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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건 씨 마르자 대형 로펌에 벌어진 일

수임 위해 프레젠테이션 '필수' 그동안 기피하던 개인 사건도 '덥석' 생존경쟁 치열

2019.01.23(Wed) 13:32:15

[비즈한국] 최근 대형 로펌(법무법인)들 사이에서 “큰 수사가 없어 죽겠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온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동부지검 등 검찰의 핵심 수사 인력들이 로펌에 돈이 되는 대기업이 아니라, 사법부나 김태우 전 청와대 감찰반원 발 수사 등에 투입됐기 때문. 자연스레 로펌들과 변호사 업계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변화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대기업을 향한 새로운 영업 문화와 개인 사건 선임 급증 등이 바로 그 변화의 대표적 모습들이다.

 

최근 검찰의 대기업 관련 수사가 줄어들자 대형 로펌의 영업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대형 사건 때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마련된 마이크와 포토라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PPT로 대기업에 ‘변론 전략 브리핑’ 

 

“최근에는 기업을 상대로 하는 변론 전략 PPT(프레젠테이션)가 당연해지고 있습니다. 변화라면 변화죠.”(4대 로펌 관계자)

 

수년 전만 하더라도, 대기업 등의 자문을 맡거나 검찰 수사 등에 변호인으로 선임될 때는 대기업 내 법무라인(주로 법무실)과의 인맥이 가장 중요했다. 대학이나 검찰, 법원 선후배가 법무실장으로 있을 경우 네트워크를 앞세워 선임을 따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서서히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국내 굴지의 대기업 검찰 수사 사건을 선임한 한 중소형 로펌 A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 흐름을 파악한 뒤 어떤 식으로 변론을 펼치겠다는 것을 해당 기업 법무라인을 찾아가 브리핑을 했다”며 “최근에는 이처럼 구체적으로 수사 대응 전략을 미리 제시해야만 선임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1주일 넘게 매달려 법률적인 검토를 하고,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준비했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이 과정에서 법무라인과의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일부러 어필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A 대표는 “물론 여전히 그런 인간관계를 토대로 알음알음 변호사 선임을 따낼 수도 있지만, 검찰 전관이라도 예우를 전혀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대기업들은 다 안다”며 “우리 로펌 말고도 여러 곳에서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는 딱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주는 선까지였다”고 덧붙였다.

 

대형 로펌들도 비슷하다. 4대 로펌의 한 실무자는 “수임제안서를 미리 기업에 보내는 게 당연시됐다”며 “영업력이 좋은 변호사들은 대기업과의 인맥으로 사건을 따오곤 하지만 차차 ‘실력’을 어필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 법률자문 선임도 프레젠테이션이 등장했다. 지난해 로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은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는 4대 로펌은 물론, 법조계에서 규모가 있는 편이라고 하는 로펌들 대부분으로부터 “자문을 맡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단순 자문’임에도 해당 로펌들이 직접 거래소를 찾아가 자문 계획을 브리핑하기까지 했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자문을 원한다고 영업하는 과정에서 가격이 너무 낮아져 매력이 없어졌을 정도”라며 “대기업 수사가 줄어들다 보니 매출을 유지하기 위한 로펌들의 경쟁이 다른 맥락으로 치열해졌다”고 설명했다.

 

여러 명의 변호사가 달라붙는 대기업 사건이 줄어들다 보니, 개인 형사사건도 대형 로펌들이 크게 따지지 않고 선임하고 있다. 대형 사건 때 기자들이 진을 친 서울중앙지방법원 내부. 사진=최준필 기자


# “2000만 원짜리 개인 형사사건도 감사”

 

여러 명의 변호사가 달라붙는 대기업 사건이 줄어들다 보니, 개인 형사사건도 대형 로펌들이 크게 따지지 않고 선임한다. 1000만 원 이상의 소소한 개인 형사사건을 파트너급 변호사들이 맡는 경우도 늘고 있다.

 

앞서의 대형 로펌 관계자는 “2000만 원 짜리 사건이면 ‘개인 사건치고 꽤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단순 사내 성추행 사건 같은 경우 과거 대기업 사건 등으로 바쁠 때는 비싼 선임료를 부르고 ‘안 하면 그만’이라는 분위기였는데 요새는 파트너급 변호사들이 선임료나 착수금을 적게 부르고 선임하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건이 단순한 구조인 경우가 많아 상대적으로 ‘돈’은 되지만 꺼렸던 성추행이나 이혼 등에도 대형 로펌들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관련기사 '조재범 사건'에 얽힌 대형 로펌들 비하인드 스토리). 10대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국세청 상대로 세금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긴 동료 변호사가 10억 원이 넘게 받는 등 최근 로펌 분위기는 개인의 돈 되는 사건 선임에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이는 변호사 업계 전체의 불황 분위기와도 맞물린 흐름이다. 실제 돈 되는 성범죄와 이혼, 가사 사건에 ‘전문 변호사’로 등록한 변호사 건수가 지난해 933건으로, 2010년(96건) 대비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개업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2만 명이 넘다 보니, 개인적인 인맥 등을 통해 미리미리 기업 자문 등을 통해 일정한 수익을 확보해놓지 않으면 사건 선임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관이라는 이유로 붙는 프리미엄이 줄어들 정도로, 변호사 업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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