가스 구름으로 전달된다. 

 

블랙홀 주변 두꺼운 먼지 토러스 안쪽에 형성되어 있는 넓은 선 영역의 모습을 그린 그림. 그림=Peter Z. Harrington


은하 중심의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에서 새어나온 빛은 그보다 약간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주변 가스 물질에 전달된다. 블랙홀에 아주 가까이 모여 있는 가스 물질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더 넓게 퍼진 스펙트럼을 그린다. 반면 블랙홀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스 물질은 더 느린 속도로 움직이며 비교적 좁게 퍼진 스펙트럼을 그린다. 이 영역은 좁은 선 영역(NLR, Narrow Line Region)이라고 한다. 출처=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ad184

 

뜨거운 강착 원반의 열로 인해 주변 가스 구름 속 수소 원자의 전자들은 원자핵에서 떨어져 나오며 이온화를 한다. 이후 열이 지나가고 나면 떨어져 나갔던 수소 원자의 전자는 다시 원자핵에 결합하면서 특정한 세기의 빛을 방출한다.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에서 아주 살짝 떨어진 채 빠른 속도로 맴돌며 넓게 퍼진 방출선의 스펙트럼을 보이는 이러한 영역을 블랙홀의 넓은 선 영역(BLR: Broad Line Region)이라고 한다. 

 

천문학자들은 블랙홀 바로 곁 강착 원반에서 퍼져나간 빛이 그 주변 넓은 선 영역의 가스 구름을 때리면서 특정한 빛이 방출될 때까지 지연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빛이 퍼져나가는 속도는 일정하기 때문에 그 지연 시간을 재면 넓은 선 영역의 가스 구름이 블랙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거리를 잴 수 있다. 

 

블랙홀의 강착 원반에서 바로 날아오는 빛과 강착 원반 주변 가스 구름을 때리고 반사하고 나서 날아오는 빛은 지구로 도착하는데 약간의 시차를 갖는다. 위 그림 오른쪽 아래 그래프에 나타난 시차를 측정해 강착 원반에서 그 주변 가스 구름까지 거리를 잴 수 있다. 사진=Catherine Grier (Penn State)/SDSS collaboration


천문학자들이 이번에 관측한 NGC 4395의 경우 그 중심의 블랙홀 강착 원반에서 출발한 빛이 그 주변 가스 구름을 때리기까지 약 83분이 걸리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즉 이번에 신호가 검출된 블랙홀 주변 넓은 선 영역의 가스 구름은 블랙홀에서 약 83광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 태양에서 토성까지 거리보다 살짝 먼 거리에 해당한다. 

 

천문학자들은 가스 구름이 블랙홀 주변을 돌고 있는 거리와 가스 구름의 속도를 비교해 가스 구름을 중심에서 붙잡고 있는 미지의 질량 덩어리의 중력 세기를 추정했다. 그 결과 천문학자들은 왜소은하 NGC 4395의 중심에 태양 질량의 약 1만 배에 해당하는 중간 질량 블랙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블랙홀 강착 원반에서 출발한 빛이 그 주변 가스 구름을 때리며 만드는 방출선의 흔적을 추적해 측정한 블랙홀 가운데 지금껏 질량이 가장 가벼운 블랙홀이다.[12]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측정된 왜소은하 NGC 4395는 크기도 질량도 작을 뿐 아니라 그 중심에 뚜렷하게 물질이 모여 있는 중심부 벌지(Bulge)가 없는 은하라는 점이다. 사실 초거대 질량 블랙홀 씨앗에서 은하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하는 기존 가설에 따르면 중심의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에 의해 물질이 모이고 은하가 규모를 갖춰가면서 자연스럽게 은하 중심부에는 뚱뚱하게 물질이 많이 모여 있는 벌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추측한다. 

 

또 중력이 약한 왜소한 은하들은 덩치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초신성 폭발과 같은 현상으로 은하 바깥으로 벗어나는 물질을 충분히 붙잡아 놓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일반적인 은하와는 다른 양상으로 진화한다고 추측한다. 따라서 이런 벌지가 없는(Bulgeless) 왜소한 은하들은 앞서 소개했던 중심의 블랙홀과 은하의 질량 사이 관계가 약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13][14]

 

일반적인 은하들의 중심 벌지의 질량과 그 안에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래프. 더 무거운 은하는 더 무거운 블랙홀을 품고 있다. 보통 은하 중심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그 주변 별들이 얼마나 빠르게 돌고 있는지를 의미하는 속도분산으로 계산한다. 그래서 이러한 관계를 은하의 질량과 속도분산 관계(M-sigma relation)라고 한다. 사진=K. Cordes & S. Brown (STScI)


하지만 놀랍게도 이번에 계산된 NGC 4395는 기존의 평범하고 덩치 큰 다른 은하들과 거의 비슷하게 약 1000배 비율로 중심 블랙홀과 은하 질량이 관계를 잘 따르고 있다. 덩치 큰 은하들에서 점점 질량을 줄여가면서 쭉 연장해나가면 왜소은하들은 그 연장선 바깥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기존 예상과 달리 보통 은하의 미니어처처럼 그저 크기만 작고 비슷한 관계다. 

 

이처럼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은 애매한 중간 크기의 천체를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너무 작은 메뉴와 너무 큰 메뉴가 과연 별개의 진화 과정으로 만들어지는 구분되는(distinct) 현상인지 아니면 아주 작은 메뉴가 모이고 성장하면서 거대한 메뉴로 완성되는 연장선상에 있는, 규모만 다른 동일한 현상인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 크기의 외계행성과 중간 질량 블랙홀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우주의 끊어진 고리(Missing Link)를 이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별 주변 아기 행성들이 어떻게 빚어지고 성장했는지 태양계의 유년기를 추적할 수 있다. 그리고 태초의 우주에서 만들어진 블랙홀 씨앗에서 어떻게 은하가 발아하고 모습을 갖추어왔는지 우주 전체의 유년기를 추적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스몰 사이즈와 라지 사이즈 사이의 미싱 링크를 채워가며 우주 레스토랑의 비밀 레시피를 파헤치고 있다. 

 

[1]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3881/aa80eb/meta

[2]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2041-8213/ab12ed/meta

[3]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487/1/24/5484904

[4]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9-1114-6

[5] https://journals.aps.org/prl/abstract/10.1103/PhysRevLett.60.2284

[6] https://iopscience.iop.org/journal/2041-8205/page/Focus_on_EHT 

[7]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6/312840/meta 

[8] https://www.aanda.org/articles/aa/abs/2004/31/aa0147-03/aa0147-03.html

[9]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3710

[10] https://science.sciencemag.org/content/337/6094/554

[11]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790-3

[1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0-019-0815-y

[13]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763/2/76/meta

[14]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24999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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