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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나] 전쟁 같은 독일 신년맞이 불꽃놀이 '질베스터'

사망자·​부상자 속출하고 미세먼지까지 치솟는 등 부작용 '심각'

2019.01.10(Thu) 09:43:38

[비즈한국] “오늘 밤 조심해. 아이와 함께 길을 걸어갈 때도 주변을 잘 살펴야 할 거야. 질베스터에 베를린은 거의 미친 수준인 것 같아. 몇몇 장소는 정말 위험하다고!”

 

12월 31일, 베를린을 떠나 스코틀랜드에 가 있던 독일인 친구가 ‘해피 뉴 이어’ 메시지와 함께 보내온 내용이다. 같은 날 오후 한국인 지인도 비슷한 말을 했다. 

 

“오늘 잠은 다 잤네요. 내 목표는 오늘 밤 내 차가 안전할 장소를 찾는 거예요. 우리, 차를 잘 지키자고요!”

 

질베스터 불꽃놀이 쇼가 끝난 뒤 1월 1일 아침, 거리에는 폭죽 잔해들이 넘쳐난다. 사진=박진영 제공


독일에서 신년 이브를 뜻하는 질베스터(Silvester)는 곧 불꽃놀이 데이다. 보통은 31일 0시 카운트다운과 함께 시작되는데 다음날 새벽까지 몇 시간 동안 지속된다. 브란덴부르크 문이나 몇몇 상징적인 장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지만, 큰 도로며 주택가 작은 골목길에서도 불꽃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 그냥 도시 전체에서 불꽃이 터진다고 생각하면 될 정도랄까. 

 

불꽃놀이용 폭죽을 펑펑 터뜨리는 행위는 악령을 막기 위해 소음을 내는 미신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저 새해를 맞는 상징적인 이벤트가 됐다. 그것도 반드시 누군가 다치거나 사망자가 발생하는 광란의 이벤트. “조심하라”는 독일인 친구의 조언이나 “차를 지켜야 한다”는 한국인 지인의 말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이미 2017년 질베스터를 겪으면서 알고 있는 터였다.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 등 상징적인 곳에는 새해 전날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불꽃놀이를 즐긴다. ​사진=베를린 관광청 홈페이지​


베를린에서 두 번째 질베스터를 맞은 우리 가족 역시 살짝 고민하기는 했다. 위험성이 없지 않지만, 나름의 즐거움도 있는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즐거웠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아이는 간절히 원했고, 결국 우리는 불꽃놀이 인파가 거의 없는 이른 저녁 시간대에 집 근처 작은 분수대 광장에서 최소한의 폭죽만 터뜨리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6개들이 단발 불꽃놀이 폭죽을 사 들고, 저녁 7시가 되기 전 밖으로 나갔다. 집 앞 분수대까지 걸어가는 사이에도 여기저기서 폭죽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은 아예 폭죽을 길거리에 던지면서 길을 걸어갔고, 차도에서 폭죽을 발사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소음은 물론이고, 연기와 함께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본격적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되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수많은 종류의 불꽃놀이용 폭죽이 마트에 깔린다. 단발 불꽃놀이 폭죽부터 수백 발 연이어 발사되는 폭죽까지 팔리는데 90퍼센트 이상이 중국에서 수입한 제품이다. 사진=박진영 제공


분수대 광장에는 우리처럼 아이를 데리고 나온 가족 단위가 많았다. 비교적 안전한 시간대에 불꽃놀이를 즐기려는 같은 마음이겠지. 최대한 사람이나 차가 없는 곳에서 불꽃놀이 폭죽을 발사한다고는 했지만 긴장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여유롭게 즐기지도 못하고 절반은 의무감 같은 기분으로 불꽃놀이를 끝낸 우리는 연기를 뚫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자정이 가까워오면서 거세지던 불꽃놀이는 카운트다운과 함께 격렬해졌다. 도로에 인접하지 않은 우리 집에서조차 굉음이 들릴 정도. 방에서 잠을 자던 아이는 소리에 놀라 거실로 뛰어나왔고, “​이 정도면 청각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수준”​이라는 나름의 평을 한 뒤 귀를 틀어막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던 불꽃놀이가 언제 멈췄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날 아침 차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나가본 골목 풍경은 전날 밤 오래 지속됐을 광란의 현장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거리에 널린 수많은 폭죽 잔해들과 화약 가루를 잔뜩 뒤집어쓴 차들. 

 

12월 31일 이른 저녁, 동네 분수대에서 아이를 동반한 가족이 안전하게 불꽃놀이를 즐기는 모습. 사진=박진영 제공


새해 첫날 아침, 희망찬 광경 대신 처참한 거리라니. 내 차 바로 앞에서 200발짜리 연발 불꽃놀이 폭죽잔해를 발견했을 땐 아찔하기까지 했다. 올해 질베스터에는 우리부터 불꽃놀이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독일 내에서도 매년 질베스터에 열리는 불꽃놀이를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상자와 사망자가 생기고, 심각한 공기 오염을 초래하고, 심지어 거의 전쟁 수준의 소음 발생으로 놀란 동물들이 날뛰는 바람에 다치거나 죽는 일까지 벌어지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질베스터가 지난 뒤 며칠 후 쏟아지는 불꽃놀이 관련 뉴스들만 봐도 피해 상황이 어마어마했다. 유럽 내 불꽃놀이 규모가 가장 큰 독일에선 심각한 수준의 부상자가 나왔고, 같은 날 역시 불꽃놀이를 즐기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한 독일 환경단체에서는 “불꽃놀이로 인한 공기 오염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매년 1월 1일이 1년 중 가장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고 했다.

 

위험천만한 데다 독일이 민감해하는 미세먼지까지 심각하다니, 어쩌면 몇 년 내에 질베스터 불꽃놀이가 금지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올해 말 질베스터는 그 수준이 더 심해지는 건 아니겠지.

 

글쓴이 박진영은 방송작가로 사회생활에 입문, 여성지 기자, 경제매거진 기자 등 잡지 기자로만 15년을 일한 뒤 PR회사 콘텐츠디렉터로 영역을 확장, 다양한 콘텐츠 기획과 실험에 재미를 붙였다. 지난해 여름부터 글로벌 힙스터들의 성지라는 독일 베를린에 머물며 또 다른 영역 확장을 고민 중이다.

박진영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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