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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지구는 '결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간 위해 '미세 조정' 되었다는 건 착각…잘못된 '주인의식' 버려야

2019.03.27(Wed) 10:33:22

[비즈한국] 오래전 인류에게 우리의 행성 지구는 아주 특별한 곳으로 여겨졌다. 우주의 모든 별과 행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지구에 대한 ‘콩깍지’를 쓴 채 살아왔다. 하지만 과학은 그런 인류의 기대에 찬물을 끼얹듯 계속해서 별 볼 일 없는 지구의 실체를 까발렸다. 

 

지구는 태양 곁을 맴도는 작은 돌멩이 행성일 뿐이었고, 그런 태양조차 우리 은하를 이루는 수천억 개의 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태양 역시 그리 크지도 멋지지도 않은 흔한 가스 덩어리다. 그러나 천문학이 점점 더 넓은 우주의 지도를 그려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인류는 고향 행성이 특별하기를 바라는 본성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마지막 미련은 지구가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 모른다는 ‘자뻑+희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우주정거장에서 내려다본 보름달 아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야경. ‘지구는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존재하는 특별하고 유일한 지상 낙원이 아닐까?’ 이 생각은 과연 옳은 것일까? 사진=NASA/ISS-043


사실 불과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천문학자들보다 오히려 대중이 지구 바깥 또 다른 우주 어딘가에 생태계가 번성한 별이 즐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훨씬 더 많이 가졌다. 본격적으로 태양계 행성 곳곳으로 탐사선을 날려 보내며 조만간 화성이나 토성 등 다른 행성 주변에서 살고 있는 외계 생태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졌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화성을 비롯한 다양한 태양계 천체를 탐사하면서 우리가 확인한 것은 지구 바깥 다른 행성에서도 물을 비롯한 다양한 유기 물질들이 발견된다는 애매한 데이터들뿐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 태양계의 기원을 더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주 중요한 발견이다. 또 태양계 바깥 다른 별 주변에서도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후보 행성들이 발견되는 것도 아주 흥분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행성이 실제 존재하더라도 당장, 아니 인류가 망하기 전까지 이 행성의 생명체를 확인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당장 살아있는 외계 바퀴벌레라도 확인하고 싶은 다수의 일반 시민에게는 재미없는 연구자들의 이야기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영화나 게임 제작자들의 상상력이 천문학의 발견을 훨씬 앞질러 외계 생명체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은 탓에, 실제 연구자들이 들고 오는 흥미로운 발견마저도 시시한 데이터 쪼가리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태양계 여덟 행성들만 보더라도 우리 지구는 흔치 않은 행운이 겹겹이 찾아와준 덕분에 생태계가 존재하는 멋진 행성이 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태양은 전 우주에서 그리 밝지도 크지도 않은, 오히려 질량으로 따지면 꽤 왜소한 크기를 가진 작은 별이다. 질량이 그리 크지 않은 태양은 순식간에 연료를 다 태우지 않고 100억 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미지근하게 빛나는 작은 별이 되었다. 그 덕분에 주변 행성에게는 생태계가 진화하기에 충분히 긴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 만약 우리 태양이 더 멋지고 밝은 무거운 별이었다면 진작 수금지화 행성들을 모두 집어삼키고 폭발해버렸을 것이다. 

 

게다가 지구는 그런 태양 곁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정말 ‘예술’적으로 절묘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지구가 태양에 더 가까웠다면 훨씬 더 많은 태양빛을 받아 뜨거웠을 것이다. 반대로 더 멀었다면 훨씬 더 차가운 얼음 행성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중심 별에서 딱 적당한 거리를 두고 행성 표면에 물이 모두 증발하거나 얼지 않고 호수와 바다가 존재할 수 있는 적당한 거리 범위를 ‘골디락스 존(Goldilocks Zone)’ 또는 ‘생명거주 가능 구역’이라고 부른다. 사진=NASA

 

일부에서는 바로 이런 미묘한 요소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덕분에 우리 지구에서만 생명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천문학자들의 지속적인 ‘팩트 폭행’으로 인해 공간적 위치의 특별함에 대한 기대는 이제 포기했지만, 고향 행성이 특별한 곳이기를 바라는 우리의 본능적인 미련은 결국 우리 행성 지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소가 아주 미세하게 컨트롤되어야 한다, 즉 미세 조정(Fine Tuning) 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지구의 파인 튜닝을 기대하면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구를 지상 낙원처럼 느끼는 것은 우리가 지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유일한 지상 낙원이 아니다. 지구가 우주의 유일한 지상 낙원이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우리일 뿐이다. 

 

우리가 지구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은 모든 요소 요소가 우리의 번영을 위해 맞춰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종의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적 해석은 굉장히 왜곡된 관점을 심어준다. 

 

이런 주장은 바닷가를 굴러다니는 따개비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만약 따개비 하나가 자신이 하필 오늘의 모습으로 오늘의 위치에서 존재하는 것은 전 우주가 자신의 탄생을 위해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 따개비의 주장을 납득할 수 있을까? 

 

“애초에 우주는 인간을 위해 디자인되지 않았다.” 

-도널드 브라운리(Donald E. Brownlee, 천문학자·‘Rare Earth’ 저자)

 

45억 년 전 태양계 공간을 떠돌던 소행성들이 충돌하던 당시, 반죽 덩어리 지구는 한참 후에 탄생할 작은 영장류들을 고려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 인류는 그저 지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만들어진 부산물 하나에 불가하다. 1억 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룡 ‘선배’들처럼 인류도 그저 잠깐 지구 위에 살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중간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지구는 따개비를 위해서도, 공룡을 위해서도 만들어진 적 없다. 당연히 우리 인간을 위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잠깐 이 행성 위에 존재하다 사라지게 될 인간에게 과연 이 행성을 마음대로 착취할 권리가 있을까? 

 

놀랍게도 이 고향 행성이 자신을 위해 디자인되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당돌한 ‘따개비’들은 이제 고향 행성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이곳저곳을 돌려 깎고 파내는 성형수술을 벌이고 있다. 

 

10여 년 전부터 중동과 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댐과 운하 개발을 통해 강의 흐름을 강제로 통제한 결과 강의 생태계가 파괴되고 기후 변화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보고하며, 그 후유증을 해결하려 뒤처리에 매진하고 있다.[1][2] 2009년 스위스에서는 지열 발전소 개발 과정에서 지진이 인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사례가 보고되었다.[3] 

 

인류는 이제 재해를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인류도 지구에 재해를 일으키는 요소로 ‘자랑스럽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구는 우리를 위해 탄생했으며 우리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과잉된 주인 의식에 빠진 따개비들의 실수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4] 

 

지구는 아름답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지구가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 행성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구가 살기 좋다’는 생각은 지극히 우리 지구인만의 입장이다. 전혀 다른 환경의 행성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에게는 오히려 지구가 살기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다. 지구는 그저 우주에 떠도는 수천억, 그 이상의 작은 암석 행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구는 소중하고 특별하다. 우리가 지금 이곳 지구에 기대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매일을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금 내 곁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이가 특별하고 소중한 것은, 그 사람이 눈에 띄게 예쁘고 이상적인 몸매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지금 나와 함께하고 있는 내 짝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소중하고 특별하다. 결국 가장 포근하고 편안한 안식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뿐일 것이다. 

-‘썸 타는 천문대’(살림, 2016) 중에서 

 

 

인류는 이제 재해를 창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3월 30일, 우리 행성에게 본연의 밤하늘을 돌려주는 ‘지구 시간(Earth Hour)’에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 지난해 펼쳐진 지구 시간 행사 모습. 사진=WWF-Indonesia

 

다가오는 3월 30일에는 한 시간 동안 지구 전역에서 인공조명을 끄고 우리 행성에게 본연의 밤하늘을 돌려주는 ‘지구 시간(Earth Hour)’이 열린다. 한 시간 동안 방과 사무실 안의 전등 불빛을 끄고 잠깐 깜깜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인류가 사라진 지구 본연의 모습을 우리 우주에게 돌려주는 시간에 동참해보는 건 어떨까.[5]

 

[1] https://www.nature.com/articles/srep43289

[2] https://www.nature.com/news/istanbul-canal-needs-environmental-study-1.15981

[3]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4963-y,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4963-y

[4] https://www.sciencemag.org/news/2018/04/second-largest-earthquake-modern-south-korean-history-tied-geothermal-plant

[5] https://www.earthhour.org/marketing-collateral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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