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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라마] 인종차별부터 빚투까지…우리 사회 뼈 때리는 '황금신부'

뻔한 권선징악 스토리에 사회적 메시지 가미해 몰입도 극대화

2018.12.31(Mon) 11:42:10

[비즈한국] 한국 드라마가 가장 사랑하는 요소를 꼽으라면 단연 권선징악(勸善懲惡)이다. 착한 것은 권장하고 나쁜 것을 벌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당연한 일이겠으나 다들 알다시피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러니 드라마는 마치 판타지처럼 결말에 다다르면 고생하던 착한 이들은 행복해지고, 악행을 일삼던 나쁜 이들은 반성하여 ‘급화해’를 이루거나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

 

고리타분한 플롯이지만 우리가 한국 드라마를 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드라마 속에서라도 주인공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기 때문. 그렇기에 대한민국 드라마 시청자들은 헤어질 위기의 남녀 주인공을 이어 달라고 방송국에 전화를 때리고, 못된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배우에게 욕설을 던지며 권선징악형 드라마를 키워왔다.

 

위부터 재벌 후계자 김영민(송종호)과 그의 재력에 이끌려 옛 애인을 가혹하게 버리고 과거를 속인 채 결혼한 옥지영(최여진), 지영에게 버림받고  공황장애를 앓으며 괴로워한 강준우(송창의)와 준우를 사랑으로 구원한 누엔 진주(이영아). 황금신부는 황금을 좇아 결혼한 지영과 진짜 황금의 가치를 지닌 사랑을 좇은 누엔 진주를 내세우며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는 권선징악형 드라마다. 사진=SBS홈페이지

 

사실 권선징악형 드라마는 다소 빤하다. 착한 주인공이 어떤 위기에 처해도 결국은 행복해지리란 걸 아니까. 그렇게 보자면 2008년 방영한 ‘황금신부’도 마찬가지다. 착한 주인공들이 악역들로 인해 고난과 역경을 거치지만 결국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식이다. 하지만 ‘황금신부’는 사회적 메시지를 더하며 빤할 수 있는 내용을 빤하지 않게 뒤튼다.

 

드라마는 강준우(송창의)네 집안과 김영민(송종호)네 집안이 각종 악연으로 얽히며 일어나는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두 집안의 악연은 가히 막장 아침 드라마 버금가는데, 강준우의 엄마인 정한숙(김미숙)이 과거 김영민의 아빠 김성일(임채무)과 결혼할 사이였으나 김영민의 엄마 양옥경(견미리)이 끼어들어 가로챈 전사(前事)가 있다.

 

김성일이 큰 회사를 물려받는 부잣집 아들이었기에 일어난 일로, 정한숙은 연인을 빼앗긴 것은 물론 이 결혼으로 상류층 회장 부인이 된 양옥경과 달리 서민가족에 편입되며 경제적 계급이 달라진다.

 

황금신부는 무거운 이야기 가운데 웃음을 잃지 않는데, 이는 화목한 준우네 가족이 담당했다. 준우의 누나인 원미(홍은희)와 그의 남편 허동구(김경식) 커플, 준우의 고모인 강군자(박미선)와 그의 남편 차벽수(권해효) 커플, 원미와 시어머니 맹만덕(김지영)이 보여주는 코믹한 고부관계, 그리고 역경이 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헤쳐 나가는 준우네 식구들. 특히 박미선, 김경식 등 희극인 출신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일품이었다. 사진=SBS 홈페이지

 

아무리 30년 전 일이라 해도 앙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런데 심지어 잘나고 똑똑한 아들 강준우를 매몰차게 버리며 공황장애를 겪게 만든 ‘배신녀’ 옥지영(최여진)이 옥경의 아들 영민과 결혼했다. 눈이 뒤집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걸로 끝이 아니니, 공황장애에 걸린 아들을 위해 베트남에서 데려온 며느리 누엔 진주(이영아)가 실은 김성일 회장이 20년간 모른 척 외면한 자식이었다! 악연에 악연이 거듭되는데, 그 와중 한숙의 막내딸 강세미(안미나)와 옥경의 막내아들 김영수(김희철)이 사랑에 빠지니, 이거야말로 로미오와 줄리엣.

 

누엔 진주와 그를 버린 친부 김성일(임채무).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도덕과 양심을 버리는 일은 라이따이한 외에도 빈번히 보인다. 황금신부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라이따이한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라이따이한을 연기한 이영아는 이 드라마로 ‘진짜 베트남 사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사진=SBS홈페이지

 

64부작인 ‘황금신부’는 옥지영이 과거를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 거짓말로 일관하며 발악하는 모습과 김성일 회장이 딸 누엔 진주를 외면하며 진실을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 그리고 거센 반대에 놓인 세미와 영수의 사랑 등 줄기줄기 이야깃거리들로 시청자들을 쥐락펴락 조련한다. 막장 아침 드라마스러운 이야기들이지만 곳곳에 뼈를 때리는 메시지들이 있어 은연중 나를 돌이켜보게 된다. 

 

특히 라이따이한인 누엔 진주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면면은 종종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적나라하다. 누엔 진주의 시어머니가 되는 정한숙은 분명 본성이 선한 인물이지만, 공황장애로 사회생활을 못하는 아들을 위해 베트남 신부를 물색할 만큼 현실적이면서도 ‘피부가 한국인처럼 하얗고 학식이 있는’ 신부를 원한다.

 

1회에서 보여주는 한국 노총각들과 베트남 처녀들의 집단 미팅 장면. 황금신부는 특집 드라마 ‘하노이 신부’​에 이어 라이따이한과 한국-베트남 총각처녀들의 결혼 등의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사진=SBS 홈페이지

 

강준우를 짝사랑하는 대학 후배 차인경(공현주)은 누엔 진주가 못 배우고 가난한 베트남계라는 이유만으로 엄연히 결혼한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툭하면 ‘당신은 준우 선배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무례한 충고질을 일삼는다.

 

강준우의 사업 파트너가 될 뻔한 민 이사가 누엔 진주에게 보이는 무례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만약 누엔 진주가 가난하더라도 영어를 쓰는 백인이었다면 과연 그런 행동을 보였을까? 툭하면 일상에서 인종차별적 행위와 발언을 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차인경(공현주)은 한국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물이다. 많이 배우고, 잘 사는 나라 사람이라고 덜 가진 자, 덜 배운 자를 교묘하게 차별하는 모습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 사진=SBS 홈페이지

 

또한 ‘황금신부’는 죄짓고 살지 말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부모가 된다는 책임감 또한 통감하게 만든다. 양옥경이 정한숙의 남자를 빼앗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김성일이 무책임하게 베트남에서 딸을 낳고 버리지 않았더라면, 수십 년 후 그들의 자식들이 그토록 고통을 겪지 않았을 테니까.

 

자식 있는 부모들이 잘못된 행위로 자식의 앞길을 막은 최근의 ‘빚투 사태’를 봐서 알겠지만, 책임 있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참 어렵다. 결혼 계획이 없고 자식 계획은 더더욱 없는 나지만 ‘하이라이트TV’에서 재방 중인 ‘황금신부’를 보며 새삼 부모의 책임감이라든가 상식적인 어른이 된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황금신부에서 철없지만 발랄한 모습으로 활력을 불어 넣었던 영수(김희철)-세미(안미나) 커플. ‘우주대스타’​ 김희철의 연기가 제법 나쁘지 않다. 사진=SBS 홈페이지

 

막상 내 주변에서 라이따이한이나 나보다 못 살고 못 배운 사람들을 대할 때, 아무런 고정관념과 편견 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인가 반성한다. 2019년에 좀 더 나은, 발전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황금신부’를 본다. 그러니 모두들, 새해에는 더 나은 어른이 되시길.

 

필자 정수진은? 영화를 좋아해 영화잡지 ‘무비위크’에서 일했고, 여행이 즐거워 여행잡지 ‘KTX매거진’을 다녔지만 변함없는 애정의 대상은 드라마였다.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홈페이지에서 인물 소개 읽는 것이 취미이며, 마감 때마다 옛날 드라마에 꽂히는 바람에 망하는 마감 인생을 12년간 보냈다. 지금은 프리랜서를 핑계로 종일 드라마를 보느라 어깨에 담이 오는 백수 라이프를 즐기는 중.

정수진 드라마 애호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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