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난해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98명을 기록해 1970년 공식 인구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초로 1명 이하로 떨어졌다. 2명이 결혼해 아이 하나도 낳지 못한다는 뜻이다. 2019년 올해는 인구통계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사망자가 출생자보다 많아지는 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인구 감소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도 있다. ‘비즈한국’은 창간 5주년을 맞아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경제적 심각성을 4회에 걸쳐 진단한다.
[창간 5주년 기획] '인구절벽'에 서다 ① 2019년 사망자, 출생자 추월
저출산과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생산가능인구(15~64세)의 감소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경제성장과 노동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일자리가 없어 청년 실업자가 급증하는 지금과 달리 머지않은 미래에는 인력 부족으로 문을 닫는 기업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보다 20년 먼저 인구 감소가 시작된 일본이 지금 겪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20년 먼저 인구 감소 겪은 일본, 실업률 줄고 구인난 심각
LG경제연구원의 ‘생산가능인구 감소 시대의 경제성장과 노동시장(2017년 3월 8일)’ 보고서를 보면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경험한 국가의 평균 성장률은 감소 시점을 전후해 급격히 낮아졌다. 생산가능인구 감소 초기에는 경제위기 등으로 실업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력난이 발생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은 1995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시작됐다. 한국이 2017년 감소세에 들어선 데 비해 22년 빠르다. 일본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직후부터 실업률이 높아져 2002년에는 5.4%까지 상승했다. 청년실업 등 취업난이 지속되는 한국 실업률도 4.3%(2019년 3월 통계청 발표)인 것에 비하면 일본의 취업난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2002년 이후 일본의 실업률은 서서히 낮아져 2014년 3.6%, 2019년 3월에는 2.3%까지 떨어졌다. 대신 인력난이 극심해졌다. 일본의 유효구인배율(구직자 한 명당 구할 수 있는 일자리)은 4개월 연속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올해 3월 일본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2월 유효구인배율은 1.63으로 집계됐다.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가 1.63개라는 의미다. 같은 달 한국의 유효구인배율은 0.61로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가 1개 미만인 국내 상황과 대조적이다.
현재 일본은 심각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일본에서 구인난으로 폐업한 기업 수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상공리서치가 4월 발표한 ‘2018년 기업 도산 통계’에 따르면 일손 부족으로 공장 문을 닫은 업체가 400건에 달했다. 전년 대비 28.6% 급증했으며 집계를 시작한 2013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24시간 영업을 하던 편의점도 심각한 구인난으로 영업시간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3월 ‘도쿄신문’ 등은 일본에서 가장 많은 점포를 보유한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3월 중순부터 직영점 10곳을 선별해 오전 7시~오후 11시까지만 단축 영업을 한다고 밝혔다. 일자리가 넘쳐 심야 근무를 희망하는 구직자를 찾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구인난에 이사업체 비용도 2017년부터 크게 올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시즈오카현의 1인 가구 이사 비용은 40만 엔(약 409만 원)까지 치솟았다.
일손 부족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퇴직 트러블’도 크게 늘었다. 퇴직자를 대체할 인력이 없다 보니 근무자가 퇴직 의사를 밝혀도 회사가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퇴직 갈등과 관련된 직장인 노동상담 건수가 2007년 1만 5746건에서 2017년 3만 8954건으로 2.5배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최근에는 퇴직 희망자를 대신해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 처리를 대신 밟아주는 ‘퇴직 대행 서비스’까지 생겨나 인기를 끌고 있다.
# 일본 정부 실업률 개선 위한 20년 노력 결실
일본 빠소루종합연구소는 2017년 248만 명의 일손이 부족하며 2025년에는 이 숫자가 583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특히 IT 및 통신 분야, 건설업, 의료, 미디어 부문 등의 구인난이 극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이 구인난 해소를 위해 꺼내든 카드는 해외 인력 수급이다. 일본 총무성 발표(4월 12일)에 따르면 일본의 지난 1년간 순유입 외국인 수는 약 16만 7000명(전체 인구의 1.76%)으로 6년째 증가 추세다. 2012년 5월부터는 ‘고도인재포인트’ 제도를 도입했다. 학력, 연봉, 직장 경력 등을 항목별로 포인트를 매겨 70점 이상이 되면 ‘고도전문직’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해외 인재를 일본 현지에 잡아두려는 움직임이다.
최근 국내 취업시장에도 일본 관련 취업 박람회가 늘고 있다. 국내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일본으로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자의 요구와 맞아떨어져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2018 일본 취업 박람회’에는 일본 기업 112개가 참여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이 이민정책을 강화하는 등 외국 인력 수급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외국 인력만으로 일자리를 모두 채우긴 어려워 여성, 고령자 등 그간 취업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계층까지 취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면서 “AI 등을 적극 도입하고 기업은 단순 사무업무를 로봇으로 바꾸는 등 자동화 시스템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일본의 모습이 한국에 그대로 재현될 거라고 쉽게 단언할 수 없다.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인구가 감소하면 가장 먼저 소비가 줄어든다. 일본 지방 소도시의 경우 손님이 없어 낮에 문을 닫는 가게가 늘어나 ‘셔터거리’라는 말이 생겼고 지방상권도 거의 사라졌다”면서 “소비가 줄면 경제성장이 둔화돼 필요 인력도 줄어든다. 인구가 줄었으니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계산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실업률을 개선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년이다.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일본의 실업률이 개선된 건 2013~2014년으로 생산인구감소 시점부터 약 20년이 걸렸다. 20년 동안 아베 신조 정권이 아베노믹스를 추진했고, 기업도 투자를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한국도 실업률 개선을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정책과 기업 투자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나 대책이 없다면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밝혔다.
[창간 5주년 기획] '인구절벽'에 서다 ③ 노인을 위한 나라, 없다? 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
[골목의 전쟁] 직장인은 '개', 자영업자는 '늑대'
·
[대기업 총수 생가를 찾아서 ⑤ 현대차] 갈 수 없는 '왕회장' 고향
·
[리얼 실리콘밸리] '공룡 IT 기업' 분할 여론 커지는 까닭
·
[부동산 인사이트] 구축 아파트는 '주차장'부터 체크하라
·
[창간 5주년 기획] '인구절벽'에 서다 ① 2019년 사망자, 출생자 추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