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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공포영화보다 으스스했던 독일 분데스리가 직관기

경기장 앞 2km부터 아수라장…홈팀 패배에 난동 일어날까 내내 조바심

2019.05.30(Thu) 12:06:27

[비즈한국]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날씨도 좋고 이런 날 비어가르텐에서 맥주 마시며 수다 떠는 뒤풀이는 언제라도 대환영이니까. 아들아이를 위한다는 명목도 있었다. 독일에 와서 축구광이 된 아이가 몇 번이나 축구장에 가보고 싶다고 했는데 여태껏 그 청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친구네가 헤르타 베를린과 레버쿠젠의 축구경기를 보러 가자고 했을 때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2018-2019 분데스리가 시즌 마지막 경기이자 레버쿠젠의 챔피언스리그 진출 결정 여부가 달린 중요한 경기라니 뭔가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희열마저 들었다.

 

경기 막판, 4 대 1의 스코어에 잠시 조용해진 관중석은 이내 다시 에너지를 결집, 열띤 응원 열기를 보였다. 사진=박진영 제공


예상외로 아이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늘 축구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개인기 연습에 열과 성을 다해주는 축구 멘토 아빠의 절대적 영향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 아스널을 좋아하는 아이는 분데스리가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나마 잘하는 팀인 바이에른 뮌헨이나 도르트문트 정도는 좋아하는 모양인데 관심 밖의 팀들이 하는 경기라니 시큰둥할 수밖에. 

 

그래도 축구장에서 직접 보는 경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레버쿠젠 응원석에 앉는다’는 조건을 걸고 가기로 결정. 나야 어느 팀을 응원하든 딱히 상관 없었지만 아이가 레버쿠젠을 응원하는 셈법은 복잡했다. 들어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 기억나는 건 레버쿠젠 팀 선수인 브란트가 그나마 맘에 드는 선수이기 때문이라는 것. 

 

헤르타 BSC 베를린 홈 경기장인 올림픽 스타디움. 이날 6만 여 명의 인파가 관중석을 채웠다. 사진=박진영 제공


막상 우리는 당일 헤르타 베를린 관중석에 앉았다. 레버쿠젠에게는 원정 경기요, 베를린에게는 홈경기니 응원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고, 간혹 원정 경기 응원을 온 팬들 중에 극성 팬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으며, 이날 베를린이 질 확률이 매우 상당히 높아 혹여 레버쿠젠 응원석에 앉아 있다가 좋지 않은 경험이라도 당할 수 있다는 등 여러 가지 상황과 변수를 고민한 끝에 헤르타 베를린 응원석을 선택한 남편 때문이었다.

 

경기장까지 가는 내내 우리는 결과적으로 홈 팀 응원석을 선택한 것이 아주 잘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미리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정체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우리는, 도착 2km 정도를 남겨놓고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차 안에 있을 때는 전혀 예상 못했던 풍경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 내내 펼쳐졌다. 

 

수많은 경찰이 동원돼 왕복 8차로를 차단하고 있었는데 대로에는 온갖 폭죽과 술병이 깨진 채로 나뒹굴었고, 환경미화원들이 동원돼 분주하게 치우고 있었다. 레버쿠젠 극성팬들인지 베를린 응원팀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모르겠지만, 약 2km에 이르는 길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의 열기는 예상보다 더했다. 경기장으로 가는 대로는 온갖 폭죽 잔해와 깨진 술병 등으로 차량 통행이 통제되었을 정도. 사진=박진영 제공


경기장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대단한, 약간은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응원 열기를 느낀 나는 하필 아이가 그날 입고 온 레버쿠젠 응원 팀 색상인 빨간 색 점퍼를 벗겼다. 아, 헤르타 베를린 티셔츠라도 사 입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경기장 안은 초만원이었다. 계단과 이동 통로까지 사람들이 꽉 차는 바람에 한 걸음 이동해 들어가기도 어려울 정도. 이날 관객은 6만 명 정도였는데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 인파는 베를린 응원팀이라 분위기는 일방적이었다. 

 

전반 25분 무렵 레버쿠젠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곧이어 베를린이 골을 터뜨리면서 열기는 달아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잘 하면 이길 수도 있겠다, 비길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얼마 후 레버쿠젠의 두 번째 골이 너무나 쉽게 들어가면서 관중들은 허탈해했다. 

 

경기장 인근, 헤르타 베를린 응원 셔츠를 비롯해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그래도 괜찮았다. 후반전이 남아 있었으니까. 관중들은 1000리터 용량의 대형 잔에 맥주를 마시며 축제를 즐기고, 어깨동무를 하고 응원가를 부르며 온 힘을 다해 응원했다. 어쩌다 보니 처음에는 레버쿠젠을 응원한다고 했던 아이도, 어떤 팀에도 별 관심이 없던 나도 베를린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이 시작된 후 베를린은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세 번째, 네 번째 골까지 터지고 나니 관중석은 급격히 힘이 빠지는 분위기였다. 더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고 판단되는 상황이었지만, 관중들은 다시 힘을 냈다.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모아 더 크게 헤르타 BSC 베를린을 외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하지만 나는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고 나면 누군가 과격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염려가 됐던 것. 경기 종료 5분 전 4 대 1 스코어를 확인하고 우리는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최종 스코어는 5 대 1로 끝났다. 우리가 나온 후에도 레버쿠젠이 한 골 더 넣은 것. 그렇게 레버쿠젠은 챔피언스리그에 당당히 진출했고 헤르타 베를린은 한 단계 순위가 밀려 10위에서 11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경기 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딱히 베를린의 승리를 간절히 원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쉬운 감정이 드는 건 뭔지. 그래도 독일 분데스리가 경기 현장이 이런 것이구나,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을 추가한 우리는 다음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를 보러 가기로 약속했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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