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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20년간 2천권 읽은 경제학자의 독서법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시작해 '계통' 쌓는 단계로 나아가야

2019.05.20(Mon) 10:29:41

[비즈한국] 최근 발간한 책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가 과분한 호응을 받다 보니,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이메일을 받게 된다. 특히 책 서문에서 “지난 20년간 읽었던 2000여 권의 책 내용을 집약했다”는 부분을 거론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 

 

이 자리를 빌려 간단하게 내 독서 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단계는 바로 쉬운 책부터 읽으라는 것이다. 특히 고전 읽기는 (독서 초보의 경우에) 되도록 피해야 할 방법이라 생각한다. 

 

독서 초보라면 어렵고 오래된 고전보다는 쉬운 책부터 읽는 것이 좋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고전은 기본적으로 오래된 책이다. 우리가 만일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해보자. 조상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인간의 말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며, 특히 ‘맥락’을 모를 때에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열에 하나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중학교 시절, 도서관의 모든 책을 다 읽는 중에 1950년대에 발간된 책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국어 문법이 현재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를 들어 ‘젊은이’를 1950년대의 책에는 ‘절므니’라고 표기했다. 불과 60여 년 전에 발간된 책도 이렇게 표기가 다른데, 500년 전 혹은 300년 전에 쓰인 책이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따라서 무턱대고 고전을 읽기보다는 최근에 쓰인, 그리고 쉬운 책을 읽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영원히 고전을 읽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해당 분야의 다양한 글을 읽고, 또 그 책이 쓰인 시대에 대한 배경지식을 습득한 다음에 읽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쉬운 책을 골라 읽다 보면 점점 더 글 읽는 속도가 빨라지게 된다. 특히 좋은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재미있는 소설은 내 머리 속에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시작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 인생의 책 중 하나가 황석영 작가의 ‘​장길산’​이다. 장길산과 그의 연인 묘옥, 그리고 봉순이의 러브스토리에 일단 전율했고 그들을 갈라놓는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선하다.

 

물론 소설만 이런 역할을 하는 게 아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나오는 다양한 환자들의 사례를 보면서 마음속에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 역정이 펼쳐지는 것을 경험했다(이런 훈련 덕분에 나는 음향효과가 강렬한 스릴러 영화를 보지 못한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장면이 절로 연상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이미지로 전환하는 일, 즉 상상을 자극하는 일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두뇌를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의 스티븐 핑커 교수는 그의 역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독서가 인간 세상에 끼친 공을 설명한다.

 

나는 인도주의 혁명을 가져온 외생적 변화로서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중략) 독서는 관점 취하기(perspective-taking)의 기술이다. 당신은 독서를 통해 그 사람(=저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셈이다. 당신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장면과 소리를 접하는 것은 물론,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잠시나마 그의 태도와 반응을 공유한다. (중략)

 

당신은 타인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그도 당신과 굉장히 비슷한 인간이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은 어떤 다른 사람의 의식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남의 글을 읽는 버릇을 통해서 남의 생각 속으로, 나아가 그의 기쁨과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을 갖게 된다고 말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고문용) 칼을 뒤집어써서 얼굴이 흙빛이 된 남자. 불타는 장작을 밀어내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여자. 200번째 채찍에 몸부림치는 남자. 이런 사람들의 관점으로 잠시나마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그런 잔인한 짓을 누구에게 든 꼭 가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취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도 사람들의 믿음을 바꿀 수 있다. 외국인, 탐험가, 역사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당연시되던 규범을 명시적인 관찰로 바꾸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 ‘​​원래 그런 거야​라는 말에 대해 그게 우리 부족의 방식인가?'라는 질문으로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런 자의식은 그 관행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없는지를 자문하게 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중략) 독자를 편협한 관점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문해력의 힘은 사실적인 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략) 사실적인 픽션도 독자의 감정 이입을 확장시킨다.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책 314~316쪽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한 글을 보지 못했다. “독서는 관점 취하기의 기술”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과거 판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더 나아가 현실 속에 자신이 봉착한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쉬운 책, 그리고 특히 잘 쓰인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음으로써 쉽게 상상하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훈련을 쌓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도입 단계를 거치고 나면, 다음부터는 책을 고르고 읽는 게 매우 쉬워진다. 바로 ‘계통’을 쌓아가는 작업을 거치면 된다. 즉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이 쓴 개설서 혹은 도입서를 차근하게 읽는 것이다(예를 들어 경제학 공부를 하려는 초보자에게는 팀 하포드의 책 ‘​​당신의 경제학자라면’​, 그리고 경영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리야마 아키에가 쓴 ‘​​경영학 수업’을 추천한다).

 

그런데 이런 개설서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이 분야의 독서가 끝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팀 하포드의 책은 매우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지만, 이 책 한 권 읽었다고 해서 경제 분야에 대한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경제학자라면’​은 여러 경제 지식을 제공하고 새로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훌륭하지만, 이 책 하나 읽었다고 경제학의 모든 부분을 잘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개설서는 본격적인 공부의 출발점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럼 다음 단계를 어떻게 밟아야 하는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많은 개설서나 교과서가 한결같이 인용하는 책을 볼 것을 권한다. 즉 책 끝에 붙어 있는 참고서적의 리스트를 대조해서 겹치는 책들을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황의 경제학’​(폴 크루그먼 저)이 경제학 개설서의 참고문헌에 반복적으로 추천되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저자의 책이 맘에 들었다면, 그 저자의 책들을 다 구해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왜 저자의 계통을 밟으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 결국 이름값만큼 중요하고 믿을 만한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나를 포함해 수많은 저자가 있지만, 매우 극소수의 저자들만이 ‘읽을 만한 책’을 제공한다. 이건 슬프지만 사실이다. 독서는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재능’이라는 점에서 참 평등하지만, 글쓰기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쉽고 재미있는 책으로 독서를 시작했다면 다음으로는 ‘계통’을 쌓아가는 작업을 거치면 된다.

 

특히 이 재능을 갈고닦는 과정에서 많은 운이 개입한다. 아무리 뛰어난 글쓰기 재능을 타고 났더라도, 어릴 적 부모가 교육에 관심이 없어서 ‘문맹’으로 오랫동안 살았다면? 그가 나이 든 다음 글쓰기 재능을 꽃피웠다 해도, 수십 년 이상 글을 쓰고 책을 읽은 다른 경쟁자들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한 권의 빛나는 작품을 내놓았다 해도, 결국 글은 자신의 마음속에 가득 담긴 어떤 것을 배설해내는 과정이기에 담긴 게 적으면 세상에 내놓을 책의 양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결국 어떤 좋은 작품을 쓴 작가, 특히 두 권 이상의 좋은 책을 쓴 극소수의 작가는 다음번에도 괜찮은 작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책을 고르는 가장 쉬운 방법 중에 하나가 ‘이름’을 보는 것일 수밖에.

 

세 번째 단계는 호적수의 글을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먼의 책을 탐독했다면, 그다음에는 니얼 퍼거슨(‘​현금의 지배’​ 등 다수) 혹은 그레고리 맨큐(‘​맨큐의 경제학’​ 외 다수)의 책을 읽는 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맹비난한 사람의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저자의 책만 봐서는 제대로 공부했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저자라 하더라도 모든 내용이 올바를 수 없으며, 그 역시 수많은 연구 중에 자신의 의견에 부합하는 것을 취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적수의 비판, 특히 그가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는 게 좋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참고문헌에 있는, 저자의 결정적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읽는 것이다. 이 수준에 도달하면 이제 고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슬프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저자들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왜냐하면 핵심 근거라고 인용했던 것이 정작 잘못 인용되었거나 혹은 내용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는 게 바람직한 부분이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계는 자신을 이끌어준 스승을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이상의 과정을 거쳐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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