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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신림동 강간미수' 여성 1인가구 생활패턴까지 바꾼다

많은 여성들 "나도 겪었다"…음식배달은 집앞, 택배는 편의점, 집 구할 땐 치안 1순위

2019.05.31(Fri) 16:06:03

[비즈한국] “새벽에 모르는 이가 현관문 도어락을 수차례 누르는 소릴 들었다. 눈이 번쩍 뜨이면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 무서웠다. 경찰에 신고할 힘이 나질 않았다. 그는 위층에 사는 집 현관문도 열려고 했다. 윗집은 경찰에 신고했다. 용의자는 사라진 뒤였다. 현관문이 열렸다면 끔찍한 일이 생겼을 것이다.”

 

5월 28일 소셜미디어에 ‘신림동 강간미수’란 제목으로 올라온 CCTV(폐쇄 회로 텔레비전) 영상을 본 박 아무개 씨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CCTV 영상엔 한 남성이 한 여성의 집에 침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주변을 서성이는 장면이 담겨 있다. 박 씨는 “CCTV 영상을 본 후, ‘내가 겪었던 일이 밖에선 저런 상황이었을까’란 생각을 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라 섬뜩했다”고 말했다.​

 

 

​‘주거침입 성범죄’는 최근 4년간 총 1310건 발생했다. 하루 한 건꼴이다.​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 ‘안심귀가스카우트’ 대원들이 늦은 시간 귀가하는 여성과 집까지 동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난 29일 한 누리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신림동 강간미수범을 강력하게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렸다. 31일 오후 2시 기준 동의자 수는 7만 8000명을 넘었다. 청원인은 게시판에 “단 1초만 늦었어도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라며 “혼자 사는 이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달라”고 밝혔다.

 

# ‘주거침입 성범죄’ 최근 4년간 총 1310건…하루 한 건꼴

 

지난해 10월 11일 국정감사에서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2014~2017년)간 주거침입 범죄는 총 7만 1868건이었다. ‘주거침입죄’가 4만 23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야간주거침입절도’가 2만 8216건으로 뒤를 이었다. 

 

‘주거침입 성범죄’도 최근 4년간 총 1310건이나 발생했다. 하루 한 건꼴로 발생한 셈이다. 이 가운데 ‘주거침입 강제 추행’이 528건(40.3%)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주거침입 강간’ 368건(28%), ‘주거침입 강간 등’ 364건(27.8%), ‘주거침입 유사 강간’ 50건(3.8%)순이었다. 

 

가해자 99.8%는 남성이었다. 주거침입을 시도했어도 경찰에 붙잡히지 않았다면 통계에 반영되지 않았을 터. ‘비즈한국’ 취재 결과 모르는 이의 주거침입 시도를 집 안에서 경험한 여성이 적지 않았다.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에 많은 여성들이 분노하고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시 강서구 공항동에서 자취 중인 김 아무개 씨는 “현재 혼자 사는 집 현관문은 완전히 힘줘 닫아야 잠긴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돼 문 닫는 게 익숙하지 않았을 때였다. 피곤한 나머지 제대로 문이 잠긴 걸 확인하지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잠들었다. 집엔 오랜만에 어머니가 와 있었다”며 “어머니 말에 따르면, 30분쯤 후 모르는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고 했다. 이 남성은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뒤, 깜짝 놀라 도망쳤다. 나 혼자 잠든 채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하기 싫다”고 털어놨다.

 

서울 중구 장충동에서 사는 공 아무개 씨는 “새벽에 현관문 여는 소리를 듣고 깬 적이 있다. 무서웠지만, 대학교 주변 자취촌에 살고 있던 터라 ‘술에 취한 학생이 집을 착각했겠지’란 생각으로 참고 버텼다”며 “얼마 뒤 다시 누군가 현관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새벽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오전 10시에 생긴 일이었다. 그땐 경찰에 신고할지, 누군지 확인해볼지 많이 고민했다. 결국 아무것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집에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 심상정 의원 “스토킹 관련 법안 빨리 통과시켜야”

 

직·간접적인 주거침입 범죄가 늘면서 1인 여성 가구들의 주거 선택 기준 1순위도 ‘치안’이 됐다. 

 

서울 중구 필동에 거주하는 최 아무개 씨는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땐 아무것도 모르고 집을 골랐다. 살다 보니 집은 가로등도 잘 켜지지 않는 깊숙한 골목길에 자리했다. 지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나니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마다 무서웠다. 그 후론 집을 볼 때, 가로등이 환하게 비추는 큰길에 위치한 집을 선호한다. 가격이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안전한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최 씨는 “2층 이상이 좋다. 1층에선 커튼을 쳐도 밖에서 실루엣을 통해 내가 뭘 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층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여성 1인가구는 택배와 배달음식 등을 전달받을 때도 불편함을 겪는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사는 이 아무개 씨는 “평소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 택배 기사를 볼 일이 없었다. 하루는 집에서 쉬는데 택배가 왔다. 택배를 받으려 문을 열었는데, 택배 기사가 택배는 주질 않고 집 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택배만 주고 가면 될 것을 굳이 그래야 했나 싶다. 그 뒤론 집 앞 편의점에서 택배를 수령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배달음식을 시킬 때, 집 호수를 말하지 않는다. 모르는 이에게 집 내부를 노출하는 게 탐탁지 않다. 불편하더라도 1층에서 배달음식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30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들은 성범죄 알리미 사이트 주소와 각종 방범 용품 정보를 공유한다. 불안 속에 자신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라며 “남성도 자유롭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받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찰은 문제의 동영상 속 남성에게 성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주거침입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심 의원은 “‘경범죄’란 이유로 안이하게 대처하는 경찰, 근본적 대책 없이 반짝 관심에만 그치는 정치권 모두 각성해야 한다. 국회는 20년째 답보 상태인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안들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웅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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