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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을 꿈꾸는 '연애시대'

왜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에 답하다

2019.03.25(Mon) 17:16:28

[비즈한국] 우리는 모두 행복한 삶을 꿈꾼다. 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디스트가 아닌 이상 저마다의 행복을 위해 어떤 방식이든 노력하며 산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직장에 다니고, 열심히 돈을 벌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른다. 혹은 퇴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하거나 운동을 한다. 무엇을 하든 궁극의 목표는 결국 행복한 삶이다.

 

드라마 ‘연애시대’의 주인공들도 행복을 꿈꾼다. 아이를 잃은 충격으로 이혼한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는 헤어졌음에도 분할로 계산하는 위자료나 서로의 잊었던 소지품을 주고받는 핑계로 자주 일상을 공유한다. 결혼식을 올렸던 호텔에서 결혼기념일마다 주는 식사권이 아깝다는 핑계로 만나기도 한다. 마음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하지만, 다시 시작하면 아이를 잃은 상처가 끊임없이 되살아날 것 같다는 생각에 재결합을 주저하는 그들.

 

동진과 은호는 사랑에 빠졌고 행복하고 싶어 결혼했지만 아이를 잃는 슬픔 끝에 헤어진다. 바닥을 보지 않아서일까? 그들은 헤어지고 2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다. 기혼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바닥을 봤어도 부부로 살았던 이들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 짠함을 가질 거라고는 하더만. 사진=SBS 홈페이지

 

동진과 은호 주변 인물들도 행복을 꿈꾼다. 동진의 친구인 산부인과 의사 준표(공형진)는 동진과 은호를 다시 이어주려 애쓰는데, 그가 의사 생활 처음 아이를 잃은 것이 동진과 은호의 아이였다. 그 후 분만 때마다 구토하거나 기절하는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에, 동진과 은호를 이어주려는 그의 노력은 어쩌면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물 공포증을 이기고자 계속 수영장에 다니는 윤수(서태화)나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괴로워하던 자신을 우연히 달래준 은호에게 특별한 마음을 가지게 된 현중(이진욱), 남자에게 여러 번 상처 받았지만 계속 남자를 만나고 사랑을 꿈꾸는 미연(오윤아), 엄마인 미연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동진에게 자신의 아빠가 되어 달라는 일곱 살 난 아이 은솔(진지희), 학창시절 좋아했던 동진을 동창회에서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된 유경(문정희) 등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저마다 꿈꾸는 행복이 있다. 

 

비록 추구하는 그 행복들이 충돌하면서 누군가는 상처를 입고 아파하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행복을 꿈꾸는 건 당연하고, 자신의 행복을 지키려는 것은 본능적인 움직임이니까.

 

손예진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임에도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아이를 잃고 사랑에 아파하는 이혼녀 은호를 훌륭하게 연기해 눈길을 끌었다. 열리지 않는 피클병을 내던지며 속내를 드러내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신. 사진=SBS 홈페이지

 

그래서, ‘연애시대’의 인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행복해지는 방법은, 진부하지만 결국 사랑이다. 드라마 속 동진도 말하지 않았나.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1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내는 게 아니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라고,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라고. 어른에게 장래희망이 연애가 아닌 퇴사가 되어버린 2019년을 살고 있는 지금은, 30대 초반의 동진이 벌써부터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된 것처럼 구는 것이 적잖이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시간이 흘러도 그 진의는 여전하다. 사랑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

 

물론 모든 것에 이면이 있듯, 사랑에는 행복만 있는 건 아니다. ‘연애시대’ 사람들도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한다. 은호가 내레이션으로 읊었듯 사랑은 시작할 때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엉켜 아프고 시작한 후에는 그 사람의 마음을 모두 알고 싶어서 부대끼고 사랑이 끝날 땐 그 끝이 같지 않아서 상처받는다. 

 

그래서 은호는 동진에게 친구 미연을 소개해 준 뒤 후회하고, 동진이 유경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재혼하는 모습을 보며 상처 받고 눈물 흘린다. 은호를 사랑하게 된 윤수가 4년간 별거하던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자 자살을 시도했던 아내 영인도 사랑의 상실에 상처 받은 케이스. 결국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동진과 은호 때문에 상처 받는 유경은 또 어떻고.

 

은호 동생 지호를 연기한 이하나는 놀랍게도 이 드라마가 데뷔작이다. 연기 경험이 없음에도 백수에 괴짜 4차원인 지호를 잘 소화하고 준표 역의 공형진과도 발랄한 케미를 선보여 동진-은호 커플만큼 지지를 받았다. 사진=SBS 홈페이지

 

사랑은 참으로 요사스럽지 않나. 은호의 바람처럼 월하노인이 딱 운명의 상대를 정해 빨간 실로 엮어주는 것도 아니니 끊임없이 운명의 상대인지, 계속 사랑해 나갈 상대인지 온몸으로 부딪혀 상대해야 한다. 달콤하지만 그만큼 쓰라리고 처절하기도 하다. 어디서부터가 사랑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며, 솔직해야 하는 순간에 망설이게 되고, 나이가 들면 확실해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고,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좋은 사람이면 사랑이 쉬울 것 같지만 또한 사랑은 이기적이라, 다른 사람의 행복까지 챙기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사랑은 놓칠 수도 있다. 이렇게 세상 복잡하고 불편한 것 같은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꾼다. 동진과 은호처럼, 준표와 지호처럼, 미연과 새로 만나는 남자처럼, 상처를 딛고 다시 나아가보려는 윤수와 영인처럼.

 

우연한 기회에 은호에게 응원을 받고 특별한 마음을 갖게 된 현중을 연기한 이진욱도 이 작품으로 많은 이의 눈도장을 찍었다. 사진=SBS 홈페이지

 

헤어진 부부가 다시 시작한다는, 어른들의 연애담 같은 ‘연애시대’는 온갖 파고를 넘어 동진과 은호가 재결합한 모습을 비추지만 섣불리 해피엔딩을 말하진 않는다. 대신 ‘언젠가 변해버릴 사랑이라 해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처럼’ 사랑을 하라고 권한다. 라디오 상담을 하는 목사인 은호 아버지 기영(김갑수)의 말처럼, 내가 행복해져야만 이 세상도 행복해지므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 행복해지라고 말한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연애시대’는 ‘사랑의 바이블’이라 해도 좋을 만큼 사랑과 인생에 대한 명언이 넘치도록 흘러 나도 모르게 곱씹게 만든다. 감우성과 손예진의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와 공형진과 이하나의 발랄한 케미가 사랑스럽고, 어린 진지희의 장면 장면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격렬하고 뜨겁게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연애보다 퇴사와 한량이 장래희망인 축 처진 어른이 다시금 사랑을 꿈꾸게 만드는 마성의 힘을 지녔다.

 

은호 친구 미연의 딸인 은솔이 옆집 사는 동진과 실전화로 대화하는 장면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잘 웃지도 않고 귀엽지도 않지만 노력할 테니 아빠가 되어달라는 이 소녀의 말을 누가 외면할 수 있으랴. 진지희는 어린 나이에 어린 나이답지 않은 연기로 시청자를 울리고 웃게 만들었다. 사진=드라마 캡처

 

그러니, 사랑합시다. 이미 사랑을 찾은 사람은 그 사랑을 더욱 소중하게, 사랑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최근에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유튜브에 있다는 걸 깨달은 후 신대륙을 탐험하는 모험가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중이다.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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