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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전쟁] 상권 역학의 변화와 '유동인구의 함정'

비즈니스 자체의 힘으로 만든 상권에 옛 임대료 공식 적용하면 오래 못 가고 황폐화

2019.03.05(Tue) 10:25:33

[비즈한국] 상권은 임대인의 건물과 그 건물을 채우는 사업가의 비즈니스 그리고 소비자로 구성된다. 사업가는 비즈니스를 통해 상권을 찾는 소비자로부터 매출을 발생시키며, 임대인은 자신의 건물에 임차한 사업가의 매출 중 일부를 임대료로 거둔다. 소비자의 소비 행위가 사업가와 임대인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때문에 상권의 수익을 결정하는 요소는 유동인구에 달려 있다. 상권의 수익이 높다는 것은 임대료 또한 높다는 의미이므로 유동인구는 임대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상권 관련 연구를 살펴보면 임대료와 유동인구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전통적으로 유동인구라는 단일 요소로 상권을 평가해왔고 임대료 또한 책정돼 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계획 변경 외에는 유동인구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비즈니스 자체의 힘으로 유동인구를 불러모으는 능력이 생겼다. 그러나 건물주들이 유동인구에 따른 임대료를 적용하면서 이 상권들은 몇 년 가지 않아 쇠락하게 됐다. 서울의 한 골목길 풍경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고성준 기자


일반적으로 유동인구는 단기적으로 크게 변동하지 않으므로 수익과 임대료는 균형을 이룬다. 이 균형이 깨지는 것은 유동인구의 변동을 일으키는 이벤트가 발생하거나 혹은 그런 이벤트가 기대될 때다. 지하철역 신설과 같은 대중교통의 변화나 대규모 주거단지의 건설, 오피스의 증가, 공원 등의 건설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에는 이런 물리적 환경의 변화가 유동인구의 변동을 일으키는 유일한 요소였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들은 소비자를 끌어들일 만한 집객력을 가지지 못했다. 소비자들의 인식에서나 실제로나 대량생산되는 기업의 제품들은 개별 사업자들이 만드는 것보다 더 나은 제품이었고 좀 더 고급품으로 평가받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이러한 환경은 변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은 차별화된 상품을 원하기 시작했고 이에 걸맞게 비즈니스의 수준도 크게 올라 질적 측면에서 대량생산품들을 넘어서는 상품들이 등장했다. 소비자들은 충분히 가치 있는 상품에 돈을 쓰기 위해 일부러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즉 유동인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비즈니스들이 탄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비즈니스들은 특정 지역에 클러스터를 이루고 시너지를 내며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집객력을 더욱 높였고 그들이 운영하는 비즈니스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더 이상 물리적 환경만이 유동인구를 좌우하지 않는다. 상권에 들어선 비즈니스의 질과 다양성도 유동인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 요소로 떠올랐다.

 

그러나 점진적 변화를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이전까지만 해도 유동인구의 변화는 물리적 변화에 기인한 것이었기에 비즈니스로 인한 유동인구의 변화를 전과 다른 변화라 인식하지 못했고 임대료에 유동인구의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과거의 시각에서 보면 비즈니스는 지역이 만든 유동인구에 의지할 뿐이지 스스로 유동인구를 끌어오지 못하므로 상권 내 유동인구의 증가는 지역의 환경적 변화로 인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든 비즈니스는 업종과 아이템에 따라 수익의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임대료의 변화는 입점한 비즈니스의 변화를 부르게 된다. 비즈니스가 유동인구를 창출하는 상황에서 임대료의 변화를 주는 경우 그만큼 비즈니스가 영향을 받게 되고 그 변화는 결국 유동인구의 변화로 연결된다. 임대료의 변화 자체가 유동인구의 변화를 일으키므로, 과거처럼 표면적인 유동인구를 기준으로 임대료를 결정했다간 그 임대료는 잘못 책정된 것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에 비즈니스를 통해 유동인구를 유입시킨 ‘뜨는 상권’에서는 잘못된 임대료가 책정됐고, 그 결과 비즈니스의 이탈과 더불어 유동인구의 이탈이 지역에 따라 발생했다.

 

여기에 더해 훨씬 느리게 진행된, 보이지 않는 더 큰 변화가 있었다. 유동인구의 소비성향 변화다. 유동인구는 이제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하고 있다. 그만큼 유동인구로부터 매출을 이끌어내기가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상권의 가치를 상징하던 유동인구의 대표성은 더욱 낮아졌다. 이러한 변화는 비즈니스들의 유동인구 집객력 확보와 기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진행됐고 유동인구에 기반한 임대료 산정의 결과를 더욱 왜곡시키고 말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부작용)을 염려하고 걱정해왔다. 젠트리피케이션, 그 중에서도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은 상권의 임대료 변화와 그로 인한 비즈니스 믹스 변화를 뜻한다. 이 비즈니스 믹스 변화 과정에서 최초로 진입하여 상권의 유동인구 변화를 이끈 비즈니스들이 제대로 수익을 거두기 전에 내쫓기는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에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가 걱정하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였다.

 

하지만 상권의 변화를 이끌던 역학관계가 변화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젠트리피케이션 이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인기를 잃고 비즈니스가 떠나고 유동인구가 떠나면서 다시 과거의 고요한 분위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바뀐 것은 새롭게 짓거나 리모델링한 건물밖에 없다. 황량함과 쓸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앞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이러한 상권의 역학에 대한 무지로 인한 도시의 황폐화가 될지도 모른다.

 

필자 김영준은 건국대학교 국제무역학과를 졸업 후 기업은행을 다니다 퇴직했다. 2007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바비’란 필명으로 경제블로그를 운영하며 경제와 소비시장, 상권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기를 모았다. 자영업과 골목 상권을 주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 등에 외부 기고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 ‘골목의 전쟁’이 있다.​ ​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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