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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법] 또 판사 출신 비서관, 청와대는 권력분립 잊었나

겉으로는 문제없어 보이지만 삼권분립 근간 훼손할 수 있어

2019.05.20(Mon) 08:42:01

[비즈한국]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 2017년 5월 법무비서관으로 김형연 부장판사가 임명되었을 때 법조계에 논란이 일었다. 현직 판사가 청와대 비서실로 직행했기 때문이다. 이명박(MB) 정부 시절 강한승 당시 서울고등법원 판사가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이후 판사의 청와대 직행은 두 번째. 

 

지난 17일 청와대는 김형연 비서관 후임으로 역시 부장판사 출신인 김영식 변호사(사진)를 신임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김형연 비서관은 법원 내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로 활동하며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임명 당시는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견제 등 사법행정남용의혹이 막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기에 다소 뜻밖의 선택으로 비쳤다. 김 비서관이 법원 내에서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설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현직 판사의 청와대 비서실 직행은 권력분립 측면에서 결코 환영할 수 없는 인사였다. 사법부는 국회, 정부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견제를 통해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사명이기에, 판사의 대통령 비서실 직행은 권력분립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인사청문회에서 김 비서관에 대해 “대법원장이 되면 공개적인 사퇴 요구를 생각해 보겠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지난 17일, 청와대는 김형연 비서관 후임으로 역시 부장판사 출신인 김영식 변호사를 신임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했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개 법무비서관은 부장판사를 거친 대형로펌 출신 변호사를 임명했기에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인사로 보인다. 그러나 김영식 신임 비서관은 과거의 전관 출신 변호사들과는 이력이 다른 측면이 있기에 그저 편하게만 지켜볼 수가 없다. 

 

지난 2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기소를 정점으로 헌정사상 유래 없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전말이 공개됐다. 전‧현직 판사 14명이 기소됐고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기까지 했다. 검찰수사 결과 밝혀진 수많은 공소사실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청와대와 대법원 간 모종의 협의가 이루어졌다는 의혹이다. 

 

김영식 신임 청와대 법무비서관은 삼권분립을 강조하며 양승태 코트를 맹렬히 비판해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당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인사들이 증인으로 출석해 자세히 증언하고 있다. 김규현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강제징용 사건과 관련해 조속히 정부 의견을 대법원에 보내고, 그렇게 이 문제가 종결되도록 하라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말씀하셨다”면서 “박 전 대통령이 개망신이 안 되도록 하라고 말씀하시고는, 표현이 좀 그랬는지 세계 속의 한국이라는 위상을, 국격이 손상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처리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박준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강제징용 사건 대법원 최종 판결을 최대한 늦추는 것을 승인했다”고 증언했다. 앞으로 남은 재판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겠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이 특정 사건의 진행상황에 대해 정식 절차가 아닌 방법으로 논의하고, 더 나아가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판결과까지 협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커다란 파장을 피할 수 없다.

 

지난해 11월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검찰 공소장을 보더라도 삼권분립을 지켜야 하는 최고법원이 얼마나 청와대의 로펌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는지 알 수 있다”며 대법원을 강하게 비판한 판사가 바로 김영식 신임 비서관이다. 김 비서관이 지난해 12월 돌연 사직서를 냈을 때 법무비서관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에 그는 “사표를 낸 것은 법무비서관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불과 5개월 만에 보도가 사실로 드러났다. 

 

김영식 신임 비서관은 5개월이면 사직서의 잉크도 말랐고, 헌법상 직업의 자유도 있으며, 무엇보다 법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신임 비서관은 삼권분립을 강조하며 양승태 코트를 맹렬히 비판해왔다. 

 

아울러 검사는 지난 2017년 3월 검찰청법 개정으로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아니하면 대통령비서실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정이 신설됐다. 검사보다 판사가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더욱 강조되는 것은 상식이다. 판사에 대해 검사와 같은 금지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은 헌법에 사법권독립이 명문화된 판사에 대한 신뢰다. 청와대와 김영식 비서관이 이러한 신뢰를 잠시 외면하거나 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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