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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 최초의 '연금술'이 펼쳐지던 순간!

초기 우주에 별 탄생 도운 '헬륨 하이드라이드' 2016년 우주에서 첫 발견

2019.04.24(Wed) 12:02:21

[비즈한국] 밤하늘의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별들. 이 아름다운 ‘스타’들은 어떻게 탄생할까? 무대를 밝히는 스타들의 데뷔 과정만큼이나 우주의 ‘스타’들 역시 그 데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별이 탄생하기 위한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별은 우주 공간을 부유하는 거대한 분자 구름이 자체 중력으로 수축하면서 만들어진다. 이때 수축하기 시작한 가스 분자 구름의 질량이 얼마나 무거운지, 가벼운지에 따라 그 별 지망생의 운명이 상당 부분 결정된다. 

 

처음에 반죽되기 시작한 분자 가스 구름 덩어리의 질량이 적다면 아무리 가스 구름이 수축하더라도 중심부의 온도가 충분히 뜨겁게 달궈지지 못한다. 수축한 가스 덩어리 반죽이 진정한 스타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중심의 핵융합 반응을 통해 만들어낸 에너지로 스스로 빛을 내며 자급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온도까지 중심부가 달궈지지 못하면 결국 이 가스 반죽 덩어리는 핵융합 엔진에 미처 시동조차 걸지 못한 채 차갑게 식어간다. 

 

2015년 유럽의 초거대 망원경(VLT, Very Large Telescope)을 통해 관측한, 현저하게 금속 함량이 낮은 은하 CR7의 모습. 빅뱅 직후 처음 만들어진 별들로 구성된 제 1세대 은하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ESO/M. Kornmesser

 

그렇다고 너무 많은 질량이 모이는 것도 스타로 데뷔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스 구름이 중력에 의해 수축하며 중심부가 뜨거워지면, 상승한 열에 의해 오히려 중력을 거슬러 바깥으로 가스 구름 덩어리를 팽창시키려고 하는 압력이 발생한다. 구름이 더 수축할수록 내부 온도도 더 올라가면서 결국 팽창하려는 압력이 수축하려는 중력과 맞먹는 수준까지 강해질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가스 덩어리는 수축을 멈추고 안정적인 상태에 접어든다. 핵융합 반응으로 발생한 열 때문에 팽창하려는 내부 압력과 수축하려는 중력, 두 힘이 안정적인 균형을 이루는 정역학 평형의 순간, 천문학자들은 바로 이때를 가스 구름이 스타로 데뷔하는 순간으로 정의한다. 

 

하지만 항상 이런 과정을 거쳤던 것은 아니다. 빅뱅 직후 초기 우주 시절에는 별이 되기가 훨씬 더 어려웠다. 초기 우주에서 태어난 1세대 원로 스타가 오늘날 별을 본다면 “요즘 별들은 참 편하게 데뷔한다”고 푸념 섞인 한마디를 던질지도 모른다. 

 

빅뱅 직후, 우주가 탄생한 지 겨우 100만 년 정도이던 때에는 아직 이렇다 할 은하나 별이 없었다. 말 그대로 황무지 같은 시대였다. 갓 태어난 어린 우주는 수소와 헬륨, 극미량의 리튬 정도밖에 없는 화학적으로 아주 심심한 세상이었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화학 성분을 수소와 헬륨, 그리고 나머지 모두를 금속이라고 뭉뚱그려서 구분한다. 태초의 우주에는 거의 수소와 헬륨뿐, 금속 성분은 제로에 가까웠다. 원자들이 하나 이상 모여서 반죽되는 분자나 이온은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에게는 이 초기 우주 시절 분자와 이온의 부재가 큰 골칫거리였다. 

 

오늘날 별들이 태어나는 현장을 보면 수소 분자나 일산화탄소 등 다양한 분자·이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거대한 가스 구름이 수축하면서 그 중심에 아기별 반죽이 만들어지고 중심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핵융합 엔진에 시동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무거운 분자·이온들은 전기적으로 극성을 띠어서 주변을 돌아다니는 다른 빛 에너지나 전자와 잘 결합하는 성질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이런 남다른 붙임성은 엄청난 에너지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아기별의 중심에서도 발휘된다. 

 

이 분자·이온들은 아기별 중심에서 발생하는 빛을 중간에 가로채 흡수해버린다. 그래서 중심부에서 만들어진 뜨거운 열이 고스란히 가스 구름 바깥까지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짙게 깔린 미세먼지 때문에 시계 범위가 짧아져서 멀리 있는 산과 건물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처럼 별 중심부를 에워싼 별의 대기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이를 별 대기의 ‘불투명도(Opacity)’가 증가한다고 말한다. 

 

이 불투명도가 적당히 유지되어야 갓 반죽된 아기별이 그리 크지 않은 중력으로도 구름이 터져버리지 않고 안정적인 신인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가스 구름 덩어리에 불과한 태양의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도 그 중심의 밀도가 너무 높아서다. 즉 태양 안쪽 대기의 불투명도가 너무 높아서 태양의 정중앙에서 나오는 빛 줄기가 고스란히 태양 표면 바깥으로 새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별의 대기에서 이야기하는 불투명도는 바로 이런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분자·이온들은 별 중심의 과잉된 열을 잡아주는 일종의 냉각제 역할을 한다. 이런 화학 성분들을 별 탄생 과정의 쿨런트(Coolant)라고 부른다. 우주의 신인 스타가 안정적으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니저’인 셈이다. 만약 쿨런트 매니저들의 도움이 없다면 갓 데뷔한 별들은 중심에서 계속 뜨거워지기만 하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금방 우주에서 자취를 감춰버릴 수도 있다. 

 

황무지 초기 우주 시절에는 기껏해야 수소, 헬륨뿐이고 그보다 더 복잡하고 무거운 분자나 이온 같은 쿨런트가 매우 적었다. 따라서 초기 우주에 만들어진 별들은 그 막강한 중심의 뜨거운 팽창 압력을 버티고 정역학 평형에 도달하기 위해 더 강한 중력으로 그 압력을 짓눌러줄 필요가 있었다. 즉 더 많은 질량을 필요로 했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초기 우주의 1세대 별들은 현재 우리의 태양보다 약 수백에서 수천 배의 어마어마한 질량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초기 우주에 처음 데뷔한 1세대 원로 스타들을 ‘제3종족 별(Pop III Star)’이라고 부른다. (가장 먼저 태어나 금속 함량이 거의 0에 가까운 1세대 별은 제3종족, 우리 태양을 포함한 가장 최근에 태어나 금속 함량이 가장 높은 3세대 별은 ‘제1종족’이라고 부른다. 헷갈리지 말자!)

 

별은 질량이 무거워질수록 일생 동안 태울 수 있는 핵융합 뗄감의 양도 증가하지만, 동시에 그 뗄감을 태우는 핵융합 엔진의 효율도 훨씬 빠르게 증가하기 때문에 수명이 더 짧아진다. 따라서 이런 초우량 제3종족 별들은 수명이 요즘 별에 비해 현저히 짧아 채 1억 년도 되지 못했을 것이다.[1] 

 

이 짧은 수명 때문에 아직까지도 제3종족 별의 존재는 관측된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전설’이 되어 버린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주에서 빛나고 있는 우리 태양과 같은 어린 세대 별들에는 오래전 조상 별들이 유훈처럼 남기고 간 금속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몸 속에 탄소와 철 등 무거운 화학 성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오래전 그 성분을 만들고 폭발과 함께 사라졌을 초고대 1세대 조상 별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빅뱅 직후 황무지였던 우주에서 태초의 원로 스타들이 데뷔하기까지의 잃어버린 화학적 고리를 해결해야만 한다. 1세대 스타들은 대체 어떻게 쿨런트 매니저들의 도움도 없이 우주에 데뷔할 수 있었을까? 

 

천문학자들은 황무지 같았던 초기 우주에서 쿨런트 역할을 비슷하게나마 해줄 수 있는 존재로 수소 원자 하나에 헬륨이 결합되어 있는 수소 이온화 헬륨(헬륨 하이드라이드, HeH+)를 생각했다. 이 결합 방식은 너무나 불안정해서 1925년에 와서야 모든 조건을 갖춘 실험실에서나 겨우 만들어낼 수 있었다.[2][3] 특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제 우주에서 발견된 적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지난 50여 년 동안 많은 천문학자들이 지상과 우주에서 활동하는 전파망원경을 동원해 헬륨 하이드라이드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기존의 전파망원경은 헬륨 하이드라이드를 찾기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었으므로 149.1마이크로미터라는 아주 특정한 파장의 빛을 통해 확인되는 이 유니콘의 흔적을 포착하기가 어려웠다.[4] 

 

그런데 지난 2016년 독일의 천문학자들이 드디어 우주에서 헬륨 하이드라이드를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5][6]

 

이 연구팀은 ‘하늘을 나는 천문대’를 활용했다. 고도 약 13킬로미터 상공을 비행하는 보잉747 항공기 안에 망원경과 관측 장비를 설치한 것. 미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개발한 ‘적외선 천문학용 성층권 관측소’ 소피아(SOFIA, Stratospheric Observatory for Infrared Astronomy)다.[7]

 

항공기 안에 장비를 탑재해서 성층권 상공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소피아(오른쪽)와 그 안에 탑재된 관측 장비 테라헤르츠급 주파수 독일 수신기 그레이트(GREAT, German Receiver at Terahertz Frequencies). 사진=NASA

 

이 방식은 지구 대기권의 방해를 최소화할 뿐 아니라, 한번 올라가면 장비 교체가 거의 불가능한 우주 망원경과 달리 지상에 착륙할 때마다 최신 장비로 갈아 끼워 비행이 거듭될수록 더 정밀하게 관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 이온 분자가 발견된 곳은 백조자리 방향으로 약 3000광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비교적 어린 나이의 행성상 성운 NGC 7027이다. 행성상 성운은 우리 태양 정도로 비교적 가벼운 별이 핵융합 과정을 모두 마치고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큰 폭발과 함께 남기는 독특한 모습의 구름 덩어리다. 

 

약 600년 전부터 팽창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행성상 성운 NGC 7027의 모습. 천문학적으로 보면, 이번 밀레니아에 폭발한 굉장히 ‘어린’ 행성상 성운이다. 성운의 중심에 밝게 빛나는 하얀 천체가 폭발한 별의 잔해인 백색왜성이다. 사진=NASA/ESA/Hubble Processing: Judy Schmidt


이렇게 가벼운 별이 폭발하는 그 순간은 마치 빅뱅 당시 우주가 갓 만들어졌을 때처럼 아주 뜨겁고 밀도가 높은 상태가 되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이런 행성상 성운의 중심에서 헬륨 하이드라이드를 탐색해왔다. 그리고 드디어 헬륨 하이드라이드 이온이 우주에 실재하는 존재로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헬륨 하이드라이드는 빅뱅 직후 우주에서 처음 탄생한 화학적 분자라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두 원자가 만나 하나의 새로운 분자가 만들어지는, 우주 최초의 화학 결합의 증거를 확인한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행성상 성운 NGC 7207 중심부 대기 외곽에서 헬륨 하이드라이드의 신호를 검출했다. 헬륨 하이드라이드는 빅뱅 직후 우주 역사상 처음 만들어진 화학 분자라고 볼 수 있다. 사진=NASA/ESA/Hubble Processing: Judy Schmidt


 

금속 함량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을 초기 우주에서 데뷔해야 했던 1세대 원로 스타들은 바로 이 헬륨 하이드라이드 매니저의 어설픈 도움을 받은 덕분에 짧은 무대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물론 헬륨 하이드라이드는 오늘날 새롭게 태어나는 어린 별들의 ‘매니저’인 일산화탄소나 철 등 더 무겁고 붙임성 좋은 성분에 비해서는 효율이 좋지 않다. 하지만 헬륨 하이드라이드마저 없었다면 1세대 별이 아예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고, 오늘날 화학적으로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아름다운 우주를 만드는 재료도 남겨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재료들이 없었다면, 빅뱅 이후 130억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는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대체 이 우주에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 이전 130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우주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졌을까? 

 

인류가 품은 이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우주가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번처럼 우리는 또 다시 우리의 진짜 기원, 출생의 비밀을 하나씩 새롭게 만나게 될 것이다. 

 

오늘밤 서서히 다가오는 여름과 함께 지평선 위로 올라오고 있는 백조자리를 바라보며, 백조의 꼬리 근처에 걸려 있는 장엄한 순간, 우주에서 처음 화학이 태동하던 그 순간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1]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8/0004-637X/808/2/139/meta

[2] https://nyaspubs.onlinelibrary.wiley.com/doi/epdf/10.1111/j.2164-0947.1977.tb02944.x?referrer_access_token=-9fAUOPUBQPLwFUZ4R508Ita6bR2k8jH0KrdpFOxC66oZdD_8aVhW_Aow0rBHcR-x1mb2MLKHzpUgUbh3D0y8f8NHKSBKjlJ9jHlW7H2Ulwmg4mdZZC_71li9oqziA4SuH68TP2Av3fALEYSPDEin_Lyyt8NV8iv_DtnGju75O0%3D

[3] https://academic.oup.com/mnras/article/357/2/471/1370398 

[4]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1086/427391/meta 

[5] https://www.sciencemag.org/news/2019/04/astronomers-have-spotted-universe-s-first-molecule?fbclid=IwAR3_PyDpDWvgOaUKZe0m2AiXFok4zmdNwRFCVp3dhz2phW54-cT3HD7chrc

[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19-1090-x

[7] https://www.nasa.gov/feature/the-universe-s-first-type-of-molecule-is-found-at-las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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