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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3기 신도시' 고양 창릉 가보니…"일산 죽이는 것" 격앙

비닐하우스 소유자 반색, 집 한 채 가진 원주민·부동산은 울상

2019.05.22(Wed) 11:06:50

[비즈한국] 용산역에서 20분. 경의중앙선을 타고 여덟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화전역에서 내리자 녹음이 울창한 풍경과 마주했다. 두 정거장 차이인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빌딩숲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화전동·창릉동·용두동 일대를 아우르는 고양 창릉지구(813만㎡)는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서울에서 1km 이내에 위치한 창릉지구엔 3만 8000가구가 들어선다. 판교 제1테크노밸리의 2.7배에 달하는 산업용지도 조성된다.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해 6호선 새절역에서 고양시청역을 잇는 고양선(가칭)과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A 노선이 깔릴 예정이며 BRT(간선급행버스)도 도입된다. 국토교통부는 창릉지구에서 강남·여의도·용산까지 30분 안에 닿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화전역 앞 일대. 화전동·창릉동·용두동 일대를 아우르는 고양 창릉지구(813만㎡)는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사진=이은영 인턴기자


신도시 지정 소식에 창릉지구 일대 부동산중개업소 전화통엔 불이 났다. “​내가 가진 토지가 신도시 지정 구역에 해당하느냐”​는 문의 전화였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도 창릉지구 신도시 지정을 반겼다. 열악한 교통 환경이 나아지고 각종 인프라가 구축됨에 따라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용두동에서 만난 택시 기사 박 아무개 씨는 “대규모 하우스 농사짓던 사람들은 로또 맞은 격이지만, 그 땅 빌려 농사짓던 임차인은 쫓겨나게 생겼다”며 “좁은 필지에 집 한 채만 가진 원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주택 면적이 보통 50평(165㎡), 넓어봐야 100평(330㎡)인데 토지보상금 받아봐야 얼마나 되겠냐”고 말했다. 화전동 한 중개업소에 따르면 창릉지구 전답용지 공시지가는 3.3㎡(1평)당 평균 65만 원이고 용지의 75%가량은 외지인 소유다.

 

# 일산 지역 부동산들 “​올해가 최악”​

 

일산 지역민의 반발은 더욱 거셌다. 창릉신도시 개발은 일산 고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3기 신도시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인 채팅방에선 정부·여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오갔다.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2011년에 쓴 책 ‘부동산은 끝났다’ 내용을 인용하며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일산신도시 고립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일산동구 장항동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유 아무개 씨(여·54)는 “창릉신도시 건설은 말도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일산은 작년 9·13대책 이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돼 다주택자에게 양도세를 중과하고 있어 거래 매물이 끊어진 상황”이라며 “9·13 이후로는 거래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한탄했다. “이런 상황에서 창릉신도시까지 개발하는 건 이쪽 사람들 다 죽으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제공하는 ​고양시 창릉 일대 지도. 사진=이은영 인턴기자


국토부에서 공개하는 부동산실거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4월 일산동구와 일산서구의 매매 건수는 총 2316건인 반면 올해는 1284건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유 씨는 “작년에 창릉 도면 유출 이후 투기꾼들이 무더기로 토지를 매수해 (창릉)도래울마을 집값이 1억 원이 올랐다. 유출된 도면 그대로 3기 신도시가 발표되고 나선 남은 매물마저 소진되고 6000만~7000만 원이 더 올랐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창릉에 신도시를 만들려면 일산을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하거나 자족도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며칠 만에 일산 집값이 1억 원이나 떨어졌다는 건 낭설”이라고 일축했다. “9·13대책으로 인한 불황이 이어지고 있을 뿐, 신도시 지정의 직접적인 영향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창릉신도시에 반대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의 집값이 아니라 부동산 상황이 언젠간 나아질 것이라는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갔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의 방향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부동산중개사 김 아무개 씨(여·53)는 “신도시 지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옳은 방향”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발표된 신도시들이 수도권 동쪽에 몰려 있어 형평성 차원에서 서쪽인 창릉에 신도시를 개발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당장 숨 쉴 구멍은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며 반문했다. 그 역시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동산 불황을 언급했다. “9·13대책 이후 투자자는 차치하고 실수요 거래마저 막혀버렸는데, 서울 가는 길에 떡하니 창릉이 들어서면 누가 일산에 살겠냐”며 “매매가 5억 2000만 원인 주택이 4억 원에 급매로 나와도 ‘시간 지나면 더 떨어질 것 같다’며 안 산다”고 한탄했다.

 

부동산중개업에 종사한 지 15년째라는 김 씨는 “올해가 최악”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5개월 동안 계약이 겨우 두 건이었다. 수입원이 없어 대출금으로 버티는 신세다. 임대료와 광고비를 합하면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월 200만 원이 나간다. 생활비까지 더해 매달 5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며 “1년이면 적자가 6000만 원인데 수중에 그 많은 현금을 들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냐”며 호소했다. “집 팔고 그 돈으로 버텨보려 해도 집이 안 팔린다”고 덧붙였다.

 

# 창릉지구 인접 지역 “근처 신도시 들어서는데 여기 관심 갖겠나”

 

‘창릉지구와 인접한 곳은 부동산 상황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김 씨의 말에 덕양구 행신동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한 중개업자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전월세·매매 가릴 것 없이 거래 자체가 거의 없다. 문의 전화조차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고 아무개 씨(남·63)는 이에 대해 “전형적인 오해다. 바로 옆에 신도시가 들어선다고 부동산 거래가 증가하진 않는다. 오히려 매수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 매수자 입장에서 근처에 신도시가 들어서는데 굳이 여기 들어와 살겠냐”며 “일산처럼 집값이 떨어질 걱정은 적은 게 유일한 위안인 셈”이라고 말했다.

 

창릉지구 바로 옆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는 창릉신도시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쉽게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 입장에선 삼송·원흥 등 인근 지역민의 수요를 반영한 정책인 데다 ‘지역 형평성 제고’라는 명분이 있는 사업이지만, 타 지역 주민의 박탈감과 중개업자들의 고민을 무시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일산 주민들은 5월 12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지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25일 토요일 오후 3차 집회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일산신도시연합회 제공


그는 “국토부의 ‘민심 달래기’용 정책들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며 “착공도 못한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가 2023년까지 완공된다고 해도 물리적 거리가 정말로 극복 가능하냐? 그렇다면 왜 수도권 외 지역민들이 KTX로 출퇴근하지 않고 이사를 선택하겠냐”며 반문했다. 

 

일산 테크노밸리 사업 역시 “기업 유치 가능성이 희박하다. 주요 IT기업들이 이미 판교에 자리 잡은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왕복 4시간인 고양에 입주하겠냐”며 “3기 신도시 사업이 이미 후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만큼 정부의 세심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산 주민들은 5월 12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쳐 3기 신도시 지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1차 집회에선 경찰 추산 800명, 2차에선 경찰 추산 600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25일 토요일 오후 3차 집회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은영 인턴기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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