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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즉행] 쪽빛 바다, 분홍빛 꽃, 무지갯빛 선율 '통영의 봄맞이'

7일까지 통영국제음악제…달아공원서 한려해상 만끽, 도다리쑥국으로 속 채우고

2019.04.02(Tue) 14:12:26

[비즈한국] 빼앗긴 들에도 얼었던 마음에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통영은 지금 거리마다 원 없이 분홍의 나래를 한껏 펼쳐내고 있다. 이번 주를 넘기면 언제라도 사그라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듯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얼굴에 닿는 바람은 아직 찬데 눈으로 들어오는 봄빛은 따스하기만 하다. 봄날 남해의 짙푸른 바다를 품고 분홍으로 환호하는 통영의 봄은 한때. 만사를 제치고라도 아니 가볼 수 없는 이유다. 더구나 지난 3월 29일부터 시작된 ‘2019 통영국제음악제’가 이번주 일요일 4월 7일까지 계속된다.

 

통영은 지금 거리마다 원 없이 분홍의 나래를 한껏 펼쳐내고 있다. 지난 3월 29일부터 시작된 ‘2019 통영국제음악제’도 4월 7일까지 계속된다. 삼도수군통제영의 객사인 세병관 언덕에 만개한 벚꽃. 사진=이송이 기자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다. 낭만만을 강조하진 않았다. 사람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소망을 드러내고 이를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의미로 니체는 음악을 타인 혹은 다른 세계와의 교류의 형태로 봤다.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음악을 통해 그렇게 경계를 허물고 작은 세계들이 만난다.  

 

# ‘운명(Destiny)’처럼 다가온 현대 클래식 

 

통영의 봄은 통영국제음악제와 함께 온다. 통영국제음악제는 클래식 음악축제다. 스위스 명문 악단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개막공연으로 시작된 이번 음악제는 열흘간 매일 2~5개의 공연이 이어지며 총 25개의 클래식 공연으로 채워진다. ‘국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소 만나보기 어려운 다양한 국가의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통영국제음악제는 1994년에 윤이상음악제로 시작했다가 2002년부터는 통영국제음악제로 명칭을 바꿔 운영되고 있다. 여전히 윤이상 추모 음악제의 명맥을 이어간다.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첼리스트였던 윤이상은 동양의 음악과 사상을 서양의 악기로 구현하고자 했던 점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일생과는 무관하게 윤이상의 음악은 현재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자극을 준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열흘간 매일 2~5개의 공연이 이어지며 총 25개의 클래식 공연으로 채워진다. ‘국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소 만나보기 어려운 다양한 국가의 음악가들이 참여했다. 사진=이송이 기자

 

이번 음악제의 메인 무대도 예년처럼 너른 바다가 안아주는 언덕배기의 통영국제음악당이다. 올해 음악제의 주제는 ‘운명(Destiny)’.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다. 베토벤 하면 떠오르는 “콰과과광~ 빠바바밤~”으로 시작되는 제5번 교향곡 ‘운명’의 도입부는 세 살배기도 그 리듬에 영감을 얻을 만큼 가히 운명적이다. 베토벤은 제자에게 이 곡을 설명하며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벤토벤의 운명처럼 ​윤이상의 음악도 ​평온하지만은 않다. 흔히 졸음이 쏟아진다는 일반적인 클래식의 지루함도 없다. 첼로의 현을 손가락으로 튕기고 바이올린을 타악기처럼 때리기도 한다. 현대 클래식을 잘 접해보지 않았던 이라면 더 놀랄 법하다. 불안하고 때로 거슬리고, 신경 쓰이고 자극적이다. 일관되지도, 연속적이지도 않다. 현대 우리들의 삶이 그런 것처럼. 

 

매일 밥 먹듯, 술 먹듯, 하루의 일과처럼 한 개의 공연을 보다보니 어느새 귀는 현대 클래식에 익숙해지고 진지하고 엄숙하기만 했던 클래식에 대한 관념도 점차 말랑해진다. 음악당에서 바라본 풍경. 사진=이송이 기자

 

윤이상의 수제자였던 도시오 호소카와의 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을 시작으로, 함부르크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피아니스트 베조드 압두라이모프가 협연하는 ‘파베르제 퀸텟&베조드 압두라이모프’, 유럽에서 활동하는 ‘자그레브 솔로이스츠’의 공연을 차례로 접했다. 주말 동안 매일 밥 먹듯, 술 먹듯, 하루의 일과처럼 한 개의 공연을 보다보니 어느새 귀는 현대 클래식에 익숙해지고 진지하고 엄숙하기만 했던 클래식에 대한 관념도 점차 말랑해진다. 

 

나의 허술한 감성이 끼어들 틈 없던 조밀한 선율에도 차츰 무언의 감정이 실리고, 들리는 음악을 그저 수동적으로 듣고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느끼고 싶어진다. 일상으로 파고드는, 여행으로 파고든 음악의 힘을 실감한다.      

 

# 풍경에 젖고 선율에 빠진, 통영은 지금 제철

 

고성, 진주, 거제와 인접한 통영은 그리 큰 도시는 아니다. 이동이 많지 않아 음악제를 곁들여 여행하기에 동선이 성가시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한다면 통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강구안과 중앙시장, 동피랑 벽화마을과 서피랑 등을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이곳엔 늘 사람이 넘친다. 주말이면 관광객으로 인산인해가 되고 지난 주말처럼 ‘굴축제’라도 할라치면 차까지 밀릴 판이다. 통영의 종로통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여행한다면 통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강구안과 중앙시장, 동피랑 벽화마을과 서피랑 등을 걸어서 둘러보는 것이 편하다. 강구안 인근 ‘남망산 조각공원’​. 사진=이송이 기자


자동차를 이용한다면 박경리기념관과 달아공원, 통영케이블카 등이 있는 미륵도를 돌아보며 반짝이는 남해의 쪽빛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산양관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몰로 유명한 달아공원을 만나고 클럽ES리조트의 황홀한 바다 풍광 속에서 커피 한잔 즐기며 여유를 부릴 수 있다. 

 

미륵도의 산양관광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다보면 전망 좋은 카페와 리조트를 만난다. 통영한산마리나호텔 카페. 사진=이송이 기자


달아공원에서는 비진도, 만지도, 한산도 등 남해상에 한가롭게 둥둥 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경치를 가릴 것 없이 누릴 수 있다. 일몰 때도 좋지만 낮에도 사방이 탁 트인 시원한 풍경이 압권이다. 바다를 끼고 ‘수륙-일운자전거도로’도 나 있어 자전거로 두 바퀴 여행도 좋다. 

   

취향의 차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대중교통보다는 차량 렌트를 권한다. 차가 있어야 갈 수 있는 구석구석 숨은 장소들이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목적지를 삼고 가지 않아도 차를 몰고 아무 곳이나 휘이휘이 다니다 보면 의외의 장소들이 나타나다. 여행에서 의외성은 목적지보다 늘 더 흥미롭다.   

 

달아공원에서는 비진도, 만지도, 한산도 등 남해상에 한가롭게 둥둥 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경치를 누릴 수 있다. 사진=이송이 기자


봄에 통영에 왔다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봄에 땅을 뚫고 나오는 어린 쑥과 살이 연한 봄도다리를 같이 넣고 맑게 끓여낸 ‘도다리쑥국’이다. 담박한 맛이 일품이다. 해장에도 그만이지만 괜히 헛헛한 ‘봄 타는 마음’을 그 연한 도다리 살이 살포시 채워준다. 도다리쑥국에는 겉치레가 없다. 쑥과 무, 청양고추, 도다리가 다다. 누구나 “어라? 나도 끓이겠는데?” 쉬워 보인다. 좋은 것은 누구에게나 쉽고 마뜩하다. 그럴 만하다. 도다리쑥국이 딱 그렇다. 봄 바다에서 먹을 만한 쉽고 그럴 만한 음식. 쑥 향이 코끝과 입가에만 맴돌지 않고 속까지 깊게 스며든다. ‘이거 한 사발 먹고 나면 몸도 마음도 봄기운 차리겠다’ 싶다. 

 

봄에 땅을 뚫고 나오는 어린 쑥과 살이 연한 봄도다리를 같이 넣고 맑게 끓여낸 ‘도다리쑥국’. 사진=이송이 기자


봄의 통영바다는 눈을 채우고 속을 달랜다. 머리를 식히고 가슴을 열게 한다. 아직은 찬바람이 머리를 헝클어도, 그래도 봄바람이다. 통영의 바람 속에는 클래식 선율마저 녹아 있다. 여행의 가성비란 제철에 만끽하는 ‘그곳’일 터. 통영은 지금 제철이다.         

통영=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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