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민상담 앱(애플리케이션) ‘나쁜기억지우개’가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판매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앱 운영진은 사업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자구안이었으며 민감한 정보는 판매상품으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관련 내용은 서비스 이용약관에 명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내용을 면밀히 따져볼 경우 법리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에선 초기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이보다 더한 꼼수가 횡행한다고 지적한다.
‘나쁜기억지우개’는 2016년 3월에 출시, 고민상담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고민을 익명으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조언과 공감을 불러낼 수 있는 기능 등을 구축한 것. 게시한 고민글은 24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자살충동,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고민글을 올린 이용자에겐 가까운 상담복지센터를 소개한다.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특정 게시판 운용으로 이용자들의 흥미도 끌고 있다.
나쁜기억지우개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들을 함께 늘어놓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운영 목표로 한다”며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깊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교우관계 등이 좋지 못해 고민을 털어놓을 곳 없는 청소년들에겐 또 다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앱 이용자들의 90% 이상이 청소년들이며 1월 기준으로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수만 벌써 50만 회를 넘었다.
문제는 나쁜기억지우개 운영진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등을 외부에 판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운영진은 지난해 10월 데이터를 사고파는 온라인 데이터오픈마켓인 ‘데이터스토어’에 이용자들의 출생년도, 성별, 위치(위도·경도), 고민글 내용, 고민글 작성 날짜 등을 상품으로 등록, 판매를 시도했다. 상품 이용료는 월 5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운영진은 데이터스토어 ‘기업홍보관’에서 자사를 “청소년들의 고민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운영진은 판매에 앞서 개인의 저작권 침해 가능성 등과 관련해 법률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운영진의 이러한 행태에 분노를 표했다. 한 이용자는 “(고민상담) 메이트로 활동하다 이용자들의 고민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자살방지용으로 만들어놓고 개인의 고민을 유출해 오히려 자살 시키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이용자는 “애초 24시간이 지나면 글이 사라진다 해놓고 이를 백업해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법률에 위배되든 아니든 도의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운영진은 사업비 마련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일종의 데이터활성화 사업에 지원, 협약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4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데이터 판매에 나선 것.
나쁜기억지우개 관계자는 “사업지원비와 데이터 판매금액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자 했다. 통계청이나 정부 산하 기관들이 청소년들의 고민을 데이터화, 카테고리화해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며 “민감한 정보 등은 제외했지만 이와 관련한 사실을 이용약관에만 고지한 것에 대해선 반성한다. 판매 등록만 했을 뿐 실제 판매된 것은 없다. 추후 이용자들을 사무실로 초청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판매 경위 등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운영진은 데이터 판매에 나선 이후부터 이용약관에 ‘회사도 개인 글의 저작권을 가지며, 개인정보는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이용약관은 앱 시작 화면 하단에만 게시되며 글씨가 굉장히 작다. 클릭하지 않는 한 따로 확인할 수도 없다. 또 기존 이용자에겐 변경된 이용약관 내용이 따로 고지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법리적 적합성 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승재 최신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이용자가 이용약관에 동의할 경우, 사업자는 그 개인정보를 사용할 순 있다”면서도 “약관규제법에 따라 약관에 기재된 내용이 터무니없거나 비상식적일 경우, 서비스 이용과 다소 무관할 경우 동의의 효력이 사라질 수 있어 그 구체적인 부분을 면밀히 따져야만 적합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또 “이러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이용자들 스스로가 약관 내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중요 사안 등에 대해선 사업자가 글씨 크기나 색깔 등을 달리해 소비자가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은 업계 환경이 이러한 논란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초기엔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매출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자기 돈을 들여 사업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그때 사업자들이 정부의 각종 투자 사업에 참여해 자금을 마련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 과정에서 불거진 다소 비정상적인 경영 조치”라고 지적했다.
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가지원금을 받고 일정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이후엔 개인 투자자들이 한데 모여 자금을 지원하는 이른바 ‘엔젤투자’와 ‘시리즈 A·B’로 불리는 대규모 투자를 받기 시작한다”면서도 “그렇게 되기까진 일정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국가지원 사업 시행 1년이 지나고 이제 막 엔젤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논란 못지않은 업체들의 꼼수도 횡행한다. 익명의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나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선 일정 매출 기준 등을 달성해야 하는데 스타트업들이 매출이 잘 안 나오다보니 경우에 따라선 서로의 물량을 사고팔며 매출을 뻥튀기기도 한다”며 “실제 회사 경영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서류상에선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둔갑한다”고 귀띔했다.
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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