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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기억지우개' 파문, 스타트업 '꼼수'의 이유

개인정보 포함 상담내용 '데이터스토어'에 판매상품 등록…"사과, 경위 설명 계획"

2019.01.08(Tue) 17:44:11

[비즈한국] 고민상담 앱(애플리케이션) ‘나쁜기억지우개’가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판매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앱 운영진은 사업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자구안이었으며 민감한 정보는 판매상품으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관련 내용은 서비스 이용약관에 명시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내용을 면밀히 따져볼 경우 법리적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업계에선 초기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기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이보다 더한 꼼수가 횡행한다고 지적한다.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끈 고민상담 앱 나쁜기억지우개가 상담 내용을 판매하려 한 데 대해 사용자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나쁜기억지우개’​는 2016년 3월에 출시, 고민상담을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청소년들 개개인이 갖고 있는 고민을 익명으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조언과 공감을 불러낼 수 있는 기능 등을 구축한 것. 게시한 고민글은 24시간이 지나면 삭제된다. 자살충동, 극심한 우울 증세를 보이는 고민글을 올린 이용자에겐 가까운 상담복지센터를 소개한다. 소소한 일상을 나눌 수 있는 특정 게시판 운용으로 이용자들의 흥미도 끌고 있다.

 

나쁜기억지우개 관계자는 “청소년들이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들을 함께 늘어놓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운영 목표로 한다”며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깊은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교우관계 등이 좋지 못해 고민을 털어놓을 곳 없는 청소년들에겐 또 다른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앱 이용자들의 90% 이상이 청소년들이며 1월 기준으로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수만 벌써 50만 회를 넘었다.

 

나쁜기억지우개는 등록된 글이 24시간 후 지워진다고 했지만, 지워진 상담 내용을 유료로 판매하려 했다. 사진=나쁜기억지우개 캡처


문제는 나쁜기억지우개 운영진이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등을 외부에 판매하려 했다는 것이다. 운영진은 지난해 10월 데이터를 사고파는 온라인 데이터오픈마켓인 ‘​데이터스토어’​에 이용자들의 출생년도, 성별, 위치(위도·경도), 고민글 내용, 고민글 작성 날짜 등을 상품으로 등록, 판매를 시도했다. 상품 이용료는 월 500만 원으로 책정했다. 

 

운영진은 데이터스토어 ‘​기업홍보관’​에서 자사를 “​청소년들의 고민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운영진은 판매에 앞서 개인의 저작권 침해 가능성 등과 관련해 법률상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용자들은 운영진의 이러한 행태에 분노를 표했다. 한 이용자는 “​(고민상담) 메이트로 활동하다 이용자들의 고민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자살방지용으로 만들어놓고 개인의 고민을 유출해 오히려 자살 시키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이용자는 “​애초 24시간이 지나면 글이 사라진다 해놓고 이를 백업해 판매하는 행위 자체가 법률에 위배되든 아니든 도의적으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스토어 기업 홍보관에 올라온 나쁜기억지우개 소개글. ‘청소년들의 고민 데이터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8일 현재 이 게시글은 삭제됐다.

 

운영진은 사업비 마련을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일종의 데이터활성화 사업에 지원, 협약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4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고 데이터 판매에 나선 것. 

 

나쁜기억지우개 관계자는 “​사업지원비와 데이터 판매금액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자 했다. 통계청이나 정부 산하 기관들이 청소년들의 고민을 데이터화, 카테고리화해 가지고 있으면 좋을 것이라는 판단도 했다”​며 “​민감한 정보 등은 제외했지만 이와 관련한 사실을 이용약관에만 고지한 것에 대해선 반성한다. 판매 등록만 했을 뿐 실제 판매된 것은 없다. 추후 이용자들을 사무실로 초청해 정식으로 사과하고 판매 경위 등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운영진은 데이터 판매에 나선 이후부터 이용약관에 ‘​회사도 개인 글의 저작권을 가지며, 개인정보는 제3자에게 제공될 수 있다’​는 내용 등을 추가했다. 하지만 이 이용약관은 앱 시작 화면 하단에만 게시되며 글씨가 굉장히 작다. 클릭하지 않는 한 따로 확인할 수도 없다. 또 기존 이용자에겐 변경된 이용약관 내용이 따로 고지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법리적 적합성 등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최승재 최신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통상적으로 이용자가 이용약관에 동의할 경우, 사업자는 그 개인정보를 사용할 순 있다”​면서도 “​약관규제법에 따라 약관에 기재된 내용이 터무니없거나 비상식적일 경우, 서비스 이용과 다소 무관할 경우 동의의 효력이 사라질 수 있어 그 구체적인 부분을 면밀히 따져야만 적합성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또 “​이러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선 이용자들 스스로가 약관 내용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중요 사안 등에 대해선 사업자가 글씨 크기나 색깔 등을 달리해 소비자가 이를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매출을 올리기 쉽지 않은 업계 환경이 이러한 논란을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초기엔 제품이나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다보니 매출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자기 돈을 들여 사업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며 “​그때 사업자들이 정부의 각종 투자 사업에 참여해 자금을 마련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 과정에서 불거진 다소 비정상적인 경영 조치”​라고 지적했다.

 

O2O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가지원금을 받고 일정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 이후엔 개인 투자자들이 한데 모여 자금을 지원하는 이른바 ‘​엔젤투자’​와 ‘​시리즈 A·B’​로 불리는 대규모 투자를 받기 시작한다”​면서도 “​그렇게 되기까진 일정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국가지원 사업 시행 1년이 지나고 이제 막 엔젤투자 유치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번 논란 못지않은 업체들의 꼼수도 횡행한다. 익명의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나 정부 프로젝트를 수주,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선 일정 매출 기준 등을 달성해야 하는데 스타트업들이 매출이 잘 안 나오다보니 경우에 따라선 서로의 물량을 사고팔며 매출을 뻥튀기기도 한다”​며 “​실제 회사 경영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서류상에선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둔갑한다”고 귀띔했다.​

이성진 기자

reveal@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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