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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비어가르텐' 열려야 봄, 맥주 어디까지 마셔봤니?

맥주가 일상인 나라, 하루 한 병씩 맛보려면 5500일…그래도 취객은 잘 안 보여

2019.05.02(Thu) 11:25:01

[비즈한국] 독일 날씨는 4월이 될 때까지 믿으면 안 된다고들 한다. 긴 겨울 끝 3월 한때 반짝 화창한 날씨를 보이면 사람들은 ‘봄이구나’ 생각하지만 날씨는 바로 배신한다. 작년엔 널뛰기가 덜했던 듯한데 올해는 그야말로 겨울과 여름을 오가며 정신을 쏙 빼놓는다. 

 

어느 날은 섭씨 24~25도까지 올라 반팔 옷차림이 넘쳐나다가, 며칠 뒤 0도에 가까운 기온과 강한 바람으로 패딩을 꺼내 입게 만는다. 4월도 지났으니 안심해도 되려나 싶을 찰나, 이번 주말 기온은 최저 섭씨 1도로 예상되고 있다.

 

기온으로 치면 완벽한 봄은 아닐지 몰라도 봄이 왔음을, 겨울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시그널이 있다. 바로 비어가르텐(bier garten) 영업 개시다. 4월 초를 기점으로 베를린 시내 비어가르텐이 겨우 내 닫힌 문을 열고 하나둘 오픈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모든 비어가르텐이 개점했다. 지겹도록 긴 겨울이 끝나기를 오매불망 바라던 이유 중 하나가 비어가르텐 때문이기도 하다.

 

마트 내 맥주 코너. 독일에는 550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가 있다. 사진=박진영 제공


이름 그대로 맥주(bier, 영어로 beer)를 파는 정원(garten, 영어로 garden). 야외 맥주 펍을 뜻하는 비어가르텐은 독일 맥주 문화의 전통으로 인공적이든 자연적이든 정원 형태를 띠고 있다. 탁 트인 곳에서 ‘초록초록’한 정원을 느끼며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베를린 생활의 백미. 봄날의 비어가르텐에서 봄 햇살과 살랑살랑 봄바람과 함께 들이키는 한 잔도 행복하지만, 비어가르텐의 정점은 기온이 오르면서 시작된다. 

 

독일에서 맥주 판매량이 가장 많은 계절이 여름이고 날이 더울수록 판매량이 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더운 날씨와 시원한 맥주의 조합, 누구나 경험해 봤을 이 조합은 환상이니까. 비어가르텐이라는 장소까지 더해지면 완벽한 일체가 되니, 모두가 비어가르텐을 사랑할 수밖에. 

 

봄이 되고 비어가르텐이 일제히 오픈하면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맥주를 즐기려는 이들로 넘쳐난다. 사진=박진영 제공


술을 파는 곳이지만 대부분 가족 단위로 함께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갖추고 있거나, 간단히 스포츠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숲 속 공터가 있는 비어가르텐도 많다. 우리 가족이 자주 찾는 비어가르텐은 하나는 숲 속에, 하나는 호수 앞 요트 선착장 뷰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베를린의 수많은 호수들을 따라가면 어디서든 비어가르텐을 찾을 수 있다. 

 

비어가르텐이 강을 따라 발전된 데는 이유가 있다. 19세기 초 바이에른의 맥주업자들은 강둑을 따라 지어진 냉각 저장소에서 바로 맥주를 내와 대접했다. 지금도 바이에른주에는 600개 이상의 양조장이 있는데 독일의 어느 주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다.

 

독일 하면 일반인들이 가장 먼저 맥주를 떠올릴 정도로 맥주가 삶의 한부분인 이곳에서 수많은 맥주를 시험 삼아 마셔보는 일은 지난 1년 6개월 동안 큰 즐거움이었다. 비어가르텐이나 레스토랑에서 파는 맥주는 종류가 한정적이지만, 일반 마트에만 가도 맥주 종류가 넘쳐난다. 요즘은 크래프트 비어를 판매하는 곳들도 많아져 골라 마시는 즐거움도 크다. 

 

최근 독일 언론에 따르면 현재 독일서 판매 중인 맥주 브랜드는 5500개 이상이다. 또 일주일이 멀다 하고 새로운 맥주가 출시된다니, 정확한 수치를 헤아리는 것도 어려울 정도다. 그 중에서 마셔본 종류가 20~30종 되려나. 지금부터 한국에 돌아가는 그날까지 하루 한 병 씩 새로운 맥주를 마신다고 해도 10% 정도의 맥주만을 알고 가는 셈이다.

 

맥주가 삶의 일부분인 독일에서는 마라톤 중에도 맥주를 마신다. 마라톤 코스 중간 ‘비어 스탑(beer stop)’ 표지판을 봤을 때의 놀라움이란. 사진=박진영 제공


신기한 건 비어가르텐을 비롯해 넘치는 게 맥주집이고, 식사 때마다 맥주를 달고 살고, 길거리에도 맥주병을 들고 다니고, 공연장에도 맥주잔을 들고 들어가는 이들이 숱한데도 한국처럼 취객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수치적으로도 유럽에서 가장 많은 맥주를 생산하는데 그 중 80% 이상이 독일 내에서 소비된다. 다 같이 어마어마하게 마신다는 얘기. 

 

독일 사람들은 맥주를 물처럼 마신다고 농담하던 말들이 농담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간혹 취하도록 마시는 독일인들도 있다고는 하는데, 한국처럼 죽자고 덤벼들어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올해 목표는 하나. 지난해 10월 불발된 뮌헨 옥토버페스트에 가보는 것이다. 맥주의 본고장 뮌헨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맥주축제에서 축제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1리터짜리 전용 바이에른 맥주 머그잔을 경험하는 그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맥주 한 잔, 치어스!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2017년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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