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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세 현장] 새 맥 프로가 전문가에게 '700만원대지만 싸다'

8k 영상 원본 3개 동시에 편집…반도체 성능 뛰어넘는 진정한 워크스테이션 설계

2019.06.04(Tue) 16:27:48

[비즈한국] ‘WWDC 2019’​를 통해 맥 프로가 발표됐다. 이전 세대 맥 프로가 공개된 것이 2013년 WWDC였으니 딱 6년 만이다. 새 맥 프로는 기대 이상의 성능과 함께 돌아왔다. 최대 28개 코어, 56개 쓰레드를 품었고, 괴물 같은 그래픽카드를 두 개 꽂아 56테라플롭스(Tflops)를 연산할 수 있다. 영상업계의 숙제였던 8k 해상도 비디오를 원본으로 3개 올려놓고 동시에 편집할 수 있는 괴물 컴퓨터다. 5999달러(709만 원)부터 시작하는 새 맥 프로의 가격에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 맥 프로는 그런 컴퓨터여야 하기 때문이다.

 

맥 프로는 초고해상도 영상, 사진, 음원 등을 다루는 전문가를 만족시킬 수 있는 최고의 워크스테이션을 지향하고 있다. 사진=최호섭 제공

 

돌이켜보면 2013년의 맥 프로는 애플에게, 또 워크스테이션 업계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던 것 같다. 반도체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애플은 더 이상 크기로 성능을 가늠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갖고 있는 모든 설계 기술을 쏟아 아주 자그마한 맥 프로를 내놓았다.

 

둥그런 원통 모양의 2013년 맥 프로는 성능과 디자인 모든 면에서 빠지는 데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맥 프로는 프로세서도, 그래픽카드도 바뀌지 않은 채 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확장성과 발열이 문제로 꼽혔다. 애플은 확장성에 대해서 썬더볼트를 이용한 외장 기기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전문가 시장에서는 필요에 따라 CPU나 그래픽카드를 바꿔 쓰는 환경을 원했다. 꽉 차 있는 구조 역시 2013년의 칩 설계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이후의 CPU나 GPU를 감당하는 게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맥 프로 2013은 기대만큼이나 아쉬운 점이 많았고 워크스테이션 디자인에 대해 모두가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애플은 2017년 맥 프로에 대한 변화가 있을 것을 예고했고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 2019년 6월, 완전히 새로운 맥 프로를 공개했다. 

 

그동안 맥 프로가 필요한 전문가들에게는 불만이라기보다 불안으로 이어지는 시간이었던 게 사실이다. 2017년 말 출시된 아이맥 프로는 그 대안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맥 프로와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기기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맥 프로에 이 정도 성능이라면 맥 프로에는 더 큰 것을 기대할 수 있겠다는 희망도 섞여 있었다.

 

애플은 보란 듯이 새로운 맥 프로를 발표했다. 첫 인상은 성능뿐 아니라 설계 자체가 워크스테이션 시장의 요구 사항을 잘 읽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제품을 구석구석 본 뒤에 드는 생각은 ‘역시 컴퓨터 설계도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은 원통 대신 여유 있는 크기에 타워형 데스크톱으로 방향을 잡았고, 제품 앞뒤로는 냉각을 위해 큼직한 구멍들을 뚫었다. 제품을 구성하는 프레임은 묵직하고 탄탄하게 설계됐다. 제품 위에는 이동할 때 쓰는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손잡이는 단순히 케이스 위에 붙인 것이 아니라 아래까지 쭈욱 연결되는 기본 뼈대다. 이를 기반으로 메인보드와 전원공급 장치 등 살이 붙는 구조다.

 

앞뒤의 구멍들이 눈에 띈다. 미적으로는 호불호가 있는 분위기지만 기능적으로는 필요한 설계다. 이 홀의 모양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안쪽에도 구멍이 엇갈려 나 있다. 공기 흐름 때문으로 추정된다. 맥 프로에는 3개의 쿨러와 구석 구석에서 열을 뽑아내는 히트싱크가 연결되어 있다. 열을 잡는 것이 곧 성능과 연결된다는 것은 이전 세대의 맥 프로에서 증명된 바 있다. 맥 프로의 모든 디자인은 성능을 위해서 꾸려지는 것이 맞다.

 

과거 원통 모양의 맥 프로가 쓰레기통이라는 별명을 얻었듯, 이번 맥 프로 역시 발표 직후 치즈용 채칼과 닮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사진=최호섭 제공

 

내부의 뼈대가 되는 인텔 제온 프로세서는 몇 년 새 크게 진화했다. 이 제온 프로세서는 CPU 한 개에 최소 8개부터 최대 28개 코어가 들어간다. 이 칩의 가장 큰 특징은 코어와 코어 사이에 병목 현상이나 지연이 생기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 그물처럼 코어와 코어 사이에 모든 방향으로 데이터를 오가는 통로를 만들어둬서 여러 코어를 쓰는 작업에서 효율이 높아지는 설계 방식이다.

 

메모리는 6채널로 연결된다. 메모리 6개가 한 조로 묶여서 6배의 속도를 낸다는 의미다. 6개씩 2조로 총 12개 메모리를 꽂아 총 1.5테라바이트(TB), 즉 1500기가바이트(GB)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이를 원활하게 버틸 수 있도록 CPU에만 최대 300W의 전력이 공급된다. 최상위 모델인 제온 플래티넘 8180의 전력 소비량이 205W다. 애플은 이보다 50%가량 더 넉넉한 전원을 공급하는 셈이다. 이는 향후 업그레이드뿐 아니라 현재 제품에 대한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그래픽 설계는 더 기가 막힌다. GPU는 그래픽 작업뿐 아니라 머신러닝이나 동영상 편집 등에 두루 쓰인다. 고성능이 가장 요구되는 부분이다. 일단 넘어야 할 장애물은 전력 공급이다. 그래픽카드가 연결되는 PCI 익스프레스 슬롯으로는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대개 전선을 따로 꽂아 전력을 공급한다. 하지만 맥 프로의 내부에는 선이 없다. 모두 모듈식으로 꽂아서 만드는 것이 맥 프로의 기본 설계 기조이기 때문이다.

 

다시 타워 형태로 돌아온 맥 프로는 향후 확장성 면에서 충분히 전문가들을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최호섭 제공

 

애플은 이를 풀어내기 위해 슬롯 구조를 바꿨다. 애플이 MPX라고 부르는 맥 프로 전용 그래픽 카드 설계에 맞춘 것이다. 한 마디로 그래픽카드를 꽂는 PCI 익스프레스 슬롯을 두 개로 나누어 데이터와 전력을 따로 넣는 것이다. 애플은 이를 더블 와이드 슬롯이라고 부른다. 데이터를 주고받는 PCI 슬롯은 최대 75W의 전력을 공급할 수 있고, 추가 슬롯은 475W의 강력한 전력을 공급한다. 무려 550W다. 애플은 500W까지 그래픽카드에 할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물론 현재 AMD의 베가 II 그래픽카드도 이 전력을 모두 쓰지는 않는다. 다만 넉넉한 전원 공급은 확장성, 그리고 안정성과 연결된다.

 

전원 공급장치는 1300W 제품이 쓰인다. CPU에 300W, 더블 와이드 그래픽카드 슬롯 두 개에 각각 500W씩 넣어 1000W가 들어가는 것을 염두에 둔 설계다. 이를 통해 두 개의 그래픽카드 MPX 모듈에 듀얼 코어 GPU인 베가 프로 듀오 II 카드를 꽂으면 56.8TFlops를 처리한다.

 

애플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8k 동영상을 매끄럽게 편집, 재생하기 위해 별도의 보조 프로세서를 더했다. ‘애프터 버너(Afterburner)’라고 부르는 물건이다. 동영상만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한 전용 칩, 즉 FCPGA를 넣은 것으로 이 카드를 꽂으면 맥 프로는 편집기에 RAW 파일로 찍은 8k 동영상을 동시에 3개 올려도 HD 영상을 편집하는 것처럼 매끄럽게 작동한다. 

 

그동안은 8k 영상을 직접 편집할 수 없어 크기를 작게 만든 ‘프록시(proxy)’ 파일로 편집하고 이후에 본래 파일을 렌더링, 인코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맥 프로는 그냥 원본으로 편집할 수 있다. 작업 속도는 물론 효율도 좋아진다. 애플은 ‘프록시 작업은 안녕(Proxy Workflow RIP)’이라는 우스갯소리로 맥 프로의 성능을 설명한다.

 

새 맥 프로가 나오기 전까지 8k 해상도 동영상은 번거로운 프록시 작업으로만 편집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최호섭 제공

 

맥 프로는 그야말로 엄청난 성능을 낸다. 100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 트랙을 하나로 뭉쳐서 작업하기도 하고, 중형 카메라로 찍어내는 원본 사진을 스마트폰 사진 다루듯 편집한다. 영상이나 그래픽은 말할 것도 없다. 컴퓨터 성능이 창의성에 발목을 잡지 않겠다는 맥 프로의 기본이 2019년의 방식으로 구현된 기기다. 가격이 높지만 비싸다고 말할 수도 없다. 벌써부터 이 제품이 필요한 이들의 반응은 ‘비싸지만 싸다’는 쪽으로 쏠린다.

 

사실 맥 프로의 의미는 가격에 관계없이 맥OS의 환경을 그대로 쓰면서 현재 기술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컴퓨터가 필요한 이들을 위한 제품에 있다. 윈도우와 달리 맥OS를 쓸 수 있는 컴퓨터는 애플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그 요구를 채워주지 못했던 것이 시장의 아쉬움을 샀을 뿐이다.

 

맥 프로는 조금 좋은 개인용 컴퓨터가 아니라 이를 훌쩍 뛰어넘는 본격적인 워크스테이션이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넘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만 그건 문제가 아니다. 맥 프로의 시장은 명확하다. 최고의 컴퓨터는 고성능 반도체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반도체가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시스템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맥 프로는 보기만 해도 컴퓨터 설계에 대한 지적 욕구를 채워주기에 충분한 제품이다. 아직도 지나치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격과 효율을 중심으로 다소 밋밋해지는 컴퓨터 시장에서 적어도 이런 컴퓨터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산호세=최호섭 IT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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