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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야행] 설맞이 장도 보고 동네 구경도 하고, 망리단길

싸고 맛있는 망원시장, 골목엔 개성 넘치는 카페…편안하고 소소한 재미 가득

2019.02.01(Fri) 16:40:14

[비즈한국]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화두가 된 시대. 지난 7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많은 직장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맞았다. 그들을 위해 퇴근 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는 먹거리, 놀거리, 즐길거리를 소개한다.

 

망리단길은 어쩌면 부러 찾아가지 않아도 좋을 길이다. 뭔가 이색적인 분위기나 독특한 가게들을 탐험하고 싶은 나들이라면 차라리 성수동이나 을지로 3가를 권하겠다. 망리단길은 그저 근처를 지나다가, 혹은 망원시장에서 장을 볼 겸 들르면 좋을 골목이다. 남의 동네를 잠시 엿보는 기분으로, 거기에 호기심을 끄는 작은 가게에서 커피를 한잔하거나 간단히 요기를 하며 지나가도 좋을 길. 망리단길은 90년대 동네 분위기를 그대로 풍기는, 편안하고 또 아무렇지도 않은 길이다.

 

망리단길은 남의 동네를 잠시 엿보는 기분으로, 호기심을 끄는 작은 가게에서 커피 한잔하거나 간단히 요기를 하며 지나가도 좋을 길, 혹은 망원시장에서 장을 볼 겸 들르면 좋을 골목이다. 사진=이송이 기자


6호선 망원역 2번 출구로 나와 망리단길까지 가려면 시장을 방불케 하는 번잡한 길을 1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자전거를 씽씽 달리는 아주머니와 물건을 밖으로 빼놓고 파는 가게들, 거리의 잡화상과 동네 주민들이 바쁘게 오가며 아파트촌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사는 맛’ 나는 동네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5~10분쯤 걸어가다 보면 망원시장이 나온다. 망원시장을 먼저 구경하다가 시장 중간중간 나 있는 게이트를 따라 밖으로 나서면 망리단길이다. 

 

망원시장은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싼’ 시장이 아닐까 싶다. 쌈배추가 2개 1000원, 작은 고구마 한 망이 1000원, 벌교꼬막이 1kg에 4000원, 아보카도는 4개에 5000원,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딱히 장을 볼 생각이 아니었어도 자꾸 주섬주섬 뭔가를 사게 된다. 마포구에서 만들고 마포구에서만 판다는 ‘공덕동 막걸리’도 집어든다. 족발과 껍데기를 파는 시장통 가게에서 먹는 공덕동 막걸리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시그니처다.  

 

망원시장은 아마도 서울에서 가장 ‘싼’ 시장이 아닐까 싶다. 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딱히 장을 볼 생각이 아니었어도 자꾸 주섬주섬 뭔가를 사게 된다. 사진=이송이 기자


여느 재래시장이 그렇듯 망원시장 안에서도 갖가지 소소한 간식을 즐길 수 있다. 바로 튀겨주는 한과를 비롯해 ‘수요미식회’와 ‘나 혼자 산다’ 등 TV 예능프로그램 덕분에 너도나도 찾는 닭강정과 수제 고로케도 먹어볼 만하다. 길게 줄 서는 맛까지야 모르겠다고 해도 시장에서 줄을 서는 건 가끔 호기심 너머의 생생한 재미를 준다. 줄을 서는 건 단순히 간식거리를 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도너츠가 반죽되어 튀겨지고 설탕을 입고 종이봉투에 담기기까지의 과정이나 그런 과정들을 담담하게 해내는 손 빠른 주인이나 또 그걸 기다리는 달뜬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서 시장의 시간과 우리들의 삶을 엿본다. 

  

망원시장은 제 혼자 명절을 맞은 듯 인산인해다. 캐리어를 끈 할머니부터 바리바리 비닐봉지를 든 아주머니와 그 속에서 호떡이나 도너츠를 입에 물고 눈을 반짝이며 시장 구경에 여념 없는 젊은 커플들까지, 시장에는 활기 이상의 싱싱함이 흐른다. 

 

시장에 활력이 넘쳐서일까. 깨끗하게 단장된 망원시장은 그 자체로 젊은 느낌이다. 지붕이 있는 ​500여 미터의 ​아케이드는 너무 춥거나 비 오는 날에도 망원동 나들이를 부담 없이 나서게 한다. 날 궂은 저녁이나 주말이라면 쇼핑몰이나 극장 같은 실내를 벗어나 안도 바깥도 아닌 시장의 아케이드로 데이트를 나서봄 직하다. 

 

깨끗하게 단장된 망원시장은 그 자체로 젊은 느낌이다. 지붕이 있는 ​500여 미터의 ​아케이드는 너무 춥거나 비 오는 날에도 망원동 나들이를 부담 없이 나서게 한다. 사진=이송이 기자


시장을 벗어나면 시끌벅적하던 길은 갑자기 잔잔해진다. 포은로를 중심으로 뻗어 있는 망리단길 곳곳에 인스타그램과 맛집 앱에 등장했던 ‘그 가게’들이 골목골목 숨어 있다. 

  

90년대 다닥다닥 붙은 신촌과 이대의 번화한 거리에서 2000년대 초 홍대와 합정으로 옮겨온 상권은 2010년대 들어 다시 상수와 연남으로 갈라졌고 2015년부터는 망원까지 뻗어 나왔다. 임대료 ​낮은 ​곳을 찾아, 혹은 과도한 경쟁에 치이지 않는 조금 한가한 곳을 찾아 망원동에 자리를 잡은 가게들. 취업 대신 장사를 선택하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어든 젊은 자영업자들의 가게들은 점점 더 자기만의 개성을 살린 예쁘고 독특한 곳으로 또래의 입맛을 맞추며 SNS를 통해 확산됐다.

 

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인 망리단길. 동네이름 첫 글자 뒤에 왜 하필 ‘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태원의 경리단길은 다세대 주택과 단독주택 등이 밀집한 일반 주거 지역에 하나둘 의외의 가게들이 생기면서 골목상권을 형성했다. 그래서 대개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옛날 상가나 주택을 개조해 작고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면 사람들은 그 골목에 ‘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리단길이 붙은 골목들은 식당이나 카페, 펍 등이 일렬로 몰려 있지 않다. 차가 다니는 대로에 눈에 띄게 자리한 가게도 있지만 주택이 있는 골목을 파고들어 보일락말락하게 자리한 예쁘고 독특한 가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찾는 재미가 있고, 찾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의외의 매력도 있다.  

 

주택가 골목을 파고들어 보일락말락하게 자리한 예쁘고 독특한 가게들. 그래서 찾는 재미가 있고, 찾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의외의 매력이 있다. 뉴트로 분위기 물씬 나는 카페 ‘우아하게’. 사진=이송이 기자

 

사람보다 햇볕이 주인공일 것 같은 카페 ‘광합성’, 줄을 길게 늘어서는 게 예사인 튀김 덮밥집 ‘이치젠’, 다양한 양조장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전통주점 ‘복덕방’, 간판과는 반대로 멋진 남자가 있을 것 같은 ‘추남’, 저렴하게 해산물 한 상을 먹을 수 있는 ‘오복수산’, 수제 햄버거로 이름난 ‘행벅식당’, 죠리퐁당스무디가 있는 카페 ‘호시절’, 뉴트로 분위기 물씬 나는 카페 ‘우아하게’, 동네 베트남 식당 ‘프롬 하노이’ 등 작은 카페와 식당과 펍이 요리조리, 오밀조밀 위치한다. 테이블이 적은 가게들은 금세 자리가 차버린다.

 

여기저기의 맛집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식당은 지중해식 요리를 내는 ‘​보라초’​,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내는 ‘​빙하의 별’​, 낮에는 커피 저녁엔 파스타를 즐기는 ‘​등산’​, 푸아그라 소시지 같은 실험적인 메뉴를 개발하는 ‘​문인더랩’​, 장소는 소박하나 음식은 맛깔난 ‘​미자카야’​, 홋카이도식 소유라멘의 ‘​라멘베라보’​, 버터치킨 커리가 맛있는 ‘​주오일식당’​ 등 이다. 여기저기에 ‘카모메 식당’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가게들이 시선을 잡는다. 

 

골목골목 작은 카페와 식당, 펍, 소품숍이 요리조리, 오밀조밀 위치한다. 테이블이 적은 가게들은 금세 자리가 차버린다. 피규어 카페 ‘비바살롱’. 사진=이송이 기자


또 가게 안을 인형들로 가득 채운 소품숍 ‘초이상점’과 인도네시아 소품숍 ‘브라와’, 피규어 카페 ‘비바살롱’, 직접 향수를 블렌딩해 구입할 수 있는 ‘로매지끄’, 셀프 사진관 ‘자화상 스튜디오’ 등은 거리를 거닐다 안으로 들어가 구경하고 싶어지는 가게들이다. 이 길을 찾는 외지인도 꾸준하다. 젊다고 하기엔 아직 어린 데이트족들과 삼삼오오 떠들썩한 20대 여자친구들이 카페를 점령하고 거리를 서성인다.      

 

망리단길에서 10분 정도만 걸어가면 망원 한강공원도 만난다. 날이 좋다면 만인의 공원인 한강공원에서 밴드 ‘장미여관’의 보컬 육중완처럼 치맥을 곁들이며 기타라도 튕겨볼 일이다. 

 

망리단길은 천양희 시인의 시 ‘오래된 골목’을 떠오르게 한다.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셀프 사진관 ‘자화상 스튜디오’. 사진=이송이 기자


망리단길은 천양희 시인의 시 ‘오래된 골목’을 떠오르게 한다. ‘높은 것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낮은 지붕들이 중얼거린다. 나는 잠시 골목 끝에 서서 오래된 것은 오래되어서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골목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다고’. 

 

화려한 불빛을 좇다가도 가로등이 켜지는 어두운 뒷골목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소시민처럼, 망리단길은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껏 가슴을 펴고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오래된 거리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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