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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 비밀 쥔 '블랙홀' 드디어 눈앞에!

우주 초기 은하 만든 씨앗 역할…지구 크기 거대 망원경 이용 관측 결과 오늘밤 발표

2019.04.10(Wed) 10:49:32

[비즈한국] 학생 시절 가끔 학과 친구들과 함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야외 천문 행사에 참여해 일을 도왔다. 그날 하늘에서 볼 만한 천체를 향해 망원경을 배치해놓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설레는 눈빛으로 망원경 뒤에 길게 줄을 서서 우주의 멋진 모습을 기대했다. 

 

하지만 눈을 망원경 아이피스에 가져다대는 순간 시민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애걔? 겨우 이거야?” 

 

평소 접하기 어려운 비싼 망원경으로 별을 보면 뭔가 더 커다랗고 뚜렷한, 영화 같은 극적인 모습의 별을 볼 수 있을 거라 많은 사람들이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맨눈으로 보나, 지름 10미터짜리 세계 최대 크기의 망원경으로 보나, 별은 그저 까만 우주에 덩그러니 찍혀 있는 작은 점으로 보일 뿐이다. 

 

그나마 거리가 가까워서 표면 구조를 보고 크기를 실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별은 우리 태양이 유일하다. 태양계 바깥 다른 별들은 모두 작은 점으로 보인다. 

 

결국 지금까지 인류가 실제 눈으로 확인한 우주는 작은 점들이 찍혀 있는 거대한 점묘화인 셈이다. 물론 과학적 데이터에 따라 철저한 고증과 천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 점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해볼 수는 있지만, 그 역시 초상화가 아닌 그저 잘 그린 추상화일 뿐이다. 

 

최근 인류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도전을 시작했다. 점으로만 보이는 우주의 해상도를 더 높이기 위해 천문학자들은 ‘전파 간섭계(Interferometer)’를 활용한다. 전파 간섭계는 전파망원경 여러 개를 배열한 뒤 서로 간섭시켜, 거대한 하나의 전파망원경처럼 작동하도록 만든 것으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보다 훨씬 더 파장이 긴 빛-전파로 우주를 관측한다. 

 

이를 통해 처음으로 태양이 아닌 다른 별의 모습을 점이 아닌 크기를 가진 모습으로 담아냈다. 물론 태양을 보듯이 표면에 있는 자글자글한 디테일까지 담아낸 것은 아니지만, 인류가 우주를 점이 아닌 실제에 더 가까운 모습으로 어설프게나마 초상화를 그려내기 시작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1] 

 

2017년 유럽의 천문학자들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세운 거대 전파망원경인 아타카마 거대 밀리미터급 간섭계 ‘알마(ALMA, Actacama Large Millimeter/Submilleter Array)’를 이용해 오리온자리의 가장 붉고 거대한 별 베텔기우스 (Betelgeuse)를 관측했다. 그림 속 주황색 얼룩이 바로 ALMA로 관측한 베텔기우스의 모습이다. 이 별은 우리 태양보다 약 1400배 더 크다. 크기 비교를 위해 관측한 베텔기우스의 모습에 태양계 각 행성의 궤도 크기를 그렸다. 베텔기우스는 너무 커서 목성까지도 다 별 표면 속에 들어온다. 사진=ALMA(ESO/NAOJ/NRAO)/E. O’Gorman/P. Kervella

 

그리고 드디어 오늘 2019년 4월 10일 밤, 인류는 또 다른 우주의 인증샷을 공개한다. 이번에 공개되는 두 번째 초상화의 주인공은 우주에서 가장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먹보 괴물’ 초거대질량 블랙홀(SMBH, Supermassive Black Hole)이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우주 초기 은하를 만드는 씨앗 역할을 한 아주 중요한 존재이지만 직접 관측하기는 아주 까다롭다. 중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 근처에 가까이 접근하면 그 무엇도 빠져나오지 못한다. 벌레가 허우적거려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처럼. 심지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도 초거대질량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탈출의 마지노선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가 1916년 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의 크기를 유추했고 이를 ‘슈바르츠실트 반지름(Schwarzchild Radius)’이라고 한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보다 더 안쪽에 빨려 들어간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관측할 수 없다.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까지만 관측할 수 있다. 진짜 블랙홀은 사실 이 사건의 지평선 안 그 정중앙에 숨어 있다. 블랙홀이 폭식을 즐기는 괴물의 목구멍이라면, 관측 한계인 사건의 지평선은 그 괴물의 입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괴물은 그 입술 주변에 자신이 빨아들이는 음식물들의 흔적을 남긴다. 짜장 라면을 먹고 있는 아이의 입술에 묻은 짜장 소스처럼,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바로 바깥에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물질들이 원반을 형성한 채 빠르게 맴돈다. 이 구조를 블랙홀의 ‘강착 원반(Accretion Disk)’이라고 한다.

 

사건의 지평선 가장자리에 형성된 이 강착 원반이 바로 우리가 관측을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블랙홀 초상화의 한계다.

 

천문학자들은 이 우주 괴물의 입술에 묻은 흔적을 사진으로 찍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린란드, 칠레, 하와이 등 지구 전역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총동원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촬영하는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 Event Horzion Telescope)’이다. 전파망원경 총 9개(과거에 동원한 4개까지 더하면 총 13개)가 지구 크기와 맞먹는 거대 망원경과 같은 효율로 블랙홀을 관측한다.

 

블랙홀의 강착 원반은 사건의 지평선보다 약간 더 큰 반경까지 만들어진다(정확하게는 블랙홀이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에 따라 차이가 있다). 블랙홀이 빠르게 회전할수록 더 안쪽까지 만들어지고, 느리게 회전할수록 더 바깥에 강착 원반이 만들어진다. 

 

이 원리를 이용해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강착 원반의 모습과 그 크기를 명확하게 측정한다면, 이 괴물이 얼마나 빠르게 회전하는지도 아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된다.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에 동원된 망원경들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말 그대로 행성급 규모의 전 지구적 관측 프로젝트다. 사진=ESO/O. Furtak

 

이번에 보게 될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은 토성 주변의 고리처럼 단순한 모습이 아니다. 블랙홀의 강한 중력으로 주변 시공간이 아주 크게 왜곡되면서 그 주변에서 날아오는 빛이 휘어져 오는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중력 렌즈 효과(Gravitational lensing effect)’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블랙홀 앞을 지나가는 강착 원반의 앞부분뿐 아니라 블랙홀 뒤에 가려진 강착 원반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중력 렌즈 효과가 없다면 블랙홀 뒤의 강착 원반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 뒤통수에서 출발한 빛도 경로가 완전히 뒤집혀 우리를 향해 날아올 수 있다. 앞모습과 옆모습, 뒷모습을 한꺼번에 그린 피카소의 입체주의 초상화처럼 우리는 블랙홀 주변에 그려진 앞쪽과 뒤쪽의 강착 원반을 보게 된다.[2][3]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묘사한 블랙홀 역시 ‘중력 렌즈 효과’를 고려해 탄생한, ‘영화 역사상 가장 신경 쓴’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이다.[4]

 

지금까지 천문학자들은 EHT를 통해 우리 은하 중심에 있는 궁수자리 A* 블랙홀과 처녀자리 은하단의 중심에 숨어 있는 거대한 은하 M87의 블랙홀을 관측했다(블랙홀 이름 옆의 별(*) 표시는 해당 은하 중심에 초대형 블랙홀이 있음이 거의 확실해질 때 붙는다). 오늘 밤 공개되는 초상화의 주인공은 M87의 블랙홀이다. 

 

M87 은하는 지구에서 거의 5500만 광년 거리에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숨어 있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은 질량이 태양의 약 60억 배, 크기는 170억 km 정도로 추정된다. 어마어마한 크기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을 관측하겠다는 것은, 달에 놓인 골프공을 지상에서 관측하겠다는 것과 비슷한 도전이다. 

 

우리 은하 중심의 궁수자리 A* 블랙홀을 관측하는 멕시코에 위치한 거대 밀리미터 망원경(LMT, Large Millimeter Telescope). 사진=EHT, Ana Torres Campos

 

그동안 우리는 이 괴물이 엄청난 폭식을 즐기면서 은하를 벗어날 정도로 거대하게 남긴 용트림의 흔적을 관측했다. 그 블랙홀 괴물 곁에 바짝 붙어서 빠르게 돌고 있는 별과 성단의 움직임을 통해 그 중심에 숨어 있을 괴물의 질량도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두 개의 거대한 블랙홀이 가까이 맞붙어 왈츠를 추다가 결국 하나의 블랙홀로 합체하면서 주변 시공간에 남긴 여운을 중력파를 통해 관측하기도 했다.[5] 

 

그리고 드디어 이제 그 전설 속의 괴물,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블랙홀이 폭풍 같은 먹방을 끝내고 어질러놓은 식탁의 흔적뿐 아니라 실제로 그 괴물이 시공간에 만들어내는 물결을 만질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그 괴물의 입술 자국까지 망원경의 화폭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EHT가 관측한 M87 은하 중심의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모습을 구현한 시뮬레이션 결과. 곧 공개될 블랙홀 괴물의 첫 용안은 이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이미지=Jason Dexter(왼쪽), Kazunori Akiyama(오른쪽)

 

EHT가 관측하는 초거대질량 블랙홀 주변 강착 원반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

 

지난 2017년 4월 11일 LMT 제어실에 있는 천문학자들이 마지막 EHT의 촬영을 마치며 축하하고 있다. 사진=EHT, Ana Torres Campos

 

망원경으로 봐도 그저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별의 모습에 실망한 경험이 있는가? 그렇다면 이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말자. 다음 링크를 통해 천문학자들이 블랙홀의 첫 ‘어진’을 공개하는 순간을 본방 사수하자! 블랙홀 기자회견 라이브 스트리밍

 

[1] https://www.aanda.org/articles/aa/ref/2017/06/aa31171-17/aa31171-17.html 

[2] https://www.sciencemag.org/news/2019/04/here-s-what-scientists-think-black-hole-looks?fbclid=IwAR1cVb9AQItaEMNpJpnaD9OUla23Lt27shB0dX2IQJLVV8wHRXoooNx_xTQ

[3] https://www.sciencemag.org/news/2017/03/global-telescope-may-finally-see-event-horizon-our-galaxys-giant-black-hole

[4] https://ui.adsabs.harvard.edu/abs/2015arXiv150308305L/abstract

[5]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0573-4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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