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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물수제비의 추억과 소행성 '울티마 툴레'

뉴허라이즌스가 발견한 태양계 외곽 천체, 기존 천문학으론 설명할 수 없는 모양

2019.02.19(Tue) 13:39:38

[비즈한국] 필자의 외가는 바닷가에 있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외가에 방문하면 사촌 형제들과 함께 바닷가로 놀러가곤 했다. 그때마다 사촌 형은 내 앞에서 멋지게 물수제비 쇼를 보여주었다. 형이 던진 돌멩이는 수면 위에서 최소 다섯 번 이상은 튀며 멀리까지 나아갔다. 도시 촌놈인 나는 무슨 수를 써도 단 한 번도 돌멩이를 수면 위에 튕길 수 없었다. 손에 잡히는 모든 돌멩이를 수면 위로 튕겨 보내는 사촌 형의 멋진 모습을 마냥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나의 ‘똥손’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사촌 형이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비결은 근육이나 손목의 움직임이 아니라, 바로 돌멩이 그 자체에 있었다. 최대한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마치 프리스비 원반을 던질 때처럼, 납작한 면이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도록 스핀을 주어야 한다.[1] 형이 알려준 비결을 참고해 돌멩이를 찾아 다시 힘차게 바다를 향해 던졌다. 나는 여전히 물수제비를 할 줄 모른다. 

 

잔잔한 수면을 튕기면서 멀리 나아가는 돌멩이의 모습. 물수제비 공식 기네스 기록은 88회로 커트 “산 남자” 스테이너(Kurt “Mountain Man” Steiner)가 보유하고 있다. 그가 꼽은 물수제비를 잘하는 가장 중요한 노하우는 바로 납작한 모양의 돌멩이다. 사진=Killy Ridols/위키미디어


사실 물수제비에 딱 맞는, 둥글고 납작한 돌멩이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돌멩이는 대부분 오랜 세월 바닷물에 실려 다른 돌멩이들과 이리저리 부딪히는 풍화·침식 작용을 거치면서 거의 공 모양에 가깝게 둥근 모습으로 마모된다. 구슬처럼 둥글둥글한 조약돌들 사이에 숨어 있는 호떡처럼 둥글납작한 좋은 돌멩이는 흔치 않다. 

 

지구의 바닷가에서 도저히 물수제비에 적합한 납작한 돌멩이를 찾지 못했다면, 아예 지구 바깥 우주로 눈을 돌려보면 어떨까? 훨씬 더 넓은 우주에서는 납작한 돌멩이를 더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약 50억 년 전, 태양계가 갓 형성되었던 초기에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한가득 우주를 부유했다. 이 돌멩이들은 중력에 의해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서서히 다가가며 뭉치고 반죽되어 갔다. 중력은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작용하는 힘이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중력에 이끌려 성장하는 초기 행성체 ‘플레네테시멀(Planetesimal)’이 한쪽으로 크게 찌그러지거나 납작한 모습이 되기는 어렵다. 산비탈을 따라 굴러 내려온 거대한 눈 덩어리가 결국 둥근 공 모양이 되는 것처럼 행성도 결국 공 모양이 된다. 둥근 지구도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거대한 조약돌’인 셈이다. 

 

이런 돌멩이들이 충돌한 흔적은 태양계 바깥 가장자리에 나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태양계 안쪽은 거대한 행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면서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끝난 (비교적) 평화로운 상태인 데 비해, 태양계 외곽에서는 미처 거대한 행성으로 모이지 못한 작고 안쓰러운 부스러기들이 아직도 계속 떠돌고 있다.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 얼음 부스러기들에는 돌멩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태양계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돌 잔치’의 추억이 고스란히 얼어서 보관되어 있다.

 

명왕성 주변부터 펼쳐지는 이 크고 작은 소천체 부스러기들의 영역을 카이퍼 벨트(Kuiper Belt)라고 한다. 이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떠돌고 있는 돌멩이와 얼음 조각들은 약 50억 년 전에 있었던 태양계 ‘돌 잔치’의 여흥을 아직도 즐기고 있는 얼음 화석, 얼음 타임캡슐인 셈이다.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의 첫 생일을 목격하고 즐겼을 이 파티 참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 이 머나먼 왕국으로 사절단을 보냈다. 그렇게 2006년 그랜드피아노만 한 크기의 태양계 가장자리 탐사선 ‘뉴허라이즌스(New Horizons)’가 지구를 떠났다. 

 

무려 13년 만인 올 1월 1일, 뉴허라이즌스는 값진 새해 선물을 안겨주었다. 드디어 인류 최초로 명왕성보다 더 멀리 있는 카이퍼 벨트 소천체 곁을 날아가며 그 생생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낸 것이다! 

 

뉴허라이즌스가 작은 소행성 2014MU69에 빠르게 접근하면서 포착한 것은 마치 눈사람처럼 크고 작은 두 개의 둥근 돌멩이가 착 붙어 있는 모습이었다. 천문학자들은 눈사람의 얼굴에 해당하는 작은 조각을 툴레(Thule), 눈사람의 몸통에 해당하는 큰 조각을 울티마(Ulitma)라고 이름 붙였다. 둘이 합치면 울티마 툴레(Ultima Thule). ​태양계 가장자리에 있는 눈사람 모양의 돌멩이는 ‘알려진 세상 너머’라는 멋진 풀네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 눈사람 같은 모습이 태양계 초기 벌어졌던 소천체들의 충돌 증거라고 생각했다.[2]

 

뉴허라이즌스가 처음으로 보내온 울티마 툴레의 모습. 천문학자들은 두 개의 작고 둥근 소행성이 맞부딪치면서 눈사람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울티마 툴레는 전반적으로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사진=NASA/Johns Hopkins Applied Physics Laboratory/Southwest Research Institute; Color Processing: Thomas Appéré​​


하지만 울티마 툴레는 놀라운 반전을 숨기고 있었다. 2월 초 뉴허라이즌스가 뒤이어 보내온 새로운 데이터는 천문학자들을 당황시켰다. 탐사선이 뒤늦게 지구로 보내온 두 번째 사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의 울티마 툴레가 담겨 있었다.

 

2019년 1월 1일 뉴허라이즌스가 울티마 툴레를 가장 가까이서 지나가고 10분 후, 약 8862km 거리에서 탐사선이 담은 울티마 툴레의 모습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소천체의 모습을 정확하게 담기 위해 10여 장의 사진을 모아 만든 영상이다. 태양을 등지고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으로, 태양빛을 받은 얇은 옆면만 밝게 보인다. 영상=NASA/JHU's APL/SwRI​/National Optical Astronomy Observatory

 

울티마 툴레는 둥근 돌멩이 두 개가 충돌하면서 맞붙어 있는 조랭이떡 또는 눈사람 모양의 천체가 아니었다. 새롭게 밝혀진 울티마 툴레의 모습은 납작한 빈대떡 두 개가 쟁반 위에 붙어 있는 것 같은 정말 이상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이 납작한 이중 빈대떡 형체는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회전한다. 납작하고 커다란 돌멩이, 그리고 납작한 면이 하늘을 향하고 빠르게 회전하는 돌멩이.[3] 

 

사촌 형이 이야기했던, 물수제비를 하기에 최고로 좋은 그 돌멩이가 드디어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발견된 것이다!

 

뉴허라이즌스가 관측한 데이터를 토대로 구현한 울티마 툴레의 3D 입체 구조. 빨간 화살표는 울티마 툴레가 회전하는 회전축을 나타내며, 파란 점선은 아직 관측으로 확인되지 않은 불확실한 영역을 나타낸다. 사진=NASA/JHU's APL/SwRI

 

새 데이터로 재현한 울티마 툴레의 진짜 모습. 처음에는 둥근 덩어리 두 개가 붙은 눈사람 모양으로 생각했지만, 옆에서 보면 아주 납작한 두 원반이 붙어 있는 독특한 구조다. 영상=NASA/JHU's APL/SwRI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충돌하면서 태양계 천체 대부분이 빚어졌을 것이라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이 이상한 모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토성의 납작한 고리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한 납작한 소천체들이 가끔 발견되기는 하지만, 울티마 툴레는 토성 고리가 아니라 태양계 가장자리 우주 한복판에서 발견된 천체다. 따라서 울티마 툴레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대체 어쩌다 울티마와 툴레가 물수제비 하기 딱 좋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하필이면 둘이 아슬아슬하게 얇은 면으로 붙어서 바람개비처럼 돌게 되었는지는 이제 현대 천문학자들의 새로운 수수께끼가 되었다. 몇몇 익살스러운 천문학자들은 이 이상한 모습의 울티마 툴레가 멀리 태양계를 염탐하고 있는 외계인들의 우주선일지도 모른다는 재밌는 망상을 던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독특한 모습의 태양계 가장자리 천체는 내게 어릴 적 사촌 형과의 추억을 떠올려 주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 갓 태어난 어린 천체들로 출렁거리는 태양계의 수면 위로 누군가 힘차게 내던진 우주급 물수제비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뉴허라이즌스의 탐사를 통해 한 가지 확실히 확인한 것은 바로 태양계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태양계는 모든 과정이 다 끝난 완성품이 아니다. 

 

아직도 태양계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소천체들이 부딪히며 충돌의 역사를 이으며 새로운 큰 행성으로 데뷔하기 위한 애잔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태양계 가장자리에서 그 살아 있는 태양계의 생생하고 낯선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과거의 천문학 이론에 새로운 주석을 추가하게 되었다. 

 

우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우주는 지금껏 완성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생생한 우주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우주를 이야기하는 우리의 천문학 역시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태양계처럼 완성되기 위해 영원히 성장하고 변화할 뿐이다.

 

[1] https://www.nature.com/articles/ncomms10551

[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0006-2 

[3] https://science.nasa.gov/new-data-ultima-thule-surprisingly-flat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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