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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간호사 늘어도 '태움'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인력 부족보다 신규 간호사 부적응으로 인한 이직이 더 문제 "교육 체계 구축해야"

2018.12.28(Fri) 11:40:25

[비즈한국] “학생들한테 오랜만에 전화해보면 다들 ‘그만두고 싶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학교에서 잘 적응하던 학생들도 그래요.”(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규 간호사 이직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 참석자들은 업무 부적응으로 고통 받는 신규 간호사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그 대안으로 간호사 교육 체계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구축하고 의무화해 신규 간호사들의 이직과 퇴사를 막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이마저 한계가 지적되면서 실행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신규 간호사 이직 방지를 위한 제도개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신규 간호사 교육 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김명선 기자

 

지난 2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태움’의 원인으로 간호사들의 만성적인 인력난이 지적됐다. 태움은 경력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재’​가 될 때까지 괴롭히며 가르치는 관습이다. ​신입 간호사의 잦은 이직과 퇴사로 업무에 공백이 발생하고, 이로써 남은 간호사들에게 업무와 스트레스가 과중돼 태움이 발생한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없어 간호사 인력난이 가중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 간호사 인력난 왜 30년째 해결 못 하나

 

간호사 인력난을 둘러싼 논의는 수십 년째 이어진다. 1992년 대한병원협회는 간호 인력난 탓에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건당국에 건의했다. 1994년 한국의료관리연구원은 전국 600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1년 사이에 퇴사하거나 이직한 간호사의 비율은 34.5%에 달한다며 우려를 표했다.

 

문제는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16년 신규 간호사의 1년 이내 이직률은 38.1%로 비율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이 13~17.5%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수준. 오선영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정책국장은 “매년 유출되는 간호사가 2만 7000명이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이 현상이 계속되면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는 점이다. 간호 인력이 줄어들면 남은 간호사들의 피로가 가중된다. 한 간호사당 업무량이 증가하는 탓이다. 결국 의료 서비스 악화로 이어진다. 태움 악습도 개선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력 간호사들이 업무가 과중된 상황에서 신규 간호사들의 교육까지 맡아야 해 스트레스가 쌓이기 때문이다. 태움 문화가 계속되면 간호사들의 업무 분위기가 딱딱해져 환자의 안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간호사의 만성적인 인력난이 해결되지 못하면 ‘태움’을 근절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3월 태움 문화로 인해 서울성모병원의 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간호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수십 년간 간호사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는 배경에는, 정부가 ‘인력 증원’에만 몰두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정부는 신규 간호사들의 정착을 돕기보다는, 간호학과를 신설하거나 입학정원을 증원하는 등 인력 수급에만 주력해왔다. 지난 10월에도 교육부는 2019학년도부터 5년간 한시적으로 4년제 간호학과의 3학년 편입학 비율을 기존 입학정원의 최대 30%까지 정원 외로 확대하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간호사들은 이런 정책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지적한다. 인력 수급 정책만으로는 인력난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들은 신입 때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직 간호사 10개월 차 김 아무개 씨는 “의학 용어 중에 섭취한 만큼 배설한다는 ‘인테이크 아웃풋 밸런스(I.O balance)’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딱 그 느낌이다. 인력을 늘려도 그대로 다 빠져 나간다”며 “처음 들어오면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바이탈(vital·혈압과 맥박 등을 책정하는 것)을 하라고 그런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 대안으로 등장한 프리셉터십…중소병원은 ‘부담’

 

이날 토론회 참가자들도 인력 수급 정책보다는 신규 간호사 교육관리 체계를 견고히 해 신규 간호사들이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력난의 가장 근본적 원인인 신규 간호사들의 이직을 방지하자는 것. 특히 프리셉터십(preceptorship) 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프리셉터십은 임상경력 2~3년 차의 경력 간호사가 일정 기간 동안 신규 간호사를 교육하는 제도를 말한다.

 

아직 우리나라는 신규 간호사 교육 체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 신규 간호사가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제도 역시 없다. 2017년 병원간호사회가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총 201개 병원 중 단 8개 병원에서만 교육전담간호사를 운영 중이었고, 그 숫자는 전체 7만 7457명의 간호사 중 14명에 불과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간호사 공급’보다는 ‘신규 간호사 교육’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국은 2002년부터 신규 간호사의 병원적응을 위해 약 1년간 일대일 멘토를 지원하는 ‘NRP(Nurse Residency Program)’를 시행하고 있다. UHC(University Health System Consortium​)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토대로 체계적으로 진행된다. 일본도 2010년부터 ‘간호사 및 기타 의료 전문가의 노동성 보장에 관한 법률’로 신규 간호 인력에게 졸업 후 임상훈련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신규 간호사 교육체계인 ‘프리셉터십 제도’를 체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다만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사진=김명선 기자


토론회 참석자 대다수는 프리셉터십 제도를 체계화하는 데는 동의했지만, 의무화는 아직 조심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재정난에 시달리는 중소병원에서는 신규 간호사의 교육훈련 기간을 늘리거나 떠맡기가 부담스럽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영애 중소병원간호사회 회장은 “병원 손실을 보전받는 여러 종류의 수가가 있지만 중소병원은 상대적으로 소외된다. 의료질평가지원금도 의료기관 중 종합병원을 대상으로 하고 지원금 70% 이상이 상급종합병원에 집중된다”며 “정부의 법적,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곽순헌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은 신규 간호사 교육 체계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고 밝혔다. 곽 과장은 “2019년도 예산에 국·공립의료기관에 대한 교육전담간호사 운영지원비 76억 원이 통과됐다”며 “시간제간호사나 야간제간호사 수가 보상을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앞으로 간호사 처우를 개선해나갈 것”이라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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