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취성패)’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취업실패패키지’로 불리고 있다. 진로 설정부터 교육, 취업 연결까지 패키지로 제공한다는 훌륭한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막상 현장에선 취준생도, 그들의 취업을 돕는 직업상담사도 취성패에 대한 날선 비판을 쏟아낸다.
2009년 도입된 취성패 프로그램은 취업 상담부터 직업훈련, 취업 연결까지 한 번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취성패Ⅰ’과 일반 구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취성패Ⅱ’로 나뉜다. 취업 지원은 1~3단계로 구분되며 1단계는 집중 상담 및 직업심리검사, 2단계는 직업훈련, 3단계는 집중 취업알선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 구직자 “취업에는 도움 안 되지만 용돈벌이 쏠쏠”
사업은 전국 700여 민간기관에서 위탁 운영 중이다. 각 위탁기관은 직업상담사를 고용해 구직자 취업 관리를 한다. 배정된 직업상담사가 구직자 한 명의 취업 전 과정을 담당하는 형태다. 그러다 보니 취준생 사이에서는 ‘상담사에 따라 결과가 복불복’이라는 말도 나온다. 좋은 상담사를 만날 경우 취업에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시간 낭비라는 푸념이다. 하지만 좋은 상담사를 만날 확률은 지극히 낮다는 것이 취준생들의 말이다.
취성패에 참여한 한 구직자는 “상담사가 취업 알선한 기업이 모두 최저시급의 임금을 주는 회사였다”며 “집에서 편도로 2시간 거리인 곳도 있었다. ‘연봉이 맞지 않는다’ ‘출퇴근이 어렵다’ 등의 이유로 거절했지만 무조건 면접은 보고 오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다른 구직자는 “언제 취업 알선 연락을 할지 모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대기하라고 한다. 소개해준 곳에 이력서를 넣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그친다. 전화기만 울리면 깜짝깜짝 놀란다”며 “스트레스를 받아 중간에 취성패를 중단하겠다고 연락했더니 설득하는 연락이 더 많이 왔다. 결국 전화번호를 차단했다”고 털어놨다.
만족도는 낮지만 취성패 지원자가 꾸준한 이유는 ‘용돈벌이’로 쏠쏠하기 때문이다. 취성패는 단계별 참여수당으로 1단계는 20만~25만 원, 2단계는 훈련일수 1일당 1만 8000원(한 달 기준 최대 28만 4000원), 3단계는 월 30만 원(최대 3개월) 등을 지급한다. 취준생 신 아무개 씨(27)는 “주변 친구들이 취성패는 취업에는 도움이 안 되지만 용돈벌이로는 괜찮다고 말한다. 참여수당만 받아 면접 복장을 구입하거나 용돈으로 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말했다.
문제가 끊임없이 지적되자 정부는 내년도 취성패 예산을 대폭 축소했다. 9일 고용부에 따르면 취성패 예산은 정부안(4122억 원)보다 412억 원 깎인 3710억 원이 책정됐다. 2018년 예산(5029억 원)보다 1320억 원 적다. 예산 축소에 따라 내년에는 취성패 수혜자가 24만 명에서 20만 7000명으로 줄어든다.
양질의 일자리 제공을 위해 취성패 위탁기관에 대한 평가기준은 대폭 강화했다. 취업처 임금수준에 대한 평가 비중을 10%에서 15%로 상향하고, 청년친화강소기업에 취업을 연계할 때 평가 우대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간 위탁기관의 직업상담사들은 예산을 감축하면서 평가는 강화하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 아닌 ‘상담사 죽이기’가 될 것이라며 비난한다. 일부 위탁기관에서는 내년도 근무환경을 걱정하며 퇴사를 결정하는 상담사도 생길 정도다.
# 상담사들 “내 일자리 걱정하면서 누굴 취업시키나”
취성패 담당 직업상담사의 가장 큰 고충은 실적 압박이다. 구직자가 얼마나 취업을 했느냐에 따라 위탁기관의 성과가 갈리기 때문에 입사 직후부터 실적 압박이 들어온다. 때문에 취업 확률이 높은 일자리, 즉 일반 구직자의 선호도가 낮은 일자리를 우선순위로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한 직업상담사는 “상담사들끼리 ‘상담사인지 영업사원인지 모르겠다’는 얘길 많이 한다. 직업의식을 갖고 취준생을 돕고 싶지만 실적을 채우는 것이 우선이다. 한번은 상담을 통해 구직자의 성향이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추천했는데 회사에서 ‘그런 직종은 실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핀잔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실적에 맞는 기업을 추천하고 취업 알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상담사 1인이 담당하는 구직자나 업무량이 과다하다는 의견도 있다. 앞서의 직업상담사는 하루에 대면 상담만 6~8명, 유선 상담은 10명 이상을 한다고 밝혔다. 그는 “직접 취업 알선 기업을 찾고, 상담 일지까지 작성하면 9시가 넘어 퇴근하는 것은 일상이다. 과도한 업무량에 제대로 된 상담이나 취업 알선이 어렵지만 계속해서 실적 압박을 해 퇴사까지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상담사들이 실적 채우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민간 위탁기관 평가에 따라 근무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취업성공패키지의 내실 있는 운영을 위해 매년 취업성공패키지 민간 위탁기관 평가를 진행한다. 취·창업률, 고용유지율 등의 성과지표와 만족도 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기관을 평가해 5개 등급(A~E)으로 나눈다. 등급별 비율은 A 10%, B 25%, C 30%, D 25%, E 10%(최하위)다.
상대평가로 진행되며 2년 연속 하위등급을 받거나 취업률 최소 기준 등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다음 해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성과평가는 진행 중이다. 2017년은 6곳, 2016년은 11곳이 성과평가가 부진해 퇴출됐다”고 밝혔다.
민간 위탁기관이 성과평가로 퇴출돼 취성패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면 자연히 해당 기관의 직업상담사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직업상담사를 ‘말만 정규직일 뿐 1년짜리 비정규직’이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업상담사끼리 “상담사들이 본인 일자리를 걱정하면서 다른 사람의 취업을 도와주는 꼴이다. 누가 누구의 취업을 돕는 건지 의문”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누는 실정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취성패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위탁기관으로 선정되면 사업평가 결과에 따라 탈락 유무가 결정되기 때문에 실적 경쟁이 크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적 압박은 모든 직장인이 받는 것 아니냐. 우리도 취업률 압박을 받는다”며 “상담사들의 저임금 문제나 위탁 기관의 갑질 등을 해결하기 위해 매년 개선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한계는 있다”고 말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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