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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검찰이 사기꾼에게 '과외' 받는 이유

최근 '무자본 M&A' 기승…워크숍 등 수사·금융당국 노하우 공유

2018.12.12(Wed) 15:10:44

[비즈한국] #​ 장면 1 “주포가 중심이 되고 화가와 브로커, FI(재무적투자자) 등으로 팀이 구성됩니다. 쉘(shell)을 선정한 다음 펄(Pearl)을 뿌리고 롤링(Rolling) 하는데, 이 작업에만 보통 3~6개월 정도 걸립니다. 수익은 회사와 선수 4, 브로커 2, FI 4 정도로 배분하죠.” 

 

과거 주가 조작 세력에 몸담았었다고 고백한 한 유사투자자문사 대표 A씨의 강연 내용 일부다. 한국어와 비교적 쉬운 영어 단어들인데도 별도의 설명 없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주가 조작 과정에 동원되는 그들만의 ‘전문용어’다. ‘​주포’​는 기획자, ‘​화가’​는 거래 시점과 거래량 등을 정하는 차트를 그리는 사람이다. ‘​쉘’​은 주가조작 대상 회사, ‘​펄’​은 주가를 띄우기 위한 가짜 뉴스나 공시, ‘​롤링’​은 거래량을 늘려 주가를 올리는 일을 뜻한다.  

 

그가 강연한 곳은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 워크숍.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한국거래소 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A 씨는 ‘최근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며 주가 조작, 즉 ‘작전’의 실상을 공개했다. 금융기관과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이날 워크숍을 마무리하며 주가조작과 같은 불공정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기관별 고유기능을 전문화하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등 협업체계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 장면 2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증권범죄합동수사단, 금융조세수사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 27명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들이닥쳤다. 2015년 남부지검이 금융범죄 중점 검찰청으로 지정된 뒤 이들은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다. 은퇴 후 주가 조작을 하다 적발된 전직 금감원 부원장과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 등 이들이 재판에 넘긴 피의자들만 900명이 넘고, 국고로 환수한 범죄수익금은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금감원을 상대로 대규모 압수수색이라도 하는 걸까. 하지만 금감원 관계자들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수사 인력들이 금감원을 찾은 건 최근 진화하는 증권 범죄와 관련한 교육을 듣고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서였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은 수사의 전문성을 더 강화하자는 취지였고, 금감원은 검찰과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 추진된 교육이었다. 검사와 수사관 들이 업무를 중단하고 하루를 고스란히 교육에만 썼는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증권 관련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금융 당국과 수사 당국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영화 작전의 스틸컷. 사진=네이버 영화

 

# “​무자본 M&A 기승”​​ 머리 맞대는 금융·수사당국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은 올해 하반기부터 앞서와 같은 증권 범죄와 관련, 워크숍과 교육 등을 부쩍 늘렸다. 시세조종과 부정거래는 물론 미공개정보 등을 활용한 범죄까지 다루는 영역도 다양하다. 범죄 수법 공유부터 기관별 협력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한편, 최근 수사와 조사 과정에서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이 특히 집중하는 건 무자본 M&A 관련 범죄다. 남부지검은 앞서의 금감원 전 부원장부터 사채를 투자로 둔갑시킨 무자본 M&A 일당 등을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다. 금감원과 한국거래소 등의 기관들이 긴밀하게 협조한 결과다. 

 

금감원은 최근 무자본 M&A 추정 기업을 선정해 일제점검을 하고 있다. 올해 결산 전 상장사 공시정보 등을 활용해 점검 대상 기업을 정하고 자금조달 규모 및 사용내역 등을 파악, 재무제표에 회계처리 반영 내역 등을 점검한다. 회계처리 위반 혐의사항이 발견될 경우 감리를 통해 엄중히 조치할 예정이다.

 

시중 증권사 15곳 안팎을 대상으로 채권 불공정거래 의혹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증권사들이 공모해 채권이자율 결정이나 채권 입찰 과정에서 불법적인 영향을 준 경우엔 제재 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이르면 내년 1월 중순 징계 여부가 확정된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지난 2015년 금융범죄 중점검찰청으로 지정된 뒤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고 있다. 최근엔 금융당국과의 협력을 통해 무자본 M&A 일당을 적발하고 있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 끊임없이 진화하는 무자본 M&A 수법

 

무자본 M&A란 일명 ‘기업사냥꾼’이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대출을 받아 상장기업 최대주주 지분을 사들이는 거래를 말한다. 이들은 기업을 인수한 뒤 회사 자산을 횡령하거나 시세조종을 통한 주식매각 차익을 노린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일반 투자자들은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의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무자본 M&A 관련 범죄가 국내 주식 시장에 등장한 건 오래 전 일이지만, 최근 수법은 불법과 합법을 교묘하게 오가며 점차 지능화하고 있다. 검찰과 금감원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작전 세력’들은 명동 사채업자나 저축은행 등에서 다른 회사들의 주식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이후,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려 미리 사둔 주식을 처분해 돈을 갚는 방식으로 인수자금을 조달한다. 사실상 주식시장에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셈이다. 횡령·배임을 눈감아주며 싼 값에 경영권을 인수해 차익을 챙기거나, 다른 범죄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작업에 착수하는 방식도 있다.

 

그 밖에 회사를 한 곳, 또는 두 곳 정도 운영하며 문어발식으로 M&A를 하는 수법도 있다. 사채를 쓰지 않고 증자를 통해 자금을 넣는 등 법인 자금을 옮긴다. ‘작전’이 성공하면 회사를 처분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수법은 ‘손이 큰 선수’가 추가 작전을 위해 ‘실탄’을 남겨두는 것으로 통한다.

 

세력들이 주가를 올리는 방법도 주도면밀해졌다. 과거엔 특정 주도세력이 주가를 한 번에 끌어올렸다면, 최근엔 점조직 형태의 여러 세력들이 ‘품앗이’를 한다. 목표 가격까지 구간을 정해두고 4~5개 세력들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타깃은 시가총액이 작고, 하루 거래량 30%를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 종목도 3개가량을 동시에 추진한다. 최근 바이오나 엔터테인먼트 관련 종목 등이 세력들에게 ‘핫 트렌드’로 꼽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과 수사당국은 세력이 개인이나 팀에서 법인, 특수목적법인(SPC), 방송, 인터넷 증권전문가 등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금감원 관계자는 “루머나 인터넷, 방송 정보만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건 위험하다. 언론이나 기타 미디어를 통한 과도한 광고 등도 주의해야 한다”며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은 물론, 최근 금융위원회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MOU를 체결해 바이오기업 임상정보를 제공하기로 하는 등 투자자들이 꼼꼼히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금감원과 관계 기관 등은 앞으로도 불공정거래를 근절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상현 기자 moon@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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