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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 경제팩트] 미국은 왜 '세계 경찰'을 그만뒀나

소련 붕괴, 셰일오일 생산 등으로 실익 사라져…우리도 실리적으로 대응해야

2019.01.28(Mon) 09:52:46

[비즈한국]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고통이 중국은 물론 한국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의 수출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4.4% 줄어들었으며, 한국의 1월 1~20일 수출도 14% 넘게 감소했다.

 

한국과 중국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성장한 나라들은 미국의 태도 변화로 인해 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이후 미국은 일본과 독일 등 패전국에게도 자국시장의 문을 개방하는 한편, 모든 해상 운송을 보호하는 이른바 ‘세계의 경찰’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왜 트럼프 취임 이후 지난 70여 년 동안의 성취를 뒤로하고 다시 문을 닫아 걸기 시작했을까?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 지역에 있는 수많은 석유 시추 장치들. 이 지역에서는 셰일 오일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최근에 읽은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의 저자 피터 자이한은 ‘셰일 오일 혁명’에 정책 기조 변화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공간적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셰일 에너지의 특징은 전통적인 형태의 에너지들과 비교해볼 때 그것이 생산되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중략) 세계 주요 석유·천연가스 매장지는 시베리아, 페르시아만,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대륙붕, 나이지리아, 흑해, 멕시코만 같은 곳에 집중되어 있다. 하나같이 기술적으로, 정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다. -책 192~193쪽

 

그러나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 지역은 전혀 다르다. 전통적인 석유·천연가스는 인구밀도가 낮으며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곳에서 생산된 반면, 셰일 오일은 경제와 산업의 중심지에 직접 연결된다는 차이가 있다. 

 

첫째, 전통적인 에너지 매장 지역과 셰일 매장 지역은 거의 겹치지 않는다. (중략) 둘째, 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을 수놓는 “불빛”, 즉 인구 밀집 지역은 거의 모두 셰일 매장 지역과 일치하거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 에너지 공급망의 안전을 보장해주던 역할을 해왔는데, 더 이상 이 역할을 통해 미국이 얻을 실익 없다는 뜻이다. -책 196쪽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석유 생산량. 자료=블룸버그


피터 자이한의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미국이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한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하나는, 독일을 스탈린그라드에서 쳐부순, 세계 최강의 육군을 지닌 소련의 위협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소련에 직접 맞서 싸우기보다 독일이나 일본 등 소련과 맞닿아 있는 나라들을 키워 ‘방어막’으로 쓰는 게 훨씬 더 이익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석유 생산국으로부터 선진국으로 이어지는 수송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유 모두 사라졌다. 

 

1990년을 전후해 소련이 몰락하고 여러 국가로 해체됨에 따라, 소련을 제어하기 위해 다른 동맹국을 적극 키우고 육성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더 나아가 셰일 오일 혁명 덕분에 에너지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짐에 따라 석유 수송로를 지키는 데 열의를 가질 이유가 없어졌다.

 

물론 중국산 저가 공산품이 미국의 물가를 안정시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글로벌 자유 무역을 통해 미국도 큰 이익을 누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피터 자이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내수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2008년 현재 미국 GDP(국내총생산)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14%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1/3인 5%가 에너지다. 지난 6년 동안 셰일은 이 5%를 절반으로 줄였는데, 이 수치는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어 결국 0이 된다. GDP에서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의 또 다른 1/3은 북미 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이 차지한다. -책 224쪽

 

미국 GDP 대비 수입 비중(%). 음영으로 표시된 부분은 전미경제분석국(NBER)이 불황으로 판정한 국면이다. 자료=미국 세인트루이스 연준


캐나다와 멕시코 등 국경이 맞닿아 있는 나라를 제외한, 그리고 비(非) 에너지 제품의 수입은 미국 GDP의 단 5%에 불과하니, 미국으로선 수입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공급 사슬망을 해외로 이전한 데 따른 실익도 점차 줄어들지 않냐는 것이 자이한의 지적이다. 

 

북미 외의 지역에서 수입되는 제품의 의존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브레튼우즈 체제에서는 공급 사슬이 길고 얇아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낮은 관세 덕분에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는 부품들은 수백여 공급자들로부터 조달해도 상관 없었다. (중략) 그러나 중국의 임금이 10년 사이에 여섯 배 뛰면서, 중국을 약속의 땅으로 여기던 제조업체들은 대거 중국을 떠났다. (중략) 

 

그 결과 공급 사슬이 단축되고 미국은 이미 장악한 고부가가치 산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이런 산업들은 미국 시장 가까이 있고 설계에서 재료, 부품 교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다른 나라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다. -책 225쪽

 

이 책 ‘21세기 미국의 패권과 지정학’은 미국 현지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14년에 발간되었다. 결국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적 행동은 중국의 공세적 행동에 대한 반작용일 뿐만 아니라, 경제·정치적 환경이 꾸준히 변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설명에 흠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건설되어 있는 공급 사슬망은 워낙 촘촘하기에, 일거에 이 생산망을 버리기에는 그간 투입된 자원이 워낙 크다. 더 나아가, 중국의 임금이 상승했음에도 중국의 대중 수출물가는 지난 15년간 단 1%도 상승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마존을 비롯한 거대한 전자상거래 기업들은 유통 효율화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값싸고 품질 좋은 물건을 대거 유입시키는 통로로 기능하는 중이다. 

 

따라서 자이한의 지적은 부분적으로는 과장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지적에서 새겨들을 것이 매우 많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셰일 오일 혁명이 더 진전됨에 따라 미국이 중동의 현안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고, 최근 미국이 시리아에서 철군을 결정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우리도 미국과의 관계에서 ‘전통적인 관례’를 기대하기 힘들어졌음을 인정하고, 미국의 국가 이익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실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홍춘욱 이코노미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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